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독서법은 어떻게 10억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10쪽의 고전이 잠재의식 속 거인을 깨울 때 #고명환작가님

by 두번째지니

가계부 쓰던 끈기로 매일 고전 10쪽을 넘기다


분류기호: 029.4 (독서, 독서법)


엉망진창 독서법과 나의 엉뚱한 꿈

저는 고명환 작가님을 참 좋아합니다. 그분의 책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읽고 그 번뜩이는 통찰에 단숨에 반해버렸거든요.

2024년 '제11회 교보문고 출판 어워즈'에서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인 한강 작가님과 나란히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고명환 작가님의 철학 중 제 마음을 가장 강하게 두드린 것은 바로 ‘엉망진창의 힘’입니다.

작가님은 이어령 교수님의 대담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인용하며 '책 읽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이어령 교수님은 미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엉망진창의 힘'으로 설명하셨죠.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섞이는 과정은 겉보기엔 매우 혼란스럽고 엉망진창 같지만, 그 이질적인 것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서 오히려 강력한 창의력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고명환 작가님이 실천하시는 것이 이른바 '10쪽 독서법'입니다.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대신, 전혀 다른 분야의 책 여러 권을 매일 10쪽씩 번갈아 가며 읽는 방법이지요.


다양한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될 것 같지만, 우리의 뇌는 헷갈려하기는커녕 그 혼란 속에서 정보들을 무의식적으로 연결한다고 해요. 결과적으로 서로 상관없어 보이던 지식들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하나의 주제만 파고들 때는 결코 떠올릴 수 없었던 기발한 아이디어나 삶의 해답이 번쩍하고 떠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려면, 세상을 지배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 나를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야 한다."

"읽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마라. 모든 내용은 내 잠재의식에 쌓이고 있다. 믿어라.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거인을!"

제가 요즘 엉망진창으로 읽고 있는 책들입니다

그분의 책과 강연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뜁니다.

특히 고명환 작가님의 소개란에는 항상 "다음 목표는 엉망진창 도서관을 세워 도서관장이 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죠.

저는 그 목표를 보고 제 꿈이 생겼어요.

바로 훗날 세워질 그 ‘엉망진창 도서관’에 10억을 기부하고 ‘명예 사서’가 되는 것입니다.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2급 정사서 자격증이 비로소 가장 멋지게 빛을 발할 순간이지 않을까요? 상상만 해도 행복하네요.


24년 가계부의 끈기, 고전을 펼치다

그런데 어떻게 10억을 기부하냐고요? 아무리 남편이 열심히 일해도, 저희 부부의 주식들이 공휴일에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야근을 해대도 기부금 10억을 모으기는 힘들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무려 2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치열하게 써 내려온 가계부의 내공이 있습니다.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기록을 끝끝내 버텨낸 무서운 '끈기'라는 근육. 그 근육에 저 역시 ‘엉망진창의 힘’을 더해, 생각의 퀀텀 점프를 이뤄낼 작정입니다.

(어떻게 10억을 만들어낼지 아직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꼭 응원해 주세요!)


사실 10쪽 독서법을 흉내 내보려다 몇 번이나 실패한 전적이 있어요.

자꾸만 편식하듯 제가 원래 즐겨 읽던 분야만 찾게 되더라고요. 특히 '고전' 앞에서는 번번이 무너졌습니다. 고전은 왠지 '생각의 힘'이 깊어진 사람만 읽을 수 있는 책 같아 진입 장벽이 너무 높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사실 생각의 힘을 기르려면 고전을 읽어야 하는 것인데, 순서가 완전히 뒤바뀐 핑계지요.)


그러다 얼마 전, 고명환 작가님이 하와이대저택님과 함께하는 유튜브 <하고만다>에 나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총 13권, 5,704쪽)를 매일 10쪽씩 읽기 시작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았습니다.

다 읽으려면 대략 570일이 걸리는 대장정이지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휴대폰으로 숏츠나 릴스 같은 짧은 영상을 보다 보면 자꾸 마음이 조급해져서, 자신의 뇌에 거대한 서사를 약 2년 동안 품고 있겠다는 일종의 '물타기' 작전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와~ 역시 미래의 관장님은 다르시죠? 미래의 명예 사서인 저 역시 관장님을 따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장 서재로 달려가 책장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석에 꽂혀 있던 책 한 질을 꺼내 들었죠. 무려 한 권당 900쪽에 달하는 고전 중의 고전, 『사기열전 1, 2』였습니다.

11만 번의 집념, 내 안의 거인을 깨울 시간

비장한 마음으로 1권의 첫 장을 넘겨 매일 10쪽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등장한 인물은 <백이열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 나 <백이열전> 들어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최태성 작가님의 『다시, 역사의 쓸모』에 등장했던 '김득신' 편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언젠가 꼭 읽으리라 다짐하며 구입해 둔 책이 이 『사기열전』이더라고요.


한국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김득신이라는 인물은 언제 떠올려도 존경스럽습니다.

임진왜란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 장군의 손자인 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머리도 나쁘고 기억력도 좋지 않아 집안의 골칫덩어리였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아버지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를 거듭했고, 결국 59세의 늦은 나이에 대과에 급제하는 위대한 인간 승리를 해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바로 이 <백이열전>을 1억 1만 3,000번이나 읽었다고 역사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조선 시대의 '1억'은 지금의 10만에 해당하므로, 정확히 환산하면 무려 11만 3,000번을 뜻한다고 하네요. 책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파고들었을 그 압도적인 집념이 정말 엄청나지 않나요?


김득신의 그 무식하리만치 찬란한 집념을 떠올리며, 저도 이제 고전의 무게에 겁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가계부를 썼던 그 징글징글한 끈기로,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의 책들을 하나씩 선정해서 매일 10쪽씩 뚜벅뚜벅 읽어나가려 합니다.


이질적인 지식들이 내 안에서 서로 충돌하고 뒤죽박죽 섞이는 '엉망진창의 힘'. 이 힘으로 기어이 10억이라는 거인을 제 안에서 깨워내 보렵니다.

그것이 책이 될지, 새로운 도전이 될지 아직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올해 맞이한 제 두 번째 '서른셋'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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