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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ie et Travis Aug 18. 2022

확신의 흐름

지하 시리즈



확신의 흐름

    


    혼란 속에서 모색한다. 자기애를 배제한다. 이기심을 더 덜고 더 감사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아들인다. 빈틈없이, 나는 습관적인 자기 규명(자기애)에 의해 이기를 주장하고자 체념하려 들지만 어떤 유효 기간에 떠밀려 불만스럽기가 영 힘에 부친다. 사람의 잠재력은 이를 노린 것이 아닐까 한다. 알아챈 이상 해내고 싶은 자의 양심이 이용되고 있다. 그럴 때 나는 아직 잃은 것 하나 없이 두 손 가득히 가능성 일색이다. 에너지를 내는 법이란 그런 식이라는 것을, 책임과 소명의 계몽에서 정신이 무장한다. 결국 해낼 일의 가치와 전망은 그 자체로써 부정립과 구별되는 나만의 역량이 될 터다. 왜소한 의혹은 그 작음을 해부하기 전에는 하나의 명쾌한 비관으로써 지정되었으나 내가 아는 한, 의혹은 그 탄생이 마땅할수록 탄생이 순간에만 머무르려 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고 움직이려고만 한다면 말이다. 그리하여 해야 할 일은 확신의 공식에 소속되었다. 나는 확신의 과제를 받았음에도 감사한다. 비록 그것이 애초에 수확되리라 잠정 지었던 무작위의 분량에서 이탈한 가능성에 준했을지언정 그 무작위성을 모른 체했던 막무가내의 열정에 배반당하기는커녕 실상 구제받은 것이다. 무지한 간주는 웃으며 그 실수를 가볍게 두드려 댈 뿐 좌절의 증거로써 제출하지는 않아 확신에 있어서 '해낸(해낼) 기쁨'만을 증거 삼을 따름이다. 나는 확신의 흐름을, 그 배경을, 무대 장치를, 그 전제를 받아낸다. 그리하여 흥미로운 드라마를, 내게 잘 어울리는 과정을 허락받는다. 혼돈의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는 것을 한참 더 배워 나가야 하는 부족한 존재임을 진리가 가여이, 또는 애틋하게, 또는 감미롭게 여기어, 확신을 정립해 낸 삶이 점지되었음을 목격한다. 확신 없이 나는 얼마나 한없이 나약하겠으며 그러한 머무름을 얼마나 유일한 양 여기겠는가? 모처럼 받은 자유의지를 활용하기에 말이다. 더 부단한 실행을 발휘하기 위해, 확신을 쌓아 올린다. 몰입의 기쁨이 '해낼 수 있는, 해야 하는' 동력일 수 있도록, 그러한 일꾼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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