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아니라 낙인이 문제였다

영화 <얼굴>이 마음에 남긴 질문

by Light Life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대했던 영화, <얼굴>을 보고 나서 한 질문이 오랫동안 남았어요.


‘왜 이렇게까지 되어야 했을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인물들이 남긴 말과 행동을 계속 곱씹어 보았고, 이 이야기는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굳어지고, 퍼지는 과정을 그렸다는 걸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죠.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얼굴>에서 박정민 배우는 1인 2역을 소화했어요. (사진 출처: 영화 <얼굴>)



정영희 씨가 얼굴을 잃어버린 이유


영화 <얼굴>은 도장을 파는 임영규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돼요. 그는 시각장애인이자 손끝으로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도장을 파는 전각 장인이에요. 그의 곁을 지키는 건 홀로 키운 아들 동환이고요. 어느 날 동환은 경찰로부터 ‘어머니 정영희의 유골을 찾았다’라는 연락을 받아요. 동환이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죽음을 의도치 않게 파헤치게 되면서 결국 진실이 드러납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영희가 ‘이상하고 못생겼다’고 입을 모아 말해요. 동환을 따라가는 관객은 러닝타임 내내 이 말을 반복해서 들을 수밖에 없고요. 영화 마지막에 공개된 영희 얼굴을 보곤 ‘생각보다’ 평범하다고 느껴졌는데, 그때 ‘아차!’ 싶었어요. 정신과에서는 낙인(Stigma)이 대상의 실제 특성이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소문, 지위, 프레임에 의해 형성된다고 설명하거든요. 저 역시 영희의 얼굴을 보기 전,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먼저 상상했고, 실체를 마주했을 때 머릿속 이미지보다 괜찮다고 느낀 거예요.


극 중 영희는 어려서부터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어요. 그 결과 위축된 모습과 소심한 성격이 형성되었죠. 영희는 ‘사회적 취약성과 반복적 외상(C-PTSD)’이 결합된 인물이에요. 약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약함을 용납하지 않는 환경이 영희를 무너뜨리는 셈이죠. 그리고 영희같은 사람은 또다시 집단 안에서 쉽게 낙인의 대상이 되곤 해요. 누군가의 불안과 결핍이 흘러갈 가장 안전한 배수구 역할은 가장 약한 사람에게 배정되니까요.



선량한 약자의 가면을 쓴 영규

이 영화에는 완벽한 악인도, 완벽한 선인도 없어요. 영희를 밀어낸 공장 사람들은 ‘불편해서’, ‘분위기를 맞추느라’, ‘다들 그렇게 말하길래’ 믿었던 것뿐이에요. 하지만, 그 의도 없는 잔인함이 하나둘 모여 낙인의 폭력성을 완성하게 돼요. 그 정점에는 영규가 있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애 극복 서사'를 가진 인물이지만, 이름, 평판, 껍데기에 집착하는 그의 위선은 살인마저 합리화하려고 해요. 이 행동을 정신병리학적으로 해석한다면, 단일 진단보다 메커니즘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tempImageoEcGGX.heic 영규는 영희가 다니는 공장 사장처럼 힘이 있는 사람의 뉘앙스에도 아주 민감해요. (사진 출처: 영화 <얼굴> 포스터)



타인의 멸시가 인정으로 반전된 건 영규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도장을 파기 때문이에요. 멸시받은 세월이 그의 자존감을 취약하게 만들었다면, 기술 하나로 인정받은 지위는 과대한 자아상을 완성해요. 그 위태로운 결합이 타인의 행동을 계속 ‘공격’으로 해석하는 ‘의심 기반 의미 부여(Paranoid Meaning-Making)’ 경향으로 연결된 거예요. 영규가 과대 해석한 영희에 대한 소문이 영희를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게 된 일상의 상징’에서 ‘인생의 걸림돌’로 격하시킨 거고요.



이 영화가 주는 불편함의 정체



이 영화는 ‘미의 기준’을 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돌아보게 만들어요.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하며, 스스로 편견을 경계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는데요.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사회적 통념과 개인의 경험이 만든 프레임 안에 넣어온 건 아닐까' 질문하게 되었어요. 영화가 비판하고자 했던 시선에서 저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tempImageZw69DS.heic 영규의 아들 동환은 진실을 마주하고도, 영규의 합리화에 동조하게 됩니다. (사진 출처: 영화 <얼굴> 포스터)


우리는 모두 낙인을 찍은 사람일 수도, 방관한 사람일 수도, 한 끗 차이로 낙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영희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적 심리 구조에 대한 기록이 돼요.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 얼굴이 아니라 숨 쉬듯 낙인을 찍는 이 사회 시스템이니까요.



당신은 얼굴을 어떻게 바라볼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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