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씻은 이유
나는 공부를 일찍부터 잘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주변 친구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오랜 시간을 들여 따라갔다. 효율이 아니라 누적이었고, 반복이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대학입시에서 수학이라는 과목은 생각보다 창의적이지 않다는 것. 정해진 맥락이 있고, 그 맥락을 이해하면 묻는 내용은 반복된다. 고등학교 수학은 대부분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성적은 올랐다. 새로운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구조를 충분히 익혔기 때문이다.
과외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큰 문제의식은 없었다. 이미 겪어본 경로였고, 그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역할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과외를 하며 차츰 알게 됐다.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학생과 나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학생은 대부분 선택의 주체가 아니었다. 이들은 이미 정해진 일정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고, 그 시간에 누군가가 와서 무엇인가를 설명해 줄 뿐이었다. 그래서 수업의 방향도 자연스럽게 결정됐다. 학생이 무엇을 이해했는지보다, 수업이 순조로웠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방식으로.
그때부터 과외는 교육보다는 서비스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설명이 제공되고, 시간은 채워지고, 결과에 대한 평가는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다. 그 구조 안에서 나는 점점 덜 중요한 존재가 된다. 중요한 건 그저 소음 없는 관계의 유지와 안정이다.
물론 진심으로 가르친 순간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정해야 했다. 사람은 결국 보수 이상으로 책임지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지속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구조에서, 한 학생의 공부와 시간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말은 공허하게만 다가왔다.
결정적인 순간은 어느 날 수업 도중에 찾아왔다. 문제를 설명하다가 문득, 이 설명이 정말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해주고 싶은 건 공부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 알았다. 내가 이 일을 통해 전달하고 있는 것은 능동성이 아니라, 순응에 가까운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과외는 흔히 도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더 오래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점수는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은 점점 더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무엇을 왜 공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주어진 것을 처리하는 능력만 남는다. 나는 그 과정에 내가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과외를 그만두었다. 더 잘 가르칠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방식이 옳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은 다른 형태로도 가능하다. 굳이 누군가의 시간을 차지하면서까지 확신 없는 역할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과외를 통해 무언가를 얻기보다, 무언가를 소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