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다. 김부장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by 오행시

지난해 초겨울 반응이 뜨거웠던 드라마가 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야기'

제목이 길어 대개들 ' 김부장'이락고 불렀다. 이미 은퇴를 했거나 퇴직이 슬슬 다가오는 사오십대 중년층에게 이 드라마는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왔으리라 생각한다. 주말이면 그냥 널브러지기 쉬운데 토요일, 일요일 밤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제법 괜찮았다. 특히 5회 차 김부장의 희망퇴직은 역대급 장면을 내게 남겼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한 김낙수(유승룡) 부장, 설거지를 하고 있던 아내 하진(명세빈)은 연차냐며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그를 대했다. 하지만 소파에 정자세로 앉아있는 김낙수에게서 아무런 말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사직서를 내고 온 길이었다. 하진의 분노를 기대했던 김낙수는 당연히 긴장했다.


그런데 하진은 상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제 백수신세가 된 남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장난을 걸었다. 퇴직금은 얼마나 받았는지, 그 돈으로 명품백은 살 수 있냐고 슬슬 농담을 던지면서 김낙수를 몰아붙였다. 귀찮아하며 김낙수는 소파에서 일어났고 잠깐 두 사람은 가져운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다 하진이 놀림을 멈추고 김부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김부장 수고했다." 라며 두 팔을 벌려 그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총 12부작을 했지만 통틀어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워낙 연기력이 좋은 배우들이라 장면 장면이 훌륭했지만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그만둬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저런 표현으로 감동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순한 연기였지만 아내 역할의 명세빈이라는 배우에 대해 존경심마저 들었다.


사실 나는 드라마 속 아내처럼 하지 못했다. 명퇴를 내고 온 남편에게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일종의 시위였다. 물론 사전에 동의는 했지만 실제 사실이 되자 불안해졌고 그 불안은 고스란히 불만이 됐다. 지난 일이지만 드라마를 보며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 일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명세빈은 한때 청춘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출중한 외모에 풋풋한 매력은 수많은 남성 팬의 우상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아줌마 역할을 해냈다. 중년여성이 많이 하는 짧은 쇼트커트, 화장기 없는 얼굴, 소박한 옷차림은 과거 여신 같은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 드라마에 등장했을 때, 익숙했던 화려한 이미지가 아닌 것에 순간적으로 생경함을 느꼈지만 꾸밈없는 표정에서 나오는 생활 연기는 보는 이에게 무한한 감동과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문득 그녀가 이 배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여전히 충분한 관리와 투자를 통해 '동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요즘 많은 배우들이 피부 시술이나 미세한 성형을 통해 젊음을 재생하거나 오히려 그때보다 더 출중한 외모를 유지하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자기 관리의 필수 덕목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명세빈은 이번 역할을 통해 젊음을 붙잡으려는 안간힘이나 집착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듯했고, 그 나이 그대로의 모습을 캐릭터에 녹여냈다. 이것이 바로 외모보다 연기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진심, 즉 배우로서의 직업적 윤리에서 비롯된 선택이라고 해석했다.


자신의 상품성을 젊음에 두지 않고 오직 '연기력'이라는 본질적인 가치에 둠으로써 진정한 배우로 재탄생되는 순간을 기다려온 듯했다. 결국 배우의 빛은 세월의 흐름을 거부하는 외부적인 치장이 아니라 세월의 깊이를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서 녹여내어 오로지 자신의 연기력만으로 대중과 소통할 때 흘러나오는 것이다.


세월을 비켜갈 수 없다는 이 단순한 정의는 연예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며 불안해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젊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드라마 속 평범한 아줌마로 등장한 그녀를 통해 '나이 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더 풍부한 삶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모든 삶에 필요한 태도, 본질에 집중하는 용기야 말로 세월을 이겨내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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