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언어, 살아 있는 나

<진화하는 언어>(모텐 H. 크리스티안센, 닉 체터)

by 필레말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어떻게 하면 언어를 잘 학습하고 효과적으로 익힐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언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연구하였지만, 그러한 방법은 매우 기초적인, 낮은 레벨의 시험에만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생각과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어 그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언어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왜, 어떻게 지구상에는 이토록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물음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고자, 또 어쩌면 그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제대로 된 언어공부법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언어의 기원과 진화를 다룬 책들을 구입하였다. 그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바로 <진화하는 언어>이다.


언어는 단지 단어와 문법의 조합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감정,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점에서 매우 복합적인 성질을 지닌다. <진화하는 언어>는 바로 이 '언어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안내한다. 언어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어떻게 언어를 사용하며 발전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어떻게 현재의 기적과도 같은 언어 체계가 형성되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사회라는 복잡한 구조를 가능하게 한 기반이라는 사실이었다. 언어가 있었기에 인간은 지식, 기술, 종교적 전통, 도덕적 규범과 같은 비물질적인 개념들을 형성하고, 이를 세대를 넘어 공유하며 저장할 수 있었다. 한 개인의 경험은 언어를 통해 집단의 지혜로 전환되었고, 이 축적이 문명과 문화를 가능하게 했다. 다시 말해 언어는 사회를 만드는 도구이자,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언어가 미리 정해진 구조에 따라 자동으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협력과 즉흥성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독일어 공부 방식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1년 전 독일어를 시작했을 당시, 나는 독일어를 단순히 어렵다고만 생각을 했었고, 시험 중심의 학습에서 치중했었다. 이 책을 읽고 그 어려움의 원인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인간 간 협력을 전제로 하는 '살아 있는' 매개체로서의 언어를 종이 위에 '숨 쉬지 않는' 잉크들로만 받아들인 것 같다.


이 책은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도 포함한다. 오늘날 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이 인간처럼 말하고 글을 쓰는 수준에 도달했지만, 저자는 인공지능이 언어에 있어서 인간을 뛰어넘기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 이유는 언어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과 맥락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는 감정, 은유,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협력'이라는 사회적 기반을 포함하고 있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라 해도, 이러한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층위를 완전히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라오면서 보고 배운 문화를 인공지능이 직접 참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은 나에게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단지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 자체를 확장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진화하는 언어>를 통해 나는 언어를 학문적 대상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식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독일어 이외의 새로운 외국어를 배울 때에는 이러한 방법을 적극 활용해 볼 예정이다. 이전에는 단순히 단어를 외우고 문법 문제를 푸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실제로 그 언어를 '사용'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짧은 문장을 만들어보거나, 일상적인 상황을 외국어로 묘사해 보기,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소리 내어 말하는 등을 연습을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즉흥적인 상호작용'을 늘려나갈 것이다. 언어는 외워야 할 구조물이 아니라,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소통 의지를 갖추고 있다면 외국어 습득의 과정 자체로도 즐거운 여정이 될 것이다.


언어는 특정 집단의 가치관과 문화를 반영한다. 그렇기에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서 나 역시 말하거나 글을 쓸 때, 단어를 조금 더 조심스런 게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같은 의미의 문장이라도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 방식에 따라 상대방이 느끼는 존중, 거리감, 유대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를 결국 실용적인 도구를 넘어,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언어로 기쁨과 슬픔, 분노, 사랑을 표현하며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렇기에 더욱 섬세하고 책임감 있는 언어 사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깊이 있는 인간 탐구를 위한 책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