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터닝포인트
그때는 어떤 생각으로 배낭을 메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었다. 마침 같이 갈 누군가도 없었고 다들 자기만의 인생을 사느냐 바빴다. 다른 누군가와 시간을 맞출 바엔 차라리 그냥 나 혼자 떠나자 라는 생각으로 가고 싶은 곳을 생각했다.
푸른 바다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으면 더 좋겠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딱 떠올랐다. 혼자 제주도를 가보고 싶다.
세월호 참사가 겹쳐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남들은 다 수학여행으로 가본다는데 나는 가보지 못했다. 그 흔한 감귤 초콜릿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게 갑자기 억울했다. 난생처음으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내가 혼자 정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갑자기 기분이 들떴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모르는 시절의 나였다. 그냥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아무 일이나 하고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드리거나 그저 음식, 옷 취미생활에 돈을 썼다. 그때는 여행을 위해 돈 쓰는 게 아까웠다.
나를 위해서 썼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된 쉼을 위해서는 써본 적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봤다. 내가 정한 곳은 통창으로 제주도의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그다음 날 나는 바로 떠났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김포공항으로 들어가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참고로 나는 고소공포증을 아주 심하게 앓고 있는데 그 당시에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은 나에게 아주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고 제주 공항을 처음으로 두 눈으로 보았을 때 그 설렘과 첫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 눈으로 본 제주 공항의 야자수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그때의 나에게는 하와이 같았다. 왜 한국 사람들은 해외를 가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두고?
그렇게 짧은 감상을 끝으로 나는 택시를 탔다. 도저히 버스의 배차간격을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약해 놓은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찰나의 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주도에 와있다니 그것도 혼자서. 제주도를 가기 전 항상 꿈에 제주도를 가는 꿈을 꿨다.
꿈에서만 그리던 공간을 와보니 느낌이 남달랐다.
협재 해변을 도착했다.
뜨거운 햇빛을 맞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 행복이 있었구나
해변 한가운데 나 홀로 그 바다를 바라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들이랑 같이 온 사람들 커플들이 많았다. 혼자 온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모래사장에 털썩 앉아 그대로 한동안 바다만 바라보았다. 고요했다.
그때부터였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한창 불안정한 시기였다. 제주로 혼자 여행을 떠났을 당시에 나는 스물 넷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저마다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 나만 제대로 된 목표 하나 없이 항해하는 느낌이었다. 그저 저 바다에서 흘러 다니는 미역들처럼 하나의 미역이 된 기분으로 삶을 그냥 떠다니고 있었다.
우울했고, 삶의 이유를 찾지도 못했다. 가끔은 죽고도 싶었다.
나는 해변을 바라보며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반짝거리는 바다들이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했다. 잠시 뒤 엉덩이의 모래를 털고 일어났다. 입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는 협재 해수욕장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길을 헤매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약간의 긴장으로 문을 연 순간 스탭 한분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나름 외향인이라고 생각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대화를 걸 수 없었다. 왠지 모를 소심한 나의 모습이 나온 것일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스태프분이랑 한 여성분이 친해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짐을 두고 나와서 그저 가만히 숙소 안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뷰를 보며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스탭과 친해 보이는 여성분이 말을 걸었다.
" 여기 이걸로 그림 그려도 돼요 "
책상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색연필과 도구들이 있었는데 그걸로 그림을 그려도 된다 말을 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한마디 덕분에 어색함이 조금 풀어졌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의 몇 가지 정보를 알 수 있었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 그녀도 혼자 여행을 왔다는 점. 벌써 내가 오기 일주일도 전부터 이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다고 했다. 언제 다시 떠날지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그날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다. 밤에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파티를 했는데 파티에 참석하고 싶은 사람들만 정원을 받아 파티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낮에 말을 걸어주었던 그녀와 나를 맞이해 줬던 스탭분과도 이야기를 더 나눴는데 스태프분의 나이는 굉장히 어렸다. 스무 살이었는데 호텔조리학과를 나와서 요리를 잘한다는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날 밤 나는 그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연락처를 주고받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며 제주의 밤을 보냈다.
그녀는 나에게 나가자고 했다. " 여긴 별이 진짜 잘 보여 " 그녀가 하늘을 보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날 정말 무수한 별들을 보았다. 그날은 정말 어두웠는데 그래서 그런지 별들이 더 잘 보였다.
" 우리 누울까? "
나는 그날 처음으로 모래사장에 누워보았다. 아직도 난 그날을 잊지 못한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모래사장에 누워있던 그날을.
내가 여행을 떠나기로 하지 않았다면,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한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와 인연이 생기고 잊지 못할 기억들을 만들어간다. 나는 혼자 제주로 떠난 스물넷 그 시절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혼자 여행의 매력을 알게 해 주었던 여행이었기에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알게 해 줬던 여행이라 더 의미가 있었다.
혼자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모든 행위들은 특별한 의미로 남게 된다. 그날 나는 다짐했다. 혼자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경험해 보자고, 나를 위한 여행을 다녀보자고.
그것이 나의 혼자 여행의 시작점이자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