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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Nov 06. 2021

화가로 산다는 것

화가가 된다는 것

서울에 올라갈 때 고려하는 것 중에 볼만한 전시회를 찾아보고 일정을 맞추는 일이 있다. 이번 여행은

전혀 그럴만한 여유가 없이 떠났는데 우연히 전시회 일정이나 장소가 맞아떨어졌다.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내던 동기가 시카고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태원에 있는 Gallery SP에서 오픈한다는 것이다. 바로

내가 내려가는 날이었다. 무조건 가야 했고 그림을 보고 싶었다.

학부 때 난 미술과 다른 세계를 지향하며 정신을 빼앗긴 상태여서 동기들과 별 교류가 없이 다녔다. 시대의식에 매몰된 내가 내적인 갈등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 나이가 많아서 형이라고 불렸던 그 동기가 대화를 시도하고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어느 날 불쑥 책을 읽어보라고 주었는데 표지 속에 적어 논 시가 마음에 와닿았다. 어쩜, <그리스인 조르바>라니, 바로 아버지가 존경하던 선생님이 이십 대가 되면 꼭 읽어야 한다고 권했던 책이었다. 그때는 그런 책을 읽을 여유가 없어서 시를 몇 번 읽으며 그 형이 해주고 싶은 말이라 여겼다.

지나간 시간들이 얼마나 되었는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나는 중간에 진로를 바꾸어 신학을 공부했고 그림과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왔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계속해서 활발히 작업하고 이름이 알려진 동기 화가들과

비교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우린 서로를 잘 모르기도 한다. 그냥 내가 받은 호의가 가슴에 남아서 한 번

만나면 좋겠다 싶었지만 전시회장에 걸린 작품들과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이고

공들여 쌓아 올린 작가의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시절 그 모습이 떠올라 근황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작가는

 좀 늦게 올 거고 개인 정보는 줄 수 없다니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행히 가을빛이 무르익은 남산 길을 걸으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사실 화가라고 하면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화가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그림을 그리는 데 쓴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쌓아 올려야 하는 시간은 한이 없다. 파울라처럼 작품을 하는데서 행복을 찾고 그리고 또 그리면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화가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주부로서 감당해야 할 일들과 엄마의 역할이 화가로 사는 것보다

보람이 있다면?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언제든 그릴 수 있고 예술은 나에게 소중하다는 점에서 화가로

살지 못하지만 화가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화가로 사는 것에 만족하려면 작품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판매가 되어야 한다는 경제적 문제가 뒤따른다. 어떤 것을 열망하며 스스로를 헌신한 결과물, 분신과 같은 작품을 갤러리에 걸어서 팔아야 살 수 있으니 좀 잔인한 세계가 아닌가? 그걸 만나서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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