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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Aug 19. 2022

 인간이 아니라 ‘에미’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 헤나 로잔 외 3명, 모던아카이브

'남자는 퇴물인가?'라는 주제로 201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토론회가 있었다. 오늘날 젠더 갈등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찬성과 반대로 팀을 나누어 소위 4명의 페미니스트들이 흥미진진한 주장을

펼쳤다. 오늘날 일을 하는데 더 이상 근력이 중요하지 않고 여성의 전문직 진출과 경제적 능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반면 남성들은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인터넷 게임에 몰입하는 경향이

더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여전히 재산의 소유나 상층 간부의 비율에서 남성의 비중이 높다.

오늘날의 일과 여성들의 삶이 가능해진 이유는 보이지 않지만 묵묵하게 뒤에서 일해온 남성들 덕분이고

그 반대로 여성의 역할도 인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남자가 여자의 적이 아니다는 사실이다.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것을 다루는 일은 남자들이 주로 해왔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의

남자들이 사회를 발전시켜온 측면을 인정해야 한다. 피해자 집단에 속했던 여성이 이제 가해자 집단이

되겠단 말인가? ‘혐오의 미러링’은 동일한 수준에서 미래가 없는 정치적 행위로 보인다.


이성에 대해 혐오감을 갖거나 성적으로 비하하는 일은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를

견인하고 동지적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사회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남녀가 한배를 타고 있으므로

한쪽 성이 넘어지면 다른 성도 휘청거리게 될 뿐이다.


한 가지 새로운 시각은 여성의 적은 '자연'이라는 사실이다. 출산과 육아에 있어서 여성이 짊어져야

할 몫은 여전히 원시적이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 여성의 역할과 공공의 책임을 의식하고 육아와 돌봄에

제도적 도움을 주더라도 여전히 한계가 있다. 제일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나는 요즘 젊은 엄마들처럼 경제적 능력도 커리어도 없다. 세상에 내세울 게 별로 없지만 아이 넷을 젖

먹여 키웠고 천 기저귀를 썼다는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고 지구환경까지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유가 모든 아기에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최적의 영양공급원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아기의 성장과 인지발달에 좋고 급성 감염성 호흡기 질환이나 위장관 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낮출 수

있고 만성질환 예방에도 기여한다. 노산으로 낳은 넷째 아들이 선천성 심장 이상으로 43일 만에 큰 수술을

받았을 때도 침대에 묶여 있는 아들에게 젖을 물렸고 젖병에 모유를 짜서 먹였다. 10개월에 재수술에 들어

갔을 때도 젖을 먹이고 있었다. 아이들 모두 16~18개월은 모유로 키웠고 늦둥이라도 젖이 부족하지

않았다. 덕분에 면역력도 회복력도 더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젖꼭지에서 피가 나고 젖몸살도 했기에 고통이 컸지만 쪽쪽 빨아서 아기 목구멍으로 젖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 아픈 것도 잊었다. 아기가 젖을 원하면 어느 때라도 먹였고 흡족해서 잠이 들면 천사가 따로

없었다. 첫애가 내 몸에 길을 내줘서 둘째부터는 낳아 키우는 일이 한결 쉬워졌다. 내 몸이 생명을 잉태하고 젖을 만들고 정말 유용하게 쓰였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몸의 기능이야말로 여전히 여성의 가치를 고양시켜주는 측면이 아닐까? 모유수유 덕분에 출산 후 체중 감량은 자연스럽게 되었다. 심혈관 질환 예방, 난소암,

유방암 위험도 줄어든다니 엄마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원시적인 출산과 수유과정을 적대시하거나 심리적으로 스트레스 혹은 피로를 느끼면

충분히 모유가 생성되지 못한다. 자신을 자연의 일부인 여성으로 아니, 인간이라는 의식보다 동물로서 인식

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다. 나도 시댁에 살면서 산후 우울증도 겪었다. 나라는 존재는 부정되고 오직 '에미'

로서 역할만 요구하는 분위기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인간도 짐승도 아닌 존재...! 그러나 돌아보니 참고

견디는 날들이 긴 인생에서 순간처럼 지나갔다. 연약한 아기를 돌보기 위해 가장 모성이 발휘되어야 할

시기를  넘기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유지할 뿐인 삶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자아를 

깨트릴 기회이기도 하다. 

여성은 ‘현신’을 통해서 또 다른 의미의 본질적인 자아를 획득할 수 있다.

우리 딸들도 머지않아 아기를 낳고 카울 텐데 그 시기에는 자신을 인간이 아니라 '에미'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현재 삶에 주어진 것과 주어지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간적으로 

힘들고 결핍을 느꼈어도 보람 있었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모성을 따르다 보니 나를 넘어설 수 있었고 그렇게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감사는 행복의 원천으로 남았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최근 올라온 브런치의  '젖 물리에' 글을 읽고 혼자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어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뭐라 해주고

싶었는데 몇 마디 말로 간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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