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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Oct 09. 2022

영원한 것으로부터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필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닐 올리버 지음 / 이진옥 옮김


추석이 한참 지나고 가을인데 날씨가 포근하다기보다 더웠다. 10월에 접어들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라는 노래가 자주 들리고 상념에 잠기게 한다. 이틀 동안 비가 세차게 내리다가 멈추다가 했다. 이제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을 재촉해서 쌀쌀해질 거라는 예상대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가을이 깊어질 11월에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그림 작업은 끝냈는데 글을 쓰는 것이 문제였던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생각해온 주제와도 맞아떨어져서 더 흥미로웠다.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한 오래된

흔적들과 기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고대 인류의 삶을 통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몇 가지 주제로

쓴 고고학 에세이가 친절하게 현장을 안내하고 감동을 준다. 먼저 360만 년 전 탄자니아의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성인 둘과 아이 하나)에서 우리의 먼 조상이 직립보행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기 위해 두세 걸음 떨어져 걸으며 자신보다 가족의 안전을 우선시했던 여성의 모습을

상상하고 가족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집이란 마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그리움처럼 들리는 말이다."라고 하는 표현이 참 좋았다.

우리가 모든 긴장과 경계심을 내려놓고 진정한 자신이 되는 곳, 돌아갈 곳, 편히 쉴 곳이 집이다. 오늘날

집의 의미는 마음의 안식과 연결되어 있으나 3000천 년 전 신석기시대 집터인 스카라 브레는 죽은 자의

유해가 함께 있었다. 돌로 된 침대 아래 놓인 유골들은 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죽음의 두려움을 잊게 하는

익숙한 내음(악취)이 집의 의미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유물들을 보고 오랜 과거를 떠올리며 무엇보다 죽음이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삶은 짧고 모든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성장과 변화를 겪고 수명을 다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신앙인은 영원한 삶으로 이행된다고 본다.

불가사의한 거석문화에 특히 관심이 갔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처럼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구의 역사에서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엇을

성취하고 남길 수 있단 말인가!

1300년 전  짧은 생애였던 비르카 소녀는 가장 영예로운 장소에 묻혔다. 저자는 기형이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대한 태도를 주목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는지 살펴본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이지만

가족으로부터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그 사랑 때문에 사라진 후에도 기억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를 알고 사랑한 이마저 다 사라지지만 그 소녀처럼 "사랑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한 사람에게 필요한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책의 주제는 '가족'에서 '사랑'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영원은 무엇일까?

‘언제부터인지 ‘영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번 개인전 제목을 ‘영원부터 영원까지’라고 잡았다.

20   호모 사피엔스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돌아보면 과거나 현재나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가족' 같은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맺으며 ''이라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있는 세계. 사랑(추억) 간직할  있다면 어떤 조건에서도 살아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기본적으로 사랑 가운데 태어나 사랑하는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죽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결국 인간에게 소중한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의식하든 안 하든 영원과의 관계를 떠나 살 수없다. 우리가 다 이루지 못하고 도달할 수도 없는 

열망이 영원과 연결되어 있다. 과거나 현재, 미래에도 가족과 집, 사랑은 인간의 삶에 근원적인 것이고 

내 그림의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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