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에 대하여

데이비드 시버리의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

by 오행시

뒷 표지에 커다랗게 쓰여 있는 문구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을까?’ 이 말의 의미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삶이 실제 자신과 다름을 뜻하는 것처럼 읽혀진다. 필자는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한다. 서두에 예를 든 여성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많은 여자들이 기득권을 점령하고 있는 남성 상사들 밑에서 마음의 갈등을 겪으면서 그들과도 친숙하게 지내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중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집안일을 도맡으며 그것이 이성의 사랑을 받는 암묵적인 조건처럼 되어 있다는 이야기.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탈출구를 명시해 놓았을까? ‘임상심리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의 의학자’ 라는 명함, 신뢰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며 끝까지 읽기로 했다. 물론 어떤 부분은 진부했고 어떤 부분은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책은 특이하게 서문이 없다. 첫장을 넘기면 ‘모든, 괜찮은 척은 나의 ’적‘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너무나 지쳐 바닥에 쓰러질 정도인데도 괜찮은 척하는 사람들의 심기를 살짝 건드린다. 그렇다고 지친 사람들을 마냥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상담하며 치유의 방법까지 넌지시 알려준다. 그렇게 21가지의 사례를 들어 ‘나’답게 산다는 것, ‘나’답게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그렇게 넘기는 책장 속에 어느 날 문득 ‘나’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떠한가? 나 스스로도 남들에게 되도록 좋은 사람, 친절한 사람, 그리고 지적인 사람으로 보여 지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가? 그래야만 남성 상사들이 우글거리는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승진이라는 결과를 거머쥘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실제 그래야만 했다. 다르기를 바랐지만 달라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관리자급으로 승진을 멀게만 느꼈던 10여년 전 남성동료들로부터 들은 말은 ‘이제 여성시대가 되었으니 가만히 있어도 승진하겠네’였다. 그러나 그저 말 뿐이었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것은 없다. 다만 지금 신규직원은 8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라는 것.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생활, 정년 보장이 된다는 것 등등 최근 직업으로서 최고의 호가를 누리는 중이라는 것 뿐이다. 조직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특별한 능력을 요구받는다. 물론 아무도 그러라고 하거나 그래야 한다는 룰은 없다. 그러나 수많은 남성경쟁자들 틈에 끼어 자연스럽게 승진대열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뭔가 다름을 보여주어야 가능하다. 길고 지루하게 견뎌야하는 시간이 있다.


혹자는 손에 쥔 것을 과감하게 놓고 자유의 몸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그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유치원 부원장을 지낸 지인이 있다. 소심하지만 누구못지 않게 성실했던 그 분은 승진을 코앞에 두었지만 상급자인 원장과 사이가 좋지 않아 과감하게 사표를 제출하고 자기 사업에 뛰어 들었다. 사표를 내는 날 당당했다. 이제 더 이상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또 자신이 없어짐으로 발생한 공백에 대한 우려와 서운함으로 눈시울을 적시는 동료들을 보며 묘한 자신감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매진했다. 하지만 그도 얼마 가지 않았다고 한다. 초년생의 기분으로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이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갈등관계였던 원장도 사직을 하고, 함께 있었던 팀원이 바로 원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동료를 위해 기뻐하고 축하해야 하는데 솔직한 자신은 심한 자괘감에 빠지더라는 거였다. 조금만 버티면 그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며칠을 참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는 거였다. 그 울적한 마음이 한동안 자신을 괴롭혔다고 했다. 지금도 그 늪을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면서. 이런 분들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지금은 나도 퇴직 후 막연한 할 일들을 구상하고 있지만 막상 선택하라면 주저할 것이다. 지금 업무나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로 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때 정말 후회할 자신이 없는지 담보할 수 없다. 지인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저자는 열일곱번째 ‘이기주의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한다. 탐욕. 자신의 욕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익에 집착하고, 그것을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착각한다고 한다.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집중된 삶을 고집하는 한 더 빠르게 파멸의 길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삶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탐욕적인 이기주의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것이 남은 생에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에 격하게 공감한다. 얼마 전에 만난 지인은 많이 밝아져 있었다. 한참 우울감에 젖어 있었지만 뒤집어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이 사랑하는 삶을 위해 탐욕스러워지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마야 안젤루의 말처럼 우리는 한번 뿐인 내 인생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들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존감이 낮다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스스로 완벽하지 않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삶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지인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속이면서 그저 지금 선택한 삶이 행복하다고 했다면 우울의 늪을 그렇게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었을까? 오히려 솔직하게 괜찮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진심을 들여다 본 것이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처럼 더 이상 괜찮은 척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답게 사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뻔뻔하지만 행복한 삶으로의 걸음걸이가 된다.


코로나 19로 생활 자체가 미묘한 불안감에 젖어 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오는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우리는 조금 팍팍한 생활에서 소소한 만족감을 얻게 된다. 이 책은 한동안 잊고 지내 온 ‘나’다운 것에 대한 생각의 여유를 주었다. 여행을 갈 수 없지만 여유는 갖을 수 있는 작은 만족감에 며칠 전 휴가를 냈다. 하루를 온전히 갖는 뻔뻔한 쉼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