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너무 떨 필요 없어. 그냥 차분하게 잘 보고 와. “ 잘해라. “
평소와 다름없던 그날 아침은 유난히 추웠다.
친구들과 노란색 버스에서 내려와, 희미한 입김과 함께 언덕을 걸어갔다. 10 분쯤 되었으려나. 내가 가고 싶은 학교가 보였다. “아. 진짜 오늘이구나.”
그제야 실감이 났다.
시험 관에 들어가 재빠르게 자리를 스캔하고, 유리한 자리에 앉았다. 시험관이 연필과 종이, 그리고 스카치테이프를 나눠주었다. 테이프를 받아 들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이렇게 작은 것에 내 열정을 바쳤다니.
플라스틱 필통에 주의사항을 써 놓은 노란색 포스트잇만을 바라보며, 시험을 기다렸다.
대기 시간이 끝나갈수록 내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렸다. 마음을 가다듬곤, 지금처럼 하던 대로만 하자며 몇 번씩이고 내 숨을 가다듬었다.
내 마음이 조금씩 진정될 때쯤,
“자, 시험 시작합니다!”
마음속에서 “쿵” 소리가 나며 시험이 시작되었다.
사실 시험을 보는 동안은 그렇게 떨리지 않았다.
당장 내가 배운 대로 그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4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배분해, 천천히 그림을
그려나갔다. 어떻게 그렸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보다 수백 번의 연습에 의지하며 그림을 그려냈다.
“자, 이제 제출하세요! 더 이상 그리면 부정행위입니다.”
줄을 서서 그림을 제출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왔다. 시험이 끝나서 기쁜 마음보다는, 이 지겨운 생활을 다시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진짜 끝났구나 “
이제 결과 발표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발표 날 전까지도 혹시 모를 불안감에 연습을 유지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연습할 수 있었다. 결과 자체에 자신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동안의 내 노력을 믿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결과 발표날이 다가왔다.
합격 결과를 알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전화를 기다려야 했는데, 막상 발표날이 다가오니 휴대폰에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초조하게 화면과 시간을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전화가 오는 시간은 2시였다. 평소 같았던 시간이
결과발표까지 남은 시간으로만 보였다.
두시가 되었을 때쯤,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떨리는 손을 맞잡은 채 휴대폰 화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렇게 2시 10분이 되었다.
.
그리고 20분이 됐다.
30분이 되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스멀스멀 불안감이 몰려왔다.
“왜 전화가 안 오지?
40분 정도가 지났을 때, 난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탈락한 건가? “ 정말? “ 아직 전화하고 계시나?”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때쯤,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수빈아... 괜찮아. 연습하러 다시 나와. 고생했어.”
인정하고 싶은 사실이 한 마디로 현실이 되면서
처절한 억울함과 슬픔이 몰려왔다.
“ 내가 왜? 도대체 왜? 그렇게 노력했는데 내가 탈락했다고? 내가 뭐가 모자라서? “
속에서 나오는 억울함 턱에 선생님께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울며 토해내듯이 반복했다.
“선생님, 저 진짜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저 이렇게 노력해도 안 되는 거예요? 뭐가 잘못된 거예요? ”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을 울며 불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건, 불합격 사실보다
내 노력이 증명되지 못했다는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