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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Feb 29. 2024

고통스럽지만 좋은 것!

< 내 아버지 장욱진> 장경수


그림 작업을 하고 전시회를 한지 십 년이 되어 간다. 언제쯤 대체할 수 없는 개성이 숙성되어 나올 수

있을까? 그림을 좋아하고 예술 세계를 지향하는 것은 맞는데 작가의식을 가지고 전적으로 매달리지

못하고 있다. 웬만큼 숙련된 테크네가 나와야 할 텐데 매번 서투르고 힘들다. 늘 원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자신을 한 곳에 몰아넣고 감각을 다스려

장신을 집중하면 거기에는 나 이외에 아무도 없다."

장욱진 전시회를 보고 여러 가지 느낀 점이 많아서 책을 읽게 되었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큰딸의 이야기를 통해 화가를 가까이서 본 듯 친근해졌고 그림도 더 가치 있게 다가왔다.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 그리움, 사랑의 표현인 가족도가 많고 정겨운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예술세계와 처신에 단호했으나 가족 모두에게 말 없는 사랑을 끊임없이 보내준 아버지를 깊이 이해하고 아끼는 가족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



<밤과 노인> 1990년



이 작품은 장욱진이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렸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노인을

형상화한 것 같다. 그가 사랑했던 집, 까치, 나무, 아이가 있다. 삶을 향해 마을 길을 힘차게 달려가는

아이와 산모퉁이를 돌아 하늘 위로 산책하듯 걷는 도인이 대조적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지만 평소처럼 깔끔하게 정리한 방에는 화구 몇 가지 빼고는 정리할 물건이 별로 없었다니 그림과 일치하는 삶이었다.

번잡해진 서울을 떠나 한강 줄기가 내다보이는 덕소에 작업실을 짓고 머무는 동안 장욱진의 내적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림을 못 그릴 정도였다고 한다. 서구의 미술사조가 물밀듯이 몰려와 휩쓸던 시절에

혼자 저항하면서 온몸으로 그 바람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이 말을 자주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그림, 자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 그려도 되고 안 그려도 되는 그림이 아니라 반드시 그려야 할 그림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 바로 작가의 언어를 중시하면서도 동시대인의 공동어,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툭툭 튀어나온다고 하면서 마음속의 잡다한 얼룩과 찌꺼기들을

지워내고 순수하게 비어냈다. 집착을 버리고 아무것에도 얽매임이 없는 자유인으로 심플하게 살면서 그림 그리는데 자신을 온통 소모한 화가였다.


"가장 진지한 고백, 솔직한 자기의 고백이라는 진실을 사람들은 일생을 통해 부단히 쌓아 나가고 있나 보다. 그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듯한 자신의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껏 그림이라는 방법을 통해 내 자신의 고백을 가식 없는 손놀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의 분신과 같은 그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요즘 창작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시달리면서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와 스승을 만나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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