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화된 행복 밖의 진짜 행복을 찾아서
올해 3월 UN이 발표한 ‘2025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58위를 기록했습니다. 상위권은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이 줄줄이 차지했어요. 이는 여론조사 기관, 갤럽과 협력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사회적 지원, 건강 수명, 자유, 관대함, 부패 수준 등 6가지 요소를 반영한 수치인데요. ‘한국이 북유럽보다 당연히 잘 못 살잖아?’라고 생각했다면, 한국 절반 수준 GDP인 코스타리카가 6위를, 치안이 불안한 멕시코가 10위를 기록한 것에 놀랄지도 몰라요.
핀란드 국민은 행복 요소로 높은 소득이나 복지 수준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신뢰, 미래에 대한 낙관, 친구와 가족의 지지 등을 꼽았어요. 하마스와 전쟁 중에도 8위를 기록한 이스라엘 국민은 93.7%가 힘들 때 의지할 친척이나 친구가 있고, 79%가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응답했죠. 한국 사회가 비교적 높은 경제 수준과 안전한 환경을 갖춘 점을 고려하면, 행복에 대한 오해나 심리적 이유로 오롯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사회에선 어렸을 때부터 순위를 매기고, 등급을 나누는 것에 익숙해요. 성적으로 줄을 세워 등수를 게시판에 붙여놓고, 적성보단 대학의 순위와 과의 경쟁력을 따져 지원하니까요. 그렇게 사회로 나오면 아파트 평수, 한 해 동안 버는 급여, 몰고 다니는 자동차로 소모적인 경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보다 수치가 낮으면, 일상에 불편함이 없는 데도 만족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거예요.
물론, 소득 수준은 행복하기 위한 기본 지표가 돼요. 안전한 쉼터, 원하는 교육, 풍족한 식생활을 보장하니까요. 다만, ‘이스털린의 역설’에 따르면 기본 욕구가 일단 충족되면, 행복 수준이 소득에 꼭 비례하지 않아요. ‘높아지는 소득이 어느 시점에서 무조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아니에요. 소득의 절대적인 가치보다 상대적 가치가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한국에선 수치화된 행복에 너무 익숙해서 행복에는 소득 수준 외에도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자주 잊어버리게 되곤 해요. 돈을 위해 건강이나 인간관계를 희생했다면, 행복하다고 말하기 어려운데도요!
UN 세계행복보고서로 돌아가면, 유난히 한국이 자주 언급된 챕터가 있어요. ‘절망으로 인한 죽음(Deaths of Despair)’이에요. ‘절망사’는 자살, 약물, 알코올 중독에 따른 사망을 뜻하고, 당연히 이 수치가 높을수록 ‘행복한 국가’와는 더 멀어져요. ‘절망사’에는 복합적인 배경이 있겠지만, 한국의 경우 과도한 경쟁과 비교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도움 요청이 어려운 분위기가 한몫한다고 생각해요. 경쟁이란 타인보다 내가 더 잘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과정이니까요.
이미 경쟁 사회 속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걸까요?!
사실, 행복을 성취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생각보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어요. 심리학에서 행복은 ‘개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긍정적 심리 상태, 즉, 주관적 안녕감’이에요. 즐거운 감정뿐 아니라 삶에 대한 만족도, 삶의 의미와 보람을 포함하는 개념이죠. 목표 대상이 아니라 주관적 상태라는 것이 핵심이에요. 감각과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행복은 내가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의 조건을 잘 알고, 일상에서 그걸 자주 마주하도록 설계할 때, 가까워지는 상태인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연스럽게 느껴요. 하지만, 그 기준은 취향, 가치관, 성향, 환경 등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어요. 행복을 좌우하는 건 객관적 수치가 아니라 주관적인 심리 상태니까요. 평가와 비교 중독의 고리를 끊어야, 진짜 나에게 중요한 것을 잘 가려낼 수 있고요. 경쟁의 관점을 벗어나야, 옆에서 달리는 사람이 경쟁 상대가 아니라 도움을 주고, 또 받을 수 있는 상대라는 걸 비로소 알게 돼요.
주변을 경계하면서 달리는 인생 레이스는 아름다운 주변 풍경도, 물 한 잔의 시원한 맛도 무감각하게 만들어요.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나만의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하는 이유는 ‘행복한 나라’ 1등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만족하는 삶을 위해서라는 걸 기억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