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바다를 건넌 여행

<여행하는 인간> 문요한

by 명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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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파리 여행을 비현실적이고 꿈같은 일로 치부해 버렸다. 여행의 경험을

나누거나 돌아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냥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여행의

내면을 들춰보는 주제들을 통해 나의 지난 파리 여행을 새롭게 음미할 기회가 생겨 반가웠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활발히 나 자신과 피드백해 보기도 처음이다. 스스로 학습목표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처럼 약간 흥분이 되기도 했다. 오래전 여행인데 그 당시 생각, 느낌, 감각 등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아 다시 즐길 수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지난 아름다운 시간을 음미하는 기쁨”이었다.


나는 새로움이나 모험을 좋아하는 성향이지만 여행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겼다. 선뜻 나설 엄두도 내지 못했으나 그림을 좋아하고 미술을 전공하기까지 내 마음 깊은

곳엔 파리에 대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림에 대한 관심과 미술관 순례라는 여행의 목적은

딸과 일치해서 명분과 정당성을 그나마 얻게 했다. 우리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숙소에 머무는 행운을

얻었다. 다시 여행을 온다는 기약이 없기에 여행서적들을 통해 찾은 정보를 바탕으로 최대한 소화할 수

있는 일정을 짰다. 파리지엔처럼 다니는데 거침이 없어졌지만 최소한의 경비로 누릴 수 있는 맛과 멋은

거리가 멀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걸어 다녔다. 그렇다고 수도승의 고행에 비하겠는가.

나와 딸이 느끼는 행복감은 발자크 집을 방문하면서 바라본 하늘, 찬란한 햇빛과 생제르맹 데프레나 카르티에라탱 같은 센 강 좌안 거리에 출렁이는 자유로운 공기만으로 충분했다. 걷다가 힘들면 잘 가꾸어진 공원 벤치에 누워서 피로를 풀었다. 또 오래된 성당을 찾아가 더위를 식히거나 장엄한 공간이 주는 정신적 위로를 얻었다. 어쩌면 우리의 여행은 치유의 의미가 컸었다. 늘 집안의 공기를 무겁게 누르던 존재를 벗어나

멀리 떨어진 공간에 있다는 사실! 갈등관계에 있는 어떤 사람 곁을 떠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압변화로 기체가 흔들릴 때 나는 갑자기 터져 나온

울음에 당황하면서 딸이 알아채지 못하게 속으로 삼켰었다. 그동안 묻어 두고 견디었던 고통을 간이나

창자는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와 생각하니 우리의 여행은 저자가 열두 개의 주제로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던 내용들을 담은 종합

선물세트였다. 삶에서 새로움과 자유를 찾아 도전한 여행이었고 취향을 만족시키고 치유를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간 루브르 박물관을 나온 후 소형 디지털카메라를 도난당했다. 그런데 다음날 올라간

몽마르트르 언덕은 가능한 많은 차원에서 경험하기 위해 충분히 머물며 돌아보게 되었다. 라팽 아질 앞에 앉아 비를 피하고 스케치도 했다.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과 몽 생 미셸, 생말로까지 갔으니 행복한 경험

이었고 생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해외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 아니 갈망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그것을 해소했다는 점이다.

또 무엇보다 큰 소득은 내가 정말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파리 여행 이후 돌아온 일상에서 달라진 것은 없었어도 점차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리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의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딸과 함께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쉬움을 나눌 때 말고도 우리는 여전히 환상적인 커플이었다. 서로를 더 이해하고 아끼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여행은 우리의 한계 바깥으로 나아가는 도전을 통해 어느새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의 의식이 되어 준 걸까? 그 후 큰딸은 다시 돈을 모아서 친구와 혹은 혼자,

동생들과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파리 여행을 마음먹었을 때 우리 가정은 위기를 겪었다. 힘들긴 했어도 익숙하고 안정된 삶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일을 당했다. 나보다 박탈감과 상처가 컸던 그이는 삶의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여행을 그런 시기에 떠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러나 항상 그를 중심에 놓고 매이어있던 삶에서 새로운 변화가

절실했다. 딸을 위해서도 여행은 돌파구였기에 엄마로서 용기를 냈다.

저자가 책을 쓰다 보니 여행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은 것 같아 염려스럽기도 하다는 대목이 마음에 든다.

나도 어떤 상황에서나 균형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했듯이 여행을 통한 성취감과 행복감은 순간이었다. 내 자리를 대신해 준 그이에 대한 미안함과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 여행은

한 단계 더 높은 삶으로 나를 인도하지 못했다. 한동안 어디로 나아갈지 모르고 주저로이 주위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가 계속되었다. 마침내 내가 그림을 통해 경제적 활로를 찾는 동안 그이는 가장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전혀 다른 일을 시도하기까지 충분히 숙고할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 가족은 한배를 타고 드넓은 바다에서 조난당한 셈이었으나 여전히 다양한 과정의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이들은 커 나갔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는 좋은 환경의 변화였다. 세상을 살아

가는 법에 일찍 눈을 뜨게 되었으니까. 대부분의 가정처럼 아이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희망이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사랑은 자아의 틀을 깨고 남편의 세계도 확장시켰다. 나처럼 굳이 새로운 자극이나

변화를 찾아 떠나지 않았어도 이제 그의 삶은 여행이 되었다. 오랜 시간 다양한 책에서 저자들과 생각을

깊이 나누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온 사유의 세계, 정신적 노동만 있던 삶을 벗어난 모험을 감행했다.

매일 각각 다른 현장에서 몸을 쓰고,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과가 생겼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간 종 가운데 살아남아 인류가 된 호모 사피엔스처럼 남편도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나갔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고정관념을 버리고 상황에 따른 선택과 행동을 달리할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삶은

더불어 벅찬 변화를 겪었고, 지금도 여행처럼 계속되고 있다.


그이가 낯선 풍경 속에서 체험해야 알 수 있는 여행의 세계, 그 자체가 새롭고 즐거운 일을 함께 하지 못해서 안타깝다. 그러나 삶이라는 여행에서 우리는 동반자이며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가능한 나누려고 한다. 책 말미에 저자가 바라는 대로 우리는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 )으로 삶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그이와 같이 긴 여행을 떠나게 되길 바란다.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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