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몇 년 전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집안의 공가가 무겁게 느껴졌던 때였다. 세상에서 삶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채 좌초되어 표류하는 상태와 같았다. 거처할 집을 구하긴 했는데 외딴섬에 고립된 생활과 다름
없었다. 현상 유지를 위해 당장 필요한 경제활동을 하긴 해야 하지만 나이와 경력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서 한동안 힘들었다.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가볍고 자유로운 공기를 찾아 나선 곳은 공원에 있는 도서관이었다. 산책을
하면서 혼자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좋았다. 마치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책을 골라 읽으며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 있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잘 알려진 조지 오웰의 작품들에 비해 더 흥미 있게 읽었다.
보험회사 외판원 조지 블링은 15년 동안 가정과 직장에 충실했다. 그런데 경마에 배팅해서 배당금을
쥐게 된 후 무엇을 할까 고민에 빠져 지내다가 집을 떠나게 된다. 누군가의 무엇이라는 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찾아서 일까? 호텔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만족을
줄 수 있을까? 그는 과거 유년 시절의 추억에 끌려 고향 마을을 찾아간다. 로어빈필드 연못가 버드나무
아래서 온종일 앉아있던 한적함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옛 시절 우리가 살던 모습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그것은 그림 같지 않았다." 숨 쉬러 나간 곳에서
달라진 모습에 숨 쉴 공기를 찾지 못하고 그 속에서 조지 블링은 방황한다. 그러나 초록빛 물, 낮은 댐을
넘쳐흐르는 물살 속에서 고기를 잡으며 보낸 그 시간, 평온함! 서두를 것도 두려울 것도 없던 그 느낌을
추억한다.
누구나 위로를 얻으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싶을 때 평화롭던 시절과 추억할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년의 뚱뚱해진 몸과 틀니를 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조지 볼링은 상관없다. 프림로즈를, 모닥불의 빨간 불잉걸을 보고 서 있는 그 순간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는 일주일 간 일탈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변함없이 일상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사물을 그윽이 바라보며 느끼는
경이감, 내면의 묘한 불꽃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질만한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조지 오웰의 자전적 소설로 보이는데 현대 사회의 본질인 경쟁과 그에 따른 불안을 통찰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살다 보면 한 번쯤 훌쩍 떠나고 싶어 진다. 언제든 마음먹고 떠날 수 있는 여건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문제는 외적인 변화보다 내적으로 자기 자신을 만나는 데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은 물론 누군가 혹은 가족을 사랑하는지 스스로 묻고 알아야 한다. 돌아갈 고향이 없어도 취향을 갖고
즐거움을 발견하는 일이 필요하다.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면 더 견딜 만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신적으로 내면적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조지 블링이 찾아가 만난 옛 친구 포티어스처럼
학식이 풍부하고 취향이 고상하다고 해도 도무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두뇌 활동이 멈춘 것이고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언제까지 같은 생각과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면 시계 추처럼 짧은 노선을 계속
왔다 갔다 할 뿐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일 힘을 잃어버리고 자기 확신 속에 갇히는 것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사회에도 불행한 일이고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거에 옳다고 여긴 생각도 새로운 지식의 변화나 학문의 발전에 맞춰서 다시 검토하고 정리해야 한다.
요즘 가까운 사이에도 정치적 견해 차이로 대화가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크게 느낀다. 이념을
위해 사실까지 왜곡하려 든다.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어 개인이 지녀야 할 정신적 자유와 관점을 지니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한 사람 한 사람 무엇이 옳은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나가는 자세를 지니면 특정 집단이 정의를 독점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당장의 이익을 얻으려 하기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 제대로 숨 쉬며 나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