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가 틀렸던 것일까.

질문이 문제가 있진 않았을까.

by 민태선

답이 틀렸을 때,

우리는 대부분 상황을 먼저 본다.


운이 나빴다고,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 누군가 방해했다고.


그 설명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상황은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상황을 탓하는 순간,

우리는 한 가지를 포기한다.


풀이를 다시 볼 기회.

풀이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내가 어디서 잘못 계산했는지,

어느 지점에서 방향을 틀었는지,

무엇을 빠뜨렸는지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자책과 닮아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피한다.


상황 탓을 하면 나는 온전히 남는다.

풀이를 보면 내가 깎인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상황 쪽으로 눈을 돌린다.


그런데 더 불편한 가능성이 있다.

풀이가 아니라 질문 자체가 잘못됐을 경우.


잘못된 질문은 어떻게 생겼는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논리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고,

그럴듯한 전제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 전제가 처음부터 어긋나 있으면,

아무리 정교하게 풀어도 답은 엉뚱한 곳에서 나온다.


올바른 방법으로 잘못된 길을 걷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왜 나는 이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을 붙잡고 오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풀이를 바꿔보기도 하고,

태도를 고쳐보기도 하고,

더 노력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풀이가 틀려서가 아닐 수 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일 수 있다.

애초에 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내가 풀어야 할 문제였는가.


그 질문을 누가 내게 주었는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그것이 당연한 문제인 것처럼 주어진 것인가.


잘못된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내 무능함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무능함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에 없는 길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풀이를 고치기 전에, 질문을 먼저 의심해야 한다.

이것이 진짜 내가 풀어야 할 문제인가.


이 질문은 어디서 왔는가.

내가 선택한 것인가, 떠안게 된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이 나온다고 해서, 내 삶이 실제로 나아지는가.

질문을 바꾼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더 정직한 시작이다.

잘못된 문제를 끝까지 풀어내는 것보다,

진짜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 훨씬 어렵고 훨씬 용감한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도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떤 포기는 방향의 수정이고,

어떤 질문의 교체는 더 깊은 이해의 시작이다.


봄이 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계절은 바뀐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경험으로도 알고, 이성으로도 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봄이 올 것을 알면서도, 봄이 없는 것처럼 산다.


긴 슬럼프 속에서, 이 상태가 영원할 것처럼 느낀다.


관계가 틀어졌을 때, 다시는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처럼 느낀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머리는 봄을 알지만, 몸은 겨울 속에 있다.

그리고 몸이 느끼는 것이 머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강하게 현재를 지배한다.


왜 그런가.

감각은 지금 이 순간만을 살기 때문이다.

봄은 아직 여기 없다. 지금 차갑고, 지금 어둡고, 지금 아프다.

그 사실이 너무 또렷해서, 올 것이라는 사실이 흐려진다.


앎과 느낌 사이의 간극.

우리는 그 간극 안에서 겨울을 살아낸다.


그런데 이 질문을 한번 뒤집어보면 어떨까.

봄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 어쩌면 잘못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겨울을 겨울답게 사는 것.

지금 춥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봄이 올 것이라는 사실로 지금의 추위를 덮으려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더 정직한 삶의 태도가 아닌가.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봄처럼 살려고 억지로 애쓰는 것,

그것도 일종의 거짓이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것.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이미 있는 것처럼 느끼려고 애쓰는 것.

긍정이라는 이름의 외면.

그것 역시 잘못된 풀이일 수 있다.


어쩌면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하면 겨울에도 봄처럼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지금 이 겨울을 어떻게 버티는가.


버티는 동안 무엇을 보는가.

이 추위 안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무엇인가.


봄은 분명히 온다.

하지만 겨울이 아무 의미 없는 기다림의 시간인 것은 아니다.

풀이가 펼쳐지는 곳은 언제나 지금 이 자리다.

봄이 아니라, 겨울 한가운데에서.


답이 틀렸을 때, 상황을 탓하기 전에 풀이를 보라.

풀이를 보기 전에, 질문이 맞는지를 먼저 보라.


그리고 봄을 기다리는 동안, 지금 이 겨울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외면하지 마라.

봄이 온다는 것을 아는 것과, 봄을 기다리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과, 지금을 사는 것은 또 다르다.


우리는 너무 자주 봄을 알면서,

겨울을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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