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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Aug 14. 2021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

<사피엔스>,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

<잠 잘 자는 행복>

인간 전체를 보는 시각의 스케일에서 이 책은 단연 압권이다. <사피엔스>는 인간의 기원과 역사,

문화에 대해 폭넓고 균형 잡힌 사고를 보여준다. 진화생물학을 받아들인 역사학자로 인간이 원숭이였다는 사실을 큰 틀에서 재인식하게 해 준다.

20여만 년 전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의 생물학적 특성이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우리 안에 내재한 잔인함, 동족인 사촌(네안데르탈인)을 죽이는 본성에 경악하게 만든다. 인간의 상징적 행위와 언어를 통한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바탕으로 역사가 어떻게 문명을 이루어왔는지 보여준다. 글로벌한 지구의 발전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흔히들 역사가 지속되어 오면서 인간의 능력은 커지고 자유가 확대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불행을

줄이고 자신의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으므로 행복도 이전 시대에 비해 증진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새로운 재능, 행태, 기술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주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현대 의학의 승리로 영아 사망률이 줄어들고 전염병과 암을 퇴치하며 수명이 배 이상 늘었다. 국가의 등장과 사회제도의 확립으로 폭력은 줄어들고 비교적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었다. 인류의 행복을 위협하는 핵무기로 인해 국제전은 사실상 사라졌으며, 대규모 기근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인간은 과연  행복해졌을까?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에 있다.


이제 인류는 절대적 빈곤이나 기아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와 편리해진 삶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죽이는 자살률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높다. 지난 몇십 년간

지구의 생태적 균형을 수없이 교란시킨 탐욕과 소비의 잔치,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을 산업적 착취 체제에

희생시킨 잔인성은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가 이룩한 전례 없는 성취를 자축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고

동물보호와 복지를 위해 우리가 채식주의로 간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을까? 인공육 배양 산업이 뜨고 있는 걸 보면 가능성이 보이긴 한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식물도 생명인데 고통이 없을까? 우리가 잘 몰랐지만 최근의 연구(올리버 색스처럼)는 식물도 의식이 있다고 한다.

사피엔스의 생존 자체가 지구 상의 오염과 폭력이 된다면 미래는 암담하다. 과도한 욕구나 소비를 줄이는

‘스마트 그리드’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성적 사유'라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각 개인들이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필요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자연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고 접촉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며 지속 가능한 세계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인간의 규범과 삶의 가치체계다."라는  동의하고 넘어갈  없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의 교단이 갖는 권력과 습관적인 예배 행위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유가 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선을 추구할  있는 근거도 신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 가능하다. 자기만족과 합리화에 빠지기 쉬운 인간이  앞에서 겸손해지고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 교만과 악행을 떠날  있다. 개인이 신을 의식하는 영혼을 지닌 존재로 살아갈 , 도덕과 윤리의 근거가 무너지지 않고 인류가 전진할  있다.

 “그 영혼 전체가 악으로 기울어 있기 마련인 인간이 선한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순전히 은총 덕분”이라고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말했다.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엇이 인간을 진정 행복하게 하는가?'

요즘 사람들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만족을 행복으로 안다. 스치는 행복감은 누구나 가끔씩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며 삶의 목적이 행복인 것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칸트는 행복이 인간의 삶의 목적이 아니라고 했다.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올바른 삶을 추구하다 보면 뒤따라오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물질이나 사회적 지위가 행복을 위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뭔가를 추구하는 삶, 각자 삶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중요하다. 어떤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즐겁고 값진 것으로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행복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나서 행복을 생각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의 고민이나 진정한 행복을 뒷받침해 주는 것도 인간관계에 있다. 서로를 믿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함께 나누는 기쁨과 희망은 더 크고 오래 지속된다. 어떤 고통과 슬픔도 이겨낼 수 있게 한다. 불행한 기억이나 상처도 나와 상대에 대한 사랑을 통해 이해한다면 용서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대상이 가까이 혹은 마음속에 있고, 자신을 상향시키려는 노력을 해나간다면 우리는 행복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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