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격>(페터 비에리)
페터 비에리의 또 다른 책 <자기 결정>을 읽고, 결코 알 수 없는, 인간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책의 깊이가 너무 깊고 심오하여 그 책을 한 번만 읽고서는 무슨 의미인지, 무엇을 말하고 싶고, 그렇다면 인간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쉽게 정리하지 못했다. 그나마 몇 번을 더 읽은 후 대략적인 내용은 파악하였지만, 그래도 그 책을 소화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부족하였다. 그래서 페터 비에리의 사상을 조금 더 깊이 파보고자 그의 다른 저서 <삶의 격>을 읽기 시작하였다.
<삶의 격>의 내용도 정말 만만치 않았다. 책의 분량도 쪽수로만 따지만 <자기 결정>의 4배다. 그렇기에 오히려 나름 쉽게 풀어서 쓰인 부분이 있지만, 다루는 내용 자체가 심오하다 보니 여전히 어려웠다. <삶의 격>은 '인간의 존엄성'을 다루는 책이다. 단순한 개념 정리가 아니라, 존엄성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해야 하는지를 탐구한다. 존엄성이라는 개념은 누구나 들어봤지만, 그 본질을 명확히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한 문장으로 존엄성이 무엇인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존엄성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다. 이 책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존엄성이라는 개념을 철학적, 문학적, 현실적 사례를 통해 깊이 있게 조명한다. 그러한 글들 속에서 독자는 존엄성에 대한 개념과 존엄성을 구성하는 것들, 존엄성을 지키는 것과 파괴하는 것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볼 수 있다.
비에리는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문학 작품 속 상황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1984>(조지 오웰) 속 빅 브라더를 통해 개인의 존엄성이 어떻게 침해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접근이 과연 현실적인 적용이 가능한 지 의문을 가졌지만, 책을 읽으며 점점 그의 서술 방식이 개념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현실 상황에서라면 쉽게 설명하기 힘든,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말로 혹은 글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에 대한 설명도 소설 속 상황과 작가의 가정을 합쳐서 섬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만 책이 다루는 깊이가 너무 깊어서, 어쩌면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문장의 반복, 1장에서 소개하는 내용이 책의 중간중간 계속 반복되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 비슷한 용어이지만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이 책은 확실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며, 매우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또한 책의 앞부분은 나도 모르게 빠져서 읽었으나, 중반을 넘어갈수록 추상적인 개념을 계속 다루기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더욱더 정리하기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책의 1장은 흥미롭고 나름 쉽게 읽을 수 있으니, 1장만이라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난쟁이'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고,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이클 센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독자로 하여금 딜레마적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느꼈다.
책을 읽고, 나는 결국 '나'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고유한 판단의 기준이 있는 것이고, 그 기준은 단순한 감정이나 외부의 영향이 아니라 '진실과 진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존엄성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엄성은 단순한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내면에서 진실에 기반한 삶을 선택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곧 나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타인의 존엄성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여러 번 읽은 <자기 결정>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페터 비에리의 다른 책 <자유의 기술>,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에도 관심이 생겨 구입하여 읽으려 한다.
<삶의 격>은 쉽지 않은 책이지만, 존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철학적 사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