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규원 Sep 30. 2022

표면과 깊이


우리 모두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할 방법을 각각 지니고 있다. 예술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표현방식 가운데 하나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징이고 유대감을 키워준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손으로 작업하거나

몸과 도구를 사용해서 표현한 것이 감정과 의식을 고양시켜주기 때문이다.


나는 약간의 재능을  가지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좋았다. 당연히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하고부터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술은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계속 괴롭혔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자칫

사회와 거리를 둔 작가의 주관적 세계로 빠질 위험과 자기만족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한계처럼 보였다.

그런데 현실을 직접 반영하려는 '메시지 예술', 즉 정치적 이념을 선전하는 도구로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도 문제였다.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 당시 암울하고 희망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신학을 전공하며 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고자 하기도

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내가 얼마나 그림을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통해 위로를 얻고 사는지

깨달았다. 좋은 그림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작업을 하게 되었다. 굼뜨고 기술은 부족해도 표현하고 싶은 진실이 있다면 가능하리라.

잘 다듬어진 매끄러운 말은 진실과 깊이에 닿지 않고 미끄러지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사물의 표면에 천착하는 감각적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나는 가볍게 소비되는 그림이 아니라 예술 작품이길 바리는 거의 불가능한 꿈도 꾼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예술가 라기보다는 삶을 다정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아름다움의 힘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리는 일이다. 그렇다고 열정에 가득 차고 영혼을 쏟아붓는 정도까지 미치지

못해서 대단한 것은 없다. 외로움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랑과 아름다움이 조금이라도 느껴지길 바랄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니체의 말대로 무서운 깊이를 지니고 아름다운 표면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 실존의 ‘깊이’라는 차원은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적어도 고통을 겪고 역사를 알고 ‘기억’하는 일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사물의 중심을 찾고 본래적인 것, 근원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뭐 그런 정도?”

설마 내가 개인전을 여는데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겠지···! 요즘 정해진 때가 다가올수록 점점

날짜를 세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걱정과 기대라는 씨줄과 날줄로 시간을 직조하듯 흘려보내고 있다. 설레기보다 가라앉는 가을 탓인지. 리플렛 작업에 들어가려고 보니 딱히 주제에 맞게 내세울 먼 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고차원적인 주제를 잡았나? 작가 노트를 준비하면서 메모해 둔 쪽지를 발견했다.

프로방스의 생 폴 드 방스에 묻힌 샤갈의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대가를 따를 수야 없지만 용기를 내야겠다.


"인생이나 예술에서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가 사랑이란 단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입 밖에 낼 수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하게 된다.


진실한 예술은 사랑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것이 나의 기교이고


나의 종교다."




마르크 샤갈




<쉼>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있다'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