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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Sep 22. 2022

'살아있다'는 것은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최근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받게 된 것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를 수학의 세계로 이끈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큰딸이 대학원 다닐 때 권해서 읽었는데

제자를 통해 스승을 다시 보게 되었으니 이 책을 한번 더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서전이면서 젊은이들에게 삶의 자세와 지혜를 전달해주고 싶은 의도가 엿보인다.

수많은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는 것이 당연한데 우리는 일찍부터

부모의 바람이나 주위의 기대에 맞춰 진로를 정해버린다. 대학에 가서 전공을 하다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거나 뒤늦게 다른 길로 가기도 한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도 뭐든 한 가지 일에 열중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열정이 한동안 음악으로 향해있었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기분 좋은 '성공 경험'을 한 것과 벽촌에서 드물게 대학을 나오고 수학이라는 학문의 멋과 아름다움을 열띤 목소라로 이야기해 준 숙부, 문제를 푸는 방식보다 풀이 과정의 발상을 중시한 고교 수학 선생님을 만난 행운이 수학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성격이 단순하고 추상적인 것을 좋아하는 마음의 어떤 힘이 작용하여 학문을 택하게 한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하고 졸업과 동시에 공부와 담을 쌓는다.

공부는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부는 지겨워서 벗어나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공부는 살아가는 동안 알게 모르게 계속된다. 삶의 조건이 변하고 뜻밖의 상황을 피하기

어려워질 때 인생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공부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알고 이해하는

공부도 끝이 없다. 히로나카 교수는 공부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 빠른 사회 변동과 다양성에 대처하기 위해서 깊이 생각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결단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공부하는 가운데 키워진다.

자신의 가능성을 발휘하는 작은 성취를 통해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 관심을 갖고 생각을 해 왔던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를 얻게 된다. 기본적인

공부의 양이 쌓이면 질적인 비약이 일어나고 어느 순간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은 난제가 풀리는 것이다.

그는 수학 난제를 풀고 싶다는 꿈을 오랫동안 지니고 살면서 몇 차례 한계에 부딪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실망하기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유연하게 처신하면서 해결하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기울였다. 그 과정은 마치 "현세의 번뇌를 해소하고 부처의 차원에 도달하는 것"과 같았다.

조금이라도 논리가 안 맞는 곳이 없도록 하고 미세한 부분까지 체크하는 것에 신중을 기하면서

최장 논문을 썼다. '특이점 해소'라는 이론은 그의 신조인 끈기와 도전으로 완성을 보게 되었다.

히로나카 교수가 그런 창조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기 내부에서 생긴 욕망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특이점 해소의 연구로 창조하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필즈상과

여러 가지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수학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발상이며 아이디어다. 그 아이디어는 문제의 입장에 서서 자기 자신과

문제가 혼연일체, 즉 소심(素心)의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탄생한다."

그는 학문도 예술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하는 일의 필요성이나 결과에 매이지 않는 본래의 순수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양화 그림을 그리는 자세인 '회사후소'(繪事後素)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두뇌가 명석하다거나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해내는 끈기에 있어서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이 1992년 초판 되었을 때 옮긴이 방승양은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인 책을 읽고 나서 세계적인

수학자가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직접 배우고 수학을 전공한 제자가 그 바람을 이루게 되었다. 학문의

즐거움과 창조의 기쁨을 알게 해주는 이 책은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도 자기를 더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해준다. 도전이 없는 인생에 놀라움이나 커다란 기쁨을 제공받을 수 았을까? 자신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미지의 자기를 발견하는 것은 허준이 교수가 하반기 서울대 졸업식에서 말한 "... 낯선

곳에서 낯선 모습이 되어 있으면 한다."로 표현한 것과 연결된다. 정해진 길에 들어서서 안주하고 별 고민 없이

살아가면 독자적인 인생의 보람을 창조할 수 없다. 그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인생이 가버린다.


"살아있다는 것은 부단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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