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꼭 24시간이야?
1. 숫자
나는 세상을 종종 표로 정리한다.
보이지 않는 감정과 우연까지도 가능하다면 숫자로 계산하고 싶어 한다. 효율과 손익, 기댓값과 최단 경로. 그렇게 구조화된 세계는 예측 가능하고, 불안하지 않다. 숫자는 좀처럼 배신하지 않으니까.
문제는 삶이 늘 그 구조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 하루를 쪼개어 최적화할 수 있어도, 관계는 늘 변수로 남는다. 시간과 돈, 에너지의 사용을 합리화할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찰, 심지어 허전함이 생긴다. 마치 잘 짜인 알고리즘에 끝내 사라지지 않는 노이즈가 남은 것처럼.
나는 목적지를 먼저 정하고 움직이는 편이다. 가능한 한 빠르고, 가능한 한 낭비 없이. 그러다 보니 길 위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종종 ‘지연 요인’이 된다. 멈춰 서서 바라볼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우회해야 하는지를 먼저 가늠한다.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에도, 쉽게 마음을 되돌리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습관은 오래전부터 몸에 밴 것인지도 모른다. 결과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던 시기, 내 마음은 점수 뒤로 밀려났다. 노력은 수치로 증명되어야 했고, 내 하루의 가치는 성과로 치환되었다. 그때 익힌 생존 방식이 여전히 날 움직인다.
2. 내려놓기
하지만 요즘 들어 논리는 맞는데도 마음이 뒤틀리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합리적인 선택 뒤에 남는 불편함, 정답을 골라도 사라지지 않는 찜찜함. 숫자로는 포착되지 않는 무언갈 놓쳤다는 감각이 뒤늦게 따라온다.
삶은 장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배우고 있다. 오늘 하루는 하나의 셈으로 담기엔 너무 크고, 사람과의 관계는 비용과 효용으로 정리하기엔 너무 생동적이다. 기준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무책임해지는 건 아닐 텐데, 나는 여전히 손을 떼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더 잘 계산하는 법이 아니라,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을 알아보는 감각일 것이다. 숫자가 침범하지 말아야 할 영역을 남겨 두는 일. 하루를 ‘잘 썼는지’가 아니라 ‘재밌게 살았는지’로 묻는 연습.
아직은 서툴다. 여전히 세상을 숫자로 해석하려는 내가 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계산기를 내려놓고도 불안하지 않은 하루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