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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Nov 03. 2021

여기 있어 황홀하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삶과 예술

이번 여행의 동반자는 파울라다. 가을빛이 고운 시기에 바람을   이사하는 애들 곁으로 떠나왔다. 셋째 딸이 짐을 정리하다가 내민 책으로 릴케의 부인 클라라의 친구이고 화가인 그녀를 소개받았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전해 듣고 스치듯 그림을 만났는데 드디어 가까이 다가갈  있게 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동시대에 살았고 서로 친구이거나 예술가로서 흠모하는 사이라는 점이다.

작가의 생몰연대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파울라를 통해 파리의 로댕과 세잔이 연결되었다. 

“바로 새로운 단순함이야, 세잔이야!” 

1900년, 세상은 젊었고 위대한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깨어났다. 파리 센강 우안에 있는 볼라르 화랑에서 그녀는 세잔의 그림을 알아보았다. 세잔은 번개라도 맞은 듯이 충격적인 작품세계로 그녀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길을 걸어야 '영원의 순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는 생각도 했다. 파울라의 시선은 고정관념을 벗어났고 다양하고 경이로운 인간의 얼굴을 발견했다. 자화상 속 색채로 표현된 그녀는 자기 자신으로 신비롭고 고요하게 존재한다. 사랑하는 남편 오토의 곁을 떠나서 고통스럽지만 작업을 계속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독립적인 생활이 외롭고 힘들어도 그림에 대한 간절함과 무언가 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사랑하고 결혼도 했지만 오직 그림을 그릴 수 있기만을 바라던 파울라는 아기를 낳고 후유증으로 서른한 살

나이에 생을 빼앗기고 말았다. “아쉽다”라는 말을 내뱉고 색전증으로 고꾸라졌다. 그녀는 몇 차례 독일을

떠나 파리에 작업실을 구하고 머물렀다. 릴케와 가까이 지내고 뫼동에 로댕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토요일은

로댕의 아틀리에가 공개되는 날이라 북적거렸다는 걸 보니  프랑스는 일찍이 작가를 지원하고 일반인이 

예술가나 작품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장이 릴케 부부에게 “작업하고 작업하고 

작업하라”라고 조언해 주었듯이 생활공간은 어둡고 좁았다. 마치 예술 외의 삶은 부차적인 것처럼.  


“내밀함은 위대한 예술의 영혼”

그녀가 어디엔가 적은 메모가 인상적이다. 자기 성찰과 자기 이해와 같은 내면세계를 향하지 않고는 제대로 

작품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다. 파울라는 사람의 살과 옷감과 꽃을 그리고 싶어 했고 작업하는 것이 행복이었다. 릴케는 화가들은 불안을 그림으로 그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화가와 조각가는 몸을 활기차게 움직이며 작품을 만들지만 시인은 손으로 밖에 일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웠던 것 

같다. 그는 파울라의 힘(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했다.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시선의 인물화는 힘과 

내밀함을 지녔다. 순진성과 단순함을 표현한 이 사색적인 화가는 아무도 보지 않는 그림을 그리면서 제한적

이거나 규범에 매이지 않았다. 릴케에게 그것은 온전한 삶을 사는 존재, 여자의 모습을 한 인간으로 비추었다.


파울라는 자신의 벗은 몸, 임신한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긴 최초의 화가다. 뿐만 아니라 어떤 관념이나 주장도

없이 진짜 여자들을 자신이 본 대로 그렸다. 누워서 편안히 젖을 물린 엄마와 행복하게 젖을 빠는 아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참 마음에 든다. 누구도 이런 생생한 표현을 한 적이 없다. 비록 파울라의 재능과 투지가 다

꽃 피우지 못했지만 젊은 여성화가로서 작품을 통해 영원히 살아있다. 고요하고 깊이 응시하는 시선으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던 그대로...!

우리 모두의 시간은 길지 않다. 어쩌면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은 짧아도 자신을 

꽃 피운 예술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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