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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성 Oct 22. 2024

나다움으로 그리는 세상

왜 기본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가

'나는 2학년 차노을! 차미반의 친구!'


세상 무해한 가사를 읊는 9살 아이의 목소리가 연일 귓가를 맴돈다. 아버지와 함께 만든 장기자랑 영상 덕분인 걸까. 친구 사귀는 것이 두려웠던 아이는 이제 여자친구가 있다고 아버지에게 자랑을 한다.


20살 무렵의 나도 노을이처럼 세상이 두려웠다. 누군가 부르면 얼굴이 빨개졌고, 발표를 할 때면 손발이 바들바들 떨렸다. 공부도 늘 뒷전이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수업도 빼먹기 일쑤였다. 성적표에는 F가 가득했고, 미래를 그리기는커녕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저 술과 게임에 취해 책임 없는 쾌락을 누리며, 어설프게 시간을 때우다 군으로 도피했다.


역설적이게도, 세상과의 단절로 인해 세상의 깊이를 더 선명히 볼 수 있었다. 2년이라는 고독의 시간 동안, 고전과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만났다. 데미안의 고뇌, 파우스트의 번민 장 발장의 연민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의 외침은 내면에 잠들어 있던 질문들을 깨웠다. 하지만 세상으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질문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체계와 구조를 답습하며, 듣기 좋은 대답만을 되풀이하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나는 내 욕망에 대해서조차 질문하지 못했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내 고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외면한 채 타인의 기대와 집단의 신념에 휘둘렸다. 고전을 읽으며 작게나마 깨우쳤던 지혜는 깨진 컵에 담긴 물처럼 서서히 새어나갔고, 나는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살아갔다.


첫 직장이었던 N사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었지만, 내가 꿈꾸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거대한 시스템의 한 부품, 살아있는 ATM기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외려 날개를 접은 채 작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 '보좌관'을 보다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다던, 어렸을 적 유치했던 꿈이 문득 떠올랐다. 처음으로 느낀 내적 충동과 드라마의 폐해로 인해, 어느새 나는 국회의원 비서관이 되어 삼시 세끼를 사무실에서 해결하며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오명을 들은 21대 국회의 현실은 참담했다.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관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보였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왔는지,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망각한 듯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사라지고, 철 지난 이념과 열성 지지자에 목멘 팬덤 정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당 내에서의 민주주의도 실종되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토론을 통해 이념을 선도해야 할 정당의 본질은 찾기 어려웠다. 그저 최고 권력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요구하는 종교집단과 다름없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좌표를 부르고, 찍어내는 행태는 마치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을 보는 듯했다.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고귀한 행위가 아닌, 권력 투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정무적 판단만이 중요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었고,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국민을 대표해서 일하겠다는 순수한 권력의지는 정권 창출을 위한 맹목적 욕망으로 변질됐다. 마키아벨리가 경계했던 권력을 위한 권력의 추구,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논리의 현대적 재현이었다.


겨울 무렵, 어느 늦은 밤


따라서 말로만 선한 영향력을 외치는 위선자가 되는 대신, 나다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기본학교’에서 공부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하며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결국 나를 나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나 또한 스스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라고 말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맹목적으로 희생하겠다는 말 또한 위선이라고 느껴진다. 그저 내 가족과 아이를 위해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상식적인 합의를 이루는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 각자의 삶의 지향을 존중하면서도 더불어 사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 즉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연대가 조화를 이루는 따뜻한 공동체라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이 그림의 첫 붓질을 위해, 나라는 붓끝을 갈고닦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이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고독한 과정이다. 나는 이 선택의 책임을 온전히 짊어지고 나아가고자 한다.


함평 고산봉에서 바라본 일출

현재 우리 사회는 갈등과 혐오가 뒤섞여 굳어진 물감과 같다. 이를 녹여내고 새로운 색채를 만들어내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 리더의 과제다. 불편함을 들춰 내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우리가 가진 캔버스의 여백에 창조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시기에 가장 큰 변화의 시작이 찾아왔다. 지금의 위기가 오히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서기 위해, 나는 이제 나의 주인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낡고 편협한 이념에서 벗어나 건너가는 존재로서, 이 사회를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의 정체성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주인이 되었을 때, 아이의 정신을 가진 맑은 사람으로 남아있기를. 그러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찰하고, 성장할 것이다. 차노을이 아버지와 함께 만든 영상으로 세상에 한 걸음 나아갔듯, 나는 '기본학교'를 통해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이러한 욕망이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눈을 감기 전 "사람답게 살다 갑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위 글은 기본학교 지원을 위해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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