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나오고 싶지 않아

가끔 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

by 고우린

나는 옛날부터 소극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요즘 시대의 그들은 말하던가 외향인이라고. 나는 그들이 말하는 외향인이다. 안에 있으면 좀이 쑤시는 사람. 내향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던 사람이다. 왜 그들은 안에서 즐거움을 찾지? 나는 도파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안에만 있으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스물아홉이라는 나이가 되니 밖이 싫어졌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두렵고 지친다. 나는 항상 사람들과 만나는 직업을 가졌다. 항상 소통해야 했고 그것을 좋아한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브레이크가 걸려버린 걸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까 뒤에선 어떤 소리를 하고 있을까 매일이 두려웠다.


나는 나를 아는 세상과 단절하고 싶어졌다.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그대로 굴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제야 내향인,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온전히 나를 위한 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걸까. 내 마음의 소리를 외면했던 것 같다.


어떤 기사를 보았다. 구직하지 않는 20대 청년들이 작년보다 몇 프로 늘었다는 수치화 하는 기사들이었다. 요즘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플랫폼들이 너무 많다. 그들과 나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남들의 삶을 훔쳐볼 수 있다. 나만 이렇게 사는 걸까 라는 고민을 할 때 그런 기사를 보니 약간 안심이 되었다. 나만 멈춰있는 게 아니구나 그들도 나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게 힘들고 지쳤던 걸까. 많은 생각이 들더라. 누군가는 비난한다. 20대 청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니 부럽다는 등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삶을 판단하고 속단한다.


그들이 왜 멈춰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항상 앞만 보고 달려갈 수는 없다. 나는 제대로 쉬어주는 것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달려가다 보면 지금의 나처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집이라는 굴 속에 들어와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생각보다 내향인의 자질도 갖추고 있는 사람이구나


술보단 차를 한잔 마시고 책을 보며, 영화를 보고 가끔은 나의 생각도 적어보며 나 자신을 더욱 들여다보는 생활을 가져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나만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명상을 하고 가끔은 혼자만의 내면의 소리를 들여다본다.


나는 지금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나아가는 그들을 보며 부러울 때가 있다. 나는 아직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다짐으로 살아가야 할지 나아가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나는 굴 속에서의 생활을 하면서 나에 대한 확신이 들었을 때 다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2026년 내년이 되면 나도 서른이라는 나이를 접한다. 서른 말만 들어도 주춤하게 되는 나이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가까워지는 나이 그저 어린 나이가 아니라고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라고도 한다.


나는 서른이라는 숫자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은 나이라고 해도 멈춰있을 수는 없다. 서른의 나이에 나는 시작했다고 시작할 수 있다고 이걸 보는 모든 분들한테 말해주고 싶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나는 누군가가 이제 곧 서른이야 우리도 참 나이 들었다고 이야기할 때 서른 살들 중에서는 가장 막내잖아?라고 이야기한다. 정의하기 나름이다.


곰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텼다. 나도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 중이라고 생각한다.




집 안의 생활을 하다 보니 패턴이 생겼다.


일을 할 때는 9시부터 일곱 시 반 여덟 시 꽤나 규칙적인 생활을 했었다. 새벽 일곱 시 그전에도 늘 눈이 떠졌었고 10시에는 잠들었다. 집 안의 생활을 하다 보니 꽤나 불규칙적인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새벽 두 시 세시가 되면 그제야 잠이 든다. 뭔가 배덕감이 든다. 기분 좋은 배덕감이다.


새벽만 되면 갑자기 문뜩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럴 땐 글을 쓴다. 새벽까지 글을 쓰다 보니 그제야 잠에 든다. 불규칙한 생활을 하다 보면 남들이 못 듣는 소리들도 듣게 된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윗집의 싸우는 소리를 새벽 내내 들을 수 있다. 원망 섞인 목소리가 새벽 세시까지 이어졌다. 아들과 그의 어머니인듯했다. 제일 알리고 싶지 않은 그들의 속마음을 몰래 훔쳐 듣는 거 같아 썩 마음이 좋진 않았다.


새벽은 참 이상한 시간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훔쳐 들을 수도 있고, 마음이 외롭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창작물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새벽 늦게 잠을 이루면 늦은 아침이 시작된다. 아침도 아닌 점심 시간대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매번 아침을 걸렀다는 죄책감이 몰려오긴 하지만 늦은 점심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해 정신을 깨우고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면서 밀린 드라마를 보고 침대 위에 다시 누워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얼마 전에 드라마 한 편을 보았다.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는데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돼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이 가장 외로운 존재라고 말한다. 그걸 들은 상대방은 혼자 있으면 혼자라서 외롭고 같이 있으면 혼자될까 봐 무섭고 부자면 부자라서 무섭고 가난하면 가난해서 무섭고 외로움만큼 공평한 게 어딨냐고 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머리를 띵 하고 한 대 맞은 것 마냥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외로움만큼 공평한 게 없다. 누구에게나 외로움은 있다. 한때는 나만 이 외로움과 싸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들 누구에게나 외로움은 존재한다.


하지만 저 대사를 들은 주인공은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누구보다도 내가 쪼금 더 외롭다고


그래 자기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은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다. 나 자신이 가장 외롭고 비참하다.


나는 지금 아무도 느끼지 못할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집 안에 있으면 나의 외로움과 공허함들을 마주할 수 있다. 언젠가 외로움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내면의 우울함을 극복해 본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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