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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ie et Travis Aug 25. 2022

실행의 흐름

지하 사리즈



실행의       흐름



    본질적인 에너지에 일종의 조화를 이뤄 가며, 실행 전제는 대체 불가한 자신만의 오리지날리티(초격차)를 목적으로 한다. 될 일으로써의 단순성이 시차 없이 드러나리란 법은 없을지라도, 스스로에게 비전을 그리는 기쁨을 알게 하는 것은, 삶이라는 백지와 자아라는 도구가 주어진 이상 해결해야만 했던 어떤 실행에 대하여 결국 가능하다는 기쁨을 알기 위한 것이었음을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사랑믿음 교회가 구제와 양육으로써 공표하고 있는 흐름과 같이, 오랜 시간 전인격적인 과정으로 나타나다가 확신과 몰입의 연쇄에 숨어있는 인과성이 인터벌을 뚫어낼 역점에 이르러 전인격적인 결과로써도 가시화될 것이다. 이는 곧 자기 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실행과 그 결과’라는 가장 단순하고도 능동적인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확신과 몰입의 역량 속에서, 그 주체는 이미 실행하고 있다. 실행은 삶에 휩쓸리면서 생성된 임시적이고 지엽적인 계획들의 불가피한 수행처럼 수동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확신은 열정의 심지에 불을 당긴다. 또한 몰입은 세상 안에서 세상의 조건들을 ‘감내’하며 고통스러워했던 사람의 흔적들을, 말하자면 뒤틀린 열정, 행동의 소진, 능력을 갖춘 무기력, 소질의 잉여를 교정한다.

    내게는 본질을 표현하고 싶은 갈망이 깃들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제 나름대로 이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허락된 앎을 극화된 감각으로 풀어내는 뜻을 품고자 한다. 나의 실행이 어떤 때에 어떤 방식으로 역할성을 지니게 될지 이상을 꿈꾸는 것조차 준비되지 않았던 과거 또한 있었다. 이제는 일꾼으로서의, 역할성의 몽상을 한다. 몽상에 그치지 않도록 현재에 반영시켜 나가려는 실행 역량은 반드시 갈망의 가치에 준한다. 내가 학습한 사리판단이 감정하기 앞서 한 소명 의식이 개체화를 이룬 실현임을 의식한 가치여야 한다. 때로는 들쥐성보다 보편적인 욕심으로 지성 욕에 대한 오류에 들어갔다가 무미건조한 기대들에 담담해진다. 그럴 때 나는 ‘하나님의 나’에게 어울리도록 내 외적 자존의 잔해 몰래, 탁 트인 곳으로 가야 한다. 나는 아직 미비한 믿음의 실행력이 모의실험 하는 상을 보고 아는 체하기도 한다. 마치 오랫동안 믿음을 영사해 낸 운명이 준비해 주고, 보여 주고, 평화롭게, 존재함의 선두에서 기다려 주었다는 듯이 말이다.

    확신을 가지는 연습, 그 흐름이라면 자기애를 배재하는 연습부터. 그다음 오직 단일한 중요한 바를 위해 거듭 소거해 나가게 될 조건성의 감옥. 이를 위한 평가에서 깨어 있고자 실질적으로 의식하고 감응되어 움직여질 결정들. 그리하여 구축되어 나갈 몰입의 공식, 몰입의 습관, 몰입의 본능. 일련의 체득 속에서 실행에 대한 환상도, 실행에 대한 구태의연한 계획도, 실행에 대한 집착도 없이, 나는 분명 한창 실행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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