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배신에 지친 당신에게 가계부를 권하는 이유

24년 가계부가 나에게 준 진짜 보상

by 두번째지니

돈이 향하는 곳에 진짜 내가 있다


분류기호 : 199.1 (철학 - 삶의 지혜와 인생관)


봄날의 미용실에서 만난 종이 신문

옛 동네에 있는 미용실에 다녀왔습니다. 10년 넘게 다닌 곳이라 이사를 한 후에도 자꾸만 발걸음이 그곳을 향하네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예쁜 불광천도 눈에 담을 겸, 겸사겸사 나선 길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면서 미용실 테이블에 놓인 '종이 신문'을 펼쳐 들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스크롤을 내리며 기사를 볼 때와는 달리, 큼지막한 종이를 넘기며 읽는 활자가 새삼 더 깊고 재미있게 다가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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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백온유 작가님의 신간 소설집 『약속의 세대』 출간 인터뷰를 읽게 되었습니다.

2017년 동화로 등단한 이후 청소년과 성인 문학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해 온 작가는, 이번 책에서 사회적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곱 편의 단편으로 묶어냈다고 합니다.


"20, 30대가 자격증을 따고, 학교나 학원에 다니는 이유는 그런 노력이 언젠가 보상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그 약속이 과연 지켜지는 사회인지 질문해 보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살면 언젠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달려왔으나, 끝내 그 약속된 미래를 기만당하고 배신당한 사람들.

작가는 청년 세대의 고충과 돌봄 문제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지키지 못한 약속'이라는 주제를 변주합니다.

갈망이 보상될 거란 믿음 하나로 버텨왔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결핍 속에서,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조금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더군요.


"사람이 힘들 때 '나만 이렇게 힘든가' 싶으면 더 힘들어지잖아요. 고통을 이겨낼 완벽한 방법을 제시하기보다, 비슷한 고통을 안고 분투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게 소설의 역할 아닐까요."


노력은 정말 우리를 배신할까?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

신문을 덮고 가만히 그 문장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제가 24년 동안, 그리고 지금도 매일매일 가계부를 쓰는 이유 역시 이런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처음 가계부를 펼쳤던 그때는 '부자가 될 거란 기대'보다는 당장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조금 더 잘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자라났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24년의 가계부가 제게 준 진짜 보상은 '부'라는 결과물 이전에 '방법'이었습니다.

내가 돈을 어디에 주로 쓰는지를 추적하며 나 자신을 알아가고, 감정적으로 소비하지 않도록 나를 다독거리는 그 단단한 방법론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는지 헷갈릴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시간'과 '돈'을 쓰는지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돈은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곳, 마음이 쓰이는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만약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도 정확히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돈의 방향을 잃고 목적 없이 막 쓰게 될 것입니다.


제가 가계부 쓰기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개인의 상황이 모두 다르니 단정 지어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1년은 너무 짧더라도 적어도 3년 이상 꾸준히 가계부를 쓰다 보면 돈의 흐름을 통해 '진짜 나'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결과가 아닌, '나만의 방법'을 찾는 과정

"가계부 쓴다고 부자 되겠어?"

"가계부 쓴다고 없던 돈이 뚝딱 생기겠어?"


노력에 배신당한 경험이 많은 분들이라면 당연히 이런 냉소적인 생각이 드실 겁니다.

확실한 결과가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기 싫어지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가계부 쓰기가 '통장의 잔고'가 아닌 '나를 찾아가는 단단한 과정'으로 보상해 줄 수 있다고 관점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요?


단지 가계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무언가를 위해 묵묵히 노력을 쏟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눈앞의 막연한 '기대(결과)'만 바라보며 지치기보다는 "이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 나에게 딱 맞는 방법을 찾게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세상이 약속한 보상이 제때 주어지지 않더라도, 그 시간 동안 묵묵히 쌓아 올린 '나를 아는 힘'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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