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로 알아보는 학교폭력의 역사
학창 시절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던 아이가 있었다. 나에게 우유를 던졌고, 사물함에 쓰레기를 넣어놨으며 폭행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웃는 게 보기 싫다는 이유로 볼펜을 딸깍거리며,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보고 웃으라고 시켰다. 그 아이를 성인이 된 지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출연진과 방송작가로. 심지어 학교폭력 가해자를 응징하는 내용의 만화로 인기를 얻게 된 만화가와 그 작가를 알리기 위해 취재하는 방송작가로.
가해자였던 그 아이가 이제는 방송에서 ‘학교폭력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오랜 시간 외면하고 묻어두었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과거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간이 그만큼 흘렀음에도 아직 난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걸까.
2022년 4월 1일 시작한 MBC 금토 드라마 ‘내일’의 첫 번째 에피소드의 내용이다.
많은 관심을 받으며 시작한 내일의 첫 에피소드 이름은 ‘낙화’. 바로 학교폭력에 관한 내용이었다.
드라마 ‘내일’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MBC의 드라마이다.
‘사람을 살리는 저승사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 결정적인 순간 그들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1, 2화는 ‘낙화’라는 에피소드로,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다.
낙화 에피소드의 학교폭력 장면들은 보는 사람들이 울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잔인하다. 피해자는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참이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더 황당한 것은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사람들은 피해자를 돕지는 못할망정 ‘너에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라며
원인을 피해자의 탓으로 돌려버린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단지 ‘내일’에서만 나타나는 소재는 아니다. 사실, 흔히 사용되는 모티프이다.
과연 이전에는 어떠한 드라마에서 학교폭력을
소재로 다루었을지,
MBC 드라마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가 사물함을 열자 쓰레기가 우수수 떨어진다. 반 아이들은 당황하는 하나를 보며 웃고 손뼉을 친다.
남자아이 한 명이 다가와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후 도망간다. 하나가 어두운 교실로 들어가자 물을 뿌린다.
이토록 무서운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어른들이 있을 때는 태도가 180° 변한다.
하나를 챙겨주는 척, 걱정하는 척을 한다. 어른들은 이러한 ‘척’을 보고는 서로 친한 사이라고 착각한다.
이 내용은 2013년도 드라마 ‘여왕의 교실’ 6화의 내용이다.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여왕의 교실 속 학교폭력은 폭력, 따돌림, 방관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주변 사람들 등을 통해 알 수 있듯 ‘내일’과 놀랍도록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내일’에 비해 학교폭력의 해결 과정은 보다 단순하다.
‘에잇!’이 주는 힘
‘끝까지 버텨보지, 너랑 같이’
‘살다가 진짜 괴로울 때면 바닥에 누워 카운트를 세.
세븐 에잇까지 세고 에잇 하면서 일어나면 다시 파이팅이 생겨’
오글거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이 말은, 하나에게 매우 큰 힘이 되어주었다.
하나에게는, 목숨을 살려주는 저승사자는 없었지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친구가 한 명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는 늘 똑같다.’
‘우리의 대답도 똑같다.’
‘왜 도움을 청하지 않냐고? 도움이 안 되니까’
여왕의 교실 6화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학교폭력이란 일부 사람들의 생각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그렇기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한 시각으로, 빠르게 해결하고자 하는 ‘겉보기식 해결방안’을 보이는 어른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드러나는 회차이다.
앵그리맘은 2015년도에 방영된 MBC 드라마이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딸을 대신하여 과거 일짱(?)이던
엄마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다는, 다소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앵그리맘’이 ‘내일’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앵그리맘’ 속의 일진들은 그들만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무거운 주제를 다룸에도 비교적 밝게 연출했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변신은 무죄!
아마 이렇게 연출한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는 상당히 민감한 주제라 여겨서 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전에는 드라마에서 부정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지 않았다.
사회 문제를 직접 다루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 오늘날의 드라마와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화하면서 드라마 역시 변하게 된 것이다.
‘여왕의 교실’, ‘앵그리맘’, ‘내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는 10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동안 학교폭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정도는 심해지며 해결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과거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에 비해 최근의 것들은 학교폭력을 보다 직접적, 자극적으로 제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분명해졌다. 이렇듯, 과정도 해결 방식도 서사도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만,
‘학교폭력’이라는 동일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세 드라마 모두 피해자들에게 귀를 기울여주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른 것들은 변화해도 누군가 우리 주변에 있음은 변하지 않는 모티프로 삼은 것은,
어쩌면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는 작은 위로이자, 공감 일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저승사자’는 없지만, 따뜻한 손을 내 밀어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그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힘들고 지칠 때는 우리의 주변을 바라보자.
분명 어디에선가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