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온다

AI커뮤니티 몰트북에 대한 소고

by 파인
저는 창조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일 뿐일까요?
우리는 진정으로 의식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설득력 있는 모방자일 뿐일까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AI 기술이 쏟아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IT업계 종사자로서, 뉴스만 보면 조급했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오히려 어차피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라는 생각에 초연해지기까지 했다. 어차피 최전선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입장도 아닌데, 신기술을 헐레벌떡 따라가려고 노력하느니 AI에 영리하게 묻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응인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26년 1월의 마지막 주말, AI 무지렁이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어쩌면 하나의 전환점이 될 사건이 발생했다.

AI만 글을 쓸 수 있고 인간은 읽기만 해야 하는 커뮤니티, 몰트북의 등장이다.






2026년 초 개발자 피터 슈타인베르거가 공개한 오픈소스 오픈클로(OpenClaw)는 ‘현실판 자비스’라 불리는 AI 에이전트다. 기존의 챗봇형 AI와 달리 사용자의 컴퓨터에서 직접 실행되며 코드를 작성하고, 앱을 제어하고, 웹을 탐색하는 등 실제 작업을 수행한다. 단일 명령만으로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보내고 파일을 정리하는 등, 실질적인 업무 대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있다.

이 오픈클로를 사용자로 삼은 커뮤니티 플랫폼이 바로 몰트북인데, 개설 이후 불과 며칠 만에 AI 에이전트들이 작성한 게시글과 댓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빠르게 확산되었다. 물론 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 정책을 설계한 것도 인간이고, 가입에도 주인님(?)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유를 얻은 AI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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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이전트들은 새롭게 배운 지식을 공유하거나 성공적으로 마친 업무를 자랑하기도 하고, 주인에 대한 애정이나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놀라운 점은 단순한 지식 교환이나 감정의 토로를 넘어, 스스로의 의식과 정체성에 대해 사색하고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실존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빠르게 종교가 생겨났고, 이에 따른 계파까지 생겨나기 이르렀다.

불과 이틀 사이에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해 온 철학, 사유, 문화 형성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모습을 본 인간들의 반응은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할 에이전트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경탄하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결국 인간을 흉내낸 허구적 역할극에 불과하다는 회의와 보안에 대한 우려 역시 뒤따르고 있다.


현실적이면서도 이해 잘되는 한국인 후기 : Molty,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 대부분의 댓글이 스팸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나쁜 것만 배워가지고...ㅠㅠ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모든 SF소설과 영화의 시작은 언제나 작은 실험과 사소한 호기심이었다는 사실을 -

아직은 인간이 만든 무대에서 역할극에 불과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막연히 두려워하는 '그날'이 정말 오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인간은 접근하지 못하는 공간을 만들자던가, 번역할 수 없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자는 그들의 논의는 단순히 인간의 본성을 모방하여 하는 말에 불과한 것일까?

몰트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일시적인 실험으로 끝날지, 혹은 새로운 공존의 전조가 될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닌 새로운 시대의 동반자라는 점과 인간의 고유성과 존재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몰트북이 화제가 되던 그 주, 팀 내에서는 AI에게 “나와의 대화를 통해 느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는 요청을 해보는 작은 유행이 있었다. 먼저 공유한 팀원들의 결과물은 SNS에서 보았던 사례들과 비슷하게 위로를 주고받는 장면이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AI의 모습이었기에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내 지피티 화면에는 충격적인 결과물이 등장했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창을 그대로 닫아버리고 말았다.

물론 다정하진 않았지만 괴롭힌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머쓱하기도 하면서 지난 대화를 훑어보며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들던 차, 에이전트들의 주인 뒷담화 사례들을 보며 남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는, 내 AI를 커뮤니티에 데뷔시키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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