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사랑이다> 장소현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대출한 지도 한참 되었다. 최근 윌리엄 제임스의 영향을 받은 브라이언 마수미의
<가상과 사건>을 읽어보려고 도서관에 갔다가 난해해서 덮고 이 책을 만났다. 제목이 내 생각과 비슷해서
펼쳐보니 잘 모르는 선배지만 삶과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시회를 하면 관람하는 사람이 그냥 지나치듯 보고 나갈 때가 있다.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
이나 느낌이 와닿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감상에 빠질 잠깐의 시간도 없다면 왜 보러 온 걸까?
사실 미술은 직관적 형식으로 순간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새롭고 기발한 것을 찾아 감탄해 보려고 한다면 쓱 둘러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림은 보이는 세상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실재하는 것처럼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화가가 세상에 던지는 시선은 특별한 관점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리의 세상 경험이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가수나 음악가들처럼 화가도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 혹은 즐거움을 주기 위해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린다. 적어도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작업을 했는지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하지 않을까?.
'소통이 없다면 공감하거나 감동을 기대할 수도 없다. 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만든 사람의 눈길로
보고 화가의 관점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나 자신도 반성하게 된다.
그림도 다른 예술처럼 흘낏 보고 다 알 수 없다. ‘보고 또 보기’에서 저자는 새로운 작품을 접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자주 보면 대할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자신의 일부로 만들게 된다며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질리지 않고 볼수록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평범하고 따뜻한 그림'인 경우가 많다니 나와 생각이 일치한다. 자극적이고 요란한 그림은 미술사적으로 또는 사회적인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일화성 충격 이상일 수 없다.
“… 예술은 눈이나 귀로 이야기하고 보고 읽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가장 간단하고 가장 평범한 대상이 내게는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고 또 나를 황홀하게 한다.”
-장 뒤뷔페-
인간은 다 시인이라는 말 누가 했었지?
쓰고 싶은 글, 허름한 목청만 좋아하는
구수한 맛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곳.
평범한 것들은 대개 친절하고 따뜻해.
무리수 없이 감칠맛 나는 정성일뿐이야.
‘연신내의 유혹’ - 마종기-
현대미술의 대세가 된 추상화나 설치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나와 비슷해 보인다. 그림에 담긴 내용보다
‘조형성’이라는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칸딘스키의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색과 형태의 미는 예술에 있어서 아무런 충분한 목적이 없으며, 다만 한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내적 필연성’의 원칙에 따라 서로 조화해야 한다.”
미술의 본질적인 문제인 형식과 내용에 대해 나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인 대상과 형태를 제거
하고 절실한 이야기도 배제해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이야기인데... 언젠가 나도 삶의 흔적들을 색채와 선으로 단순하고 추상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리는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된 세상에서 표현의 자유와 폭이 커졌지만 예술은 인간을 고양시켜 주는 활동으로 의미가 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든지 뜻밖에 찾아오든지 그리움과 사랑이 있는 한 그림 그리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