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나에겐 한계도 없다.

by 민태선

한 게 없다는 말을 입 밖에 내본 적이 있는가.

소리 내어 말하지 않더라도, 어느 늦은 밤 혼자 천장을 보며 그 문장이 떠오른 적이 있는가.


나이는 쌓였는데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시간은 분명히 흘렀는데 남은 것이 보이지 않는 그 감각.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시작은 했는데 끝이 없고, 끝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그 느낌.


그 감각은 조용하다.

요란하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가라앉는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고,

오늘도 무언가를 하다가 흐지부지 끝나고,

밤이 되면 또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남는다.


반복. 그 반복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자신을 작게 본다.

나는 왜 이렇게 한 게 없는가.


이 질문은 답을 찾으려는 질문이 아니다.

자신을 가두는 질문이다.


한 게 없다는 말 안에는 전제가 숨어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무언가'의 기준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것,

설명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

숫자로 환산되거나 타이틀로 붙여질 수 있는 것.


그 기준에 비추었을 때 자신이 비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인가. 내가 선택한 것인가,

어느 순간 주어진 것인가.


그 기준이 없다면, 나는 여전히 한 게 없는 사람인가.

여기서 잠깐 멈춘다. 한 게 없다는 것은, 다르게 읽히면 이렇다.

아직 고정되지 않았다는 것.


어느 방향으로도 굳어지지 않았다는 것.

채워진 것이 없다는 말은, 동시에 비어 있다는 말이고,


비어 있다는 것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게 없다는 것은, 한계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이 위로처럼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한 게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사실이고, 그 공허함은 말 한마디로 채워지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시선의 전환이다.

같은 자리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


한계를 가진 사람은 이미 벽을 만난 사람이다.

여기 까지라는 선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 선이 생기려면, 먼저 충분히 걸어봐야 한다.

어떤 방향으로 걸었을 때 막히는지를 몸으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한 게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직 그 벽을 만나지 않았다.

아직 어느 방향으로도 끝까지 걸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물론 이 말이 곧바로 힘이 되지는 않는다.

가능성이라는 단어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반면 공허함은 지금 이 순간에도 또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공허함 속에서 한 가지를 묻고 싶다.

나는 지금 한 게 없는 것인가, 아니면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인가.

그 둘은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다.


한계를 보기 위해 한 계단 더 오른다는 것은,

정상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러 간다는 말이다.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윤곽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종종 한계를 두려워한다.


한계를 만나면 거기서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계는 끝이 아니다.


한계는 지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가 약하고 어디가 단단한지,

어느 방향에서 막히고 어느 방향에서 뚫리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한계다.


한계를 만난 사람은 자신의 지도를 한 줄 더 그린 사람이다.

한 게 없는 사람에게는 아직 그 지도가 없다. 빈 종이다. 그 빈 종이를 결핍으로 볼 것인가,

여백으로 볼 것인가.

그 선택이 다음 한 계단을 오를 것인지를 결정한다.


한 계단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열 계단도 아니고, 꼭대기도 아니다. 한 계단.

그것은 겸손한 말이면서, 동시에 가장 정직한 말이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딱 하나만 더 올라가 보겠다는 것이다.


한 계단을 오르면 무엇이 보이는가.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시야가 달라진다.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가, 올라온 뒤에야 보인다.


그리고 그다음 계단이 어디에 있는지도, 올라와야 보인다.

한 계단은 목적지가 아니라, 다음 한 계단을 발견하기 위한 행위다.


그래서 한 게 없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딱 하나.

아주 작아도 된다.

부끄러워도 된다.

남들이 보기에 의미 없어 보여도 된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움직임이다.

움직이는 사람만이 벽을 만날 수 있고,

벽을 만난 사람만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고,

한계를 아는 사람만이 진짜 자신의 지도를 갖게 된다.


한 게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아직 어느 방향으로도 닫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빈자리가 지금은 공허하게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가장 넓은 가능성의 형태다.


한계를 보기 위해 한 계단 더 오른다.

그 한 계단이 전부를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한 계단 위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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