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는다는 행위에 대한 모든 헌사

‘Nope’(2022) by Jordan Peele

by BullshxtaboutCinema


찍는다는 행위에 대한 모든 헌사.


‘Nope’은 동필이형의 이전작처럼 정치를 영화에 대입시키는 것이 아닌 영화에 정치를 대입시켜 담론을 형성한다. 결국 관객들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토론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 화살은 작품 내에 존재하는 씨네마라는 것에 대한 헌사, 오마주가 아닌 영화를 구성하는 메타포로 향한다.


영화를 구성하는 연출자들의 숨겨진 의도, 즉 메타포들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관객들의 해석을 이끌고 이를 알아냈을 때의 스펙타클을 이끈다. 마치 방탈출 카페의 문제들을 풀어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임처럼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이러한 메타포 혹은 연출의 숨겨진 의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아주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메타포를 해석하는 데에 매몰되어 영화 해석을 그에 국한시켜 풀이하는 행위는 과연 영화를 올바르게 대하는 태도인가.


스콜세지의 발언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이 ‘씨네마’가 아닌 ‘테마파크 놀이기구’일 뿐이라는 발언은 마치 힙합팬들이 사랑노래를 ‘힙합’ 취급하지 않는 태도처럼 영화를 씨네마와 씨네마가 아닌 작품으로 나누는 풍조를 만들어 냈다. 물론 스콜세지 감독의 의도가 관객들을 갈라치기하여 진정한 씨네마적 경험을 이끌어내는 영화를 만들어야’만’한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논란은 가속되어 흔히들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들을 ‘씨네마’로 한정 짓고 그 이외의 영화는 시간 죽이기용 요깃거리로 치부하는 것은 위험한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시작부터 요깃거리에 불과했다.


지금에서야 영화라는 매체는 대중문화예술로서 종합예술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시작을 생각해보자. 에디슨이 활동사진을 만든 것도, 뤼미에르가 열차의 도착을 찍은 것도 결국 목적은 돈이다.


돈이 되는 것. 즉 관객들을 스펙타클의 세계로 만드는 것이 바로 영화의 시작이었다. 관객들은 스펙타클을 돈을 주고 산다. 경험을 돈을 주고 산다. 누적되는 스펙타클 속에서 ‘Artistic’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렇게 영화는 예술이라는 방향으로 진화를 시작했다.


이렇게 영화의 근본은 자본주의로부터 왔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은가. 또 다른 논란으로 ott시장의 범람에 의해 극장에서 보지 않는 영화를 영화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을 생각해보아도 결국 ott시장의 영상물이든 극장에 걸려있는 영화든 소비자와 관객들이 존재해야 이 매체는 존립된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조던 필의 신작 ‘Nope’을 다루는 태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전작 ‘Get out’이나 ‘Us’ 같은 경우는 숨겨진 의도, 혹은 메타포들이 넘쳐났다. 놀란 감독의 영화가 흥행하는 우리나라 시장에서 조던 필의 등장은 어쩌면 새로운 거장의 등장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본인만의 해석을 하나 둘 올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이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도 관련 영상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Nope’이 개봉하고 생긴 호불호에 대한 담론은 사뭇 이해하기 힘들다. 영화 관련 전공자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메타포에 대한 의견에 국한해서 말이다.


과연 ‘Nope’은 어려운 영화인가?


조던 필은 절대 한정된 정보만을 제공하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퀴즈 풀이를 요구하지 않았다. 외계 생명체의 등장과 그 등장을 대하는 인물들. 그리고 두 존재의 첨예한 대립. 그 속에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 -주인공 OJ는 돈을 벌어야 하고 UFO를 찍어 오프라 쇼에 나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이 서사 하나만 놓고 보아도 우리는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심지어 고디가 등장하는 플래쉬백의 호러 시퀀스, 그리고 진 재킷이 피를 쏟아내는 폭풍우 시퀀스는 장르적 쾌감을 극한으로 이끈다. 그리고 마지막 결투에 이르러서는 서부영화를 오마주 하며 서스펜스를 이끌어 낸다. 이렇게 장르적으로도 훌륭한 영화를 어려운 메타포로 가득한 영화로 치부하는 것은 그저 영화를 퀴즈풀이로 생각하는 이들의 반응이라고 여기고 싶다.


그렇다고 메타포를 무시할 수 있는가?


앞서 영화는 예술로 ‘진화’했다고 서술했다. 진화라는 것은 한 발자국 나아감을 의미하지 않는가. 영화가 감독의 예술 영역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컷과 앵글은 그 이유가 존재하고 인물들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 또한 모든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감독만이 정확히 알 수 있는 각 영화만의 비법 레시피 같은 존재로 작용하고 이는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 감독의 의도를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영사기로부터 쏘아져 스크린에 상영되고 난 이후부터는 모두 관객의 영역이다. 관객들은 각자의 자세로 영화를 맞이하는 자세를 임하여야 하지 않을까.


p.s 스티븐 연이 연기한 주프의 테마파크를 보고 느낀 점. 테마파크로 여겨지는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은 테마파크로 불리는 것에 모멸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진짜 UFO를 보여주는 테마파크? 이건 못 참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마블은 영화나 잘 만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