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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극으로 통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은 사랑

신비한 인연을 만나다.

by Dreamy Psychologist



미국에 사는 한국인 심리학자로서,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단적인 현상들에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많다. 어렵게 이루어낸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후퇴하고, 다양성과 평등의 가치가 조롱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많은 나라들이 국방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인류가 자멸의 길로 가는 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미국이 이토록 극우화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극좌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오랫동안 인종 갈등을 겪어온 나라다. 소수 인종들의 분노가 축적되어 왔고, 그들의 목소리가 인정되기 시작하면서 정제되지 못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백인을 적대적으로 바라보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조롱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이 현상이 이해된다. 경상도에서 여아 낙태가 가장 심했던 시절 태어난 나 역시,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로 남성을 적대했던 시기가 있었다.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가 평등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겪었던 불공평함을 남성들도 겪어야만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분노의 목소리는 결국 한국 사회를 더욱 양분화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없이는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듯하다.


최근 나는 신비한 인연을 만났다. 시애틀에 있는 교육 중심 대학교의 학장님이신데, 그분 역시 나와 같은 상담심리학자였다. 그분을 처음 본 순간, 진실된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는 인류의 의식, 사회적 정의, 그리고 상담자로서 개인을 돕는 것만으로는 시스템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한다는 부채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그분이 굉장히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분이 19세 때 가족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어린아이가 모래를 공격적으로 가족들에게 던졌고, 그분은 무릎을 꿇고 아이에게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아이는 갑자기 그분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이를 본 아버지께서는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으니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조언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래도 언제까지나 나를 지키며 살 순 없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이 나왔다. 내가 받은 상처에 아파하고, 앞으로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이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뺨을 맞거든 다른 뺨을 내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두려움으로는 인간이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용기를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용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믿음이며, 인간관계 속에서의 교류일 것이다.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 느낌. 어쩌면 한국어에서 말하는 ‘정’, 즉 다른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부재한 듯하다.


아아...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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