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도망쳐도 괜찮아

현명하게 도망치는 법

by 고우린

나는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물러 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하던 게 아니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써만 일을 해왔다. 카페 아르바이트 쿠팡 아르바이트 인포메이션 업무 백화점 주얼리 판매원 옷 브랜드에서 판매원으로도 일했었고 잡다하게 많은 경험들을 해왔다. 간호조무사로서 병원에서도 일해봤다. 서른도 안 되는 나이에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남들은 다 대학교를 들어갈 때 나는 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아무 생각 없이 어디에서든 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은 까먹은 지 오래다. 예전에는 책을 좋아하다 보니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다. 왜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분야로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나이는 나이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다 보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돈을 위해 하고 있는 내가 참 부질없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다음 카페에 글을 쓰는 플랫폼이 활발하게 교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카페가 망해서 글을 쓸 플랫폼 마저 사라져 취미로 글을 쓰던 생활을 접었었다. 그들은 다 지금 어디서 글을 쓰고 있을까 문뜩 궁금해진다. 새벽까지 글을 쓰고 그때는 참 열정이 넘쳤다. 그때 참 좋았었는데 생각하다가 글 쓰는 플랫폼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찾게 된 플랫폼이 브런치스토리다.


나는 최근에 잘 다니던 병원일을 그만두었다. 심한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때문도 있었다. 심리적인 불안감과 엄청난 스트레스를 몸으로 직접 겪게 되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 라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모아두었던 돈으로 나는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으로 떠난 곳은 묵호였다. 요즘 혼자 여행지로 떠오르는 게 묵호라는 여행지라고 들어서 무작정 차편을 끊었다. 계획을 잘 새우지도 않았다. 그냥 그만둔 다음날 바로 배낭을 메고 기차에 올랐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인간관계도, 휘몰아치는 불안도 그냥 집에 두고 왔다고 생각하고 온전히 나의 행복만을 위해 도망쳤다.


기차에서 내려서 묵호에 가본 적이 있는 지인이 추천해 준 칼국수집을 찾아서 도착했다. 내가 묵호에 도착한 날은 화요일이었는데 내가 찾아본 곳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나는 그 근처에 있는 광식이네 홍합 장칼국수로 향했다. 사람이 그나마 많은 곳이었다. 그중에서 절반이 아저씨들이었는데 한 커플 빼고는 전부다 아저씨들이었다. 오히려 더 정감이 가고 좋았다.


광식이네 홍합 장칼국수는 이름 그대로 홍합 장칼국수가 유명한 것 같았다. 나는 홍합을 좋아하지 않아서 기본 장칼국수로 주문했다. 나는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 막걸리를 먹어보는 걸 좋아하는데 지장수 막걸리가 묵호의 지역 막걸리 인듯했다. 내가 먹은 막걸리 중에 제일 맛있었다. 추천한다.


묵호는 화요일에 휴무인 곳이 정말 많다. 그래서 찾아본 곳은 다 가보지 못했다. 묵호에서 꽤나 유명한 카페인 도야 하우스를 다음 목적지로 정하고 걸어서 카페로 향했다. 묵호는 작은 동네인 만큼 대부분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니 만석이라는 글자와 함께 웨이팅을 해야 한다고 쓰여있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웨이팅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께 말씀드리니 " 저 자리라도 괜찮아요? "라고 하셔서 뒤돌아보니 딱 혼자서 앉기 좋은 좌석이 있었다. 기분 좋게 자리에 착석할 수 있었다. 다이어리를 쓰면서 책도 읽고 여유롭게 카페를 즐길 수 있었다. 도야 하우스는 디저트도 유명한데 치즈 테린느가 진짜 맛있었다.


카페 안에는 조용한 분위기다 보니 디저트를 먹으면서 커피를 즐기시는 분들과 졸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


카페에서 나와 논골담길로 향했다. 묵호에 가는 분들은 무조건 논골담길을 가보시는 걸 추천한다. 나의 불안과 인생에 대한 모든 생각들을 그곳에서 버리고 올 수 있었다. 내가 본 풍경들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한 가지 법칙이 있는데 인생에서 정말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오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처음 제주로 여행을 떠났을 때부터 그 법칙을 지키고 있다.


이 방법은 어떻게 보면 회피라고 볼 수 있다. 건강한 회피 방법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어느 정도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남들이 보면 정말 편한 인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살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묵호 여행에서 그래 내가 좋아하는 것은 글 쓰는 것과 여행이었지 라는 생각이 번뜩 들면서 그래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써보자 다시 한번 써보는 거야 하면서 들뜬 마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나의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도망친다고 해서 다른 시도를 하지 못한다거나 땅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도망침으로 인해서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도 번아웃이 왔을 때 어디론가 도망쳐보길 바란다. 그로 인해서 또 다른 새로운 길들이 펼쳐질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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