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을 보내고서야

제사에 대한 생각들

by 오행시

"이제 안 지내도 되지 뭐."

식구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던 시어머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결혼 당시 시아버지는 고인이셨다. 남편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돌아가셨다고 하니 꽤 오래전에 세상을 뜨셨다. 자립 기반이 약했던 나와 남편은 당연히 어머님댁에 들어가 살게 되었고 이후 기반이 갖춰져 있었음에도 어머님은 우리와 같이 사셨다. 그렇게 36년간 시아버님의 제사를 치렀다. 그나마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명절 제사는 없앴지만(그것도 30년간 일 년에 세 번은 치른 셈이다) 본 제사만큼은 고수하고 싶어 하는 게 시어머님이셨다.


같이 살면서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를 위해 애들도 키워주시고, 살림도 해주셨으니 고마운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버님 제사는 어머님 주도로 준비되었으니 큰 부담도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거동은 하시지만 그렇게 잘 다니시던 전통시장에 발길도 끊으시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게 전부가 되셨다. 뭔가를 만들거나 닦는 일도 멈춘 지 꽤 되었다. 나이에 장사 없음을 어머님이 몸소 증명하고 계셨다.


그렇게 아버님의 제사와 명절 음식 준비는 온전히 내 몫으로 떨어졌다. 그 사이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셨지만 친정어머니는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엄밀히 따지면 친정아버지의 제사는 치러야 하는 게 마땅했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나를 온전히 사랑해 주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얼굴도 보지 못한 분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치러야 하는 이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싫은 내색은 안 했지만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사음식 준비를 위해 남편과 마트를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조용히 운을 띄웠다. 말을 꺼내면서 괜한 투정으로 비칠까 했지만 의외로 남편은 내 말을 이해해 줬다. 남편은 원래 형식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제사에 쓸 과일을 살 때도 사과, 배, 대추, 밤을 운운하면 제철에 나오는 과일을 사서 올리면 되지 비싼 값을 치르고 더구나 제철이 아니라 맛도 없는 과일에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었다. 그래도 제사를 없애는 문제는 다른 차원이었을 텐데 그날 저녁 제사상을 물리고 후식을 먹을 때 남편은 모인 가족, 친척들 앞에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이의를 제기한 것은 남편의 동생들이었다. "간편하게 지내는 것은 좋지만 제사를 없애는 것은 좀 그렇잖아"


남편은 동생들을 똑바로 보며 다시 되물었다. "너네들은 제사상 직접 차려봤니? 와서 절이나 하고 밥만 먹고 가면 그만이잖아. 준비하는 사람은 이 사람 혼자야."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괜히 우애 좋은 형제들이 말싸움을 할까 봐 속이 불편했는데 어머님의 결정적인 이 한 마디가 모든 상황을 평정한 것이다. 괜히 말로만 저러시나 싶어 어머님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평온해 보이셨다. 팔구 년 전쯤인가, 아버님 제사상을 준비하시던 어머님의 넋두리가 생각났다. '언제까지 젯밥을 얻어먹는지 원' 했던 때가 생각났다. 남편이지만 이미 배우자로서의 애환도 희박해졌다는 의미로 들렸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 집에서 하는 형식적인 제사는 없애고 기일에 산소에 다녀오는 걸로 마무리했다.

식구들이 모두 가고 뒷정리를 마치고 소파에 기대면서 TV리모컨을 눌렀다. 드라마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여섯 명의 가족이 응접실에 둘러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드라마라 상황은 전혀 알지 못하는데 가운데 앉은 중년 여성의 대사가 귀에 꽂혔다.


'네 아버지 제사는 내가 지낸다.'


더 이상 시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정한 우리 집과 달리 제사를 챙기겠다는 드라마 속 대사가 상반되었다. 제사가 집안의 대소사 중 하나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잘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처럼 조상을 잘 모셔야 집안이 잘된다는 논리로 끊임없이 가족 내 갈등을 불러일으킨 '제사 문화'에 대해 잠깐 생각해 봤다.


본래 우리 문화에서 제사는 단순히 죽은 이를 숭배하는 미신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뿌리를 확인하고,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는 ‘보본반시(報本反始)’의 의례였다. 흩어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동체의 유대감을 확인하고 조상의 삶을 추억하며 현재의 삶을 다독이는 시간 말이다. 하지만 농경사회 대가족 체제에서 형성된 이 아름다운 함의는, 산업화와 핵가족화를 거치며 그 본질이 크게 왜곡되었다.


오늘날의 제사는 조상에 대한 추모보다는 '누가 얼마나 고생하는가'에 매몰된 노동 현장이 되어 버렸다. 격식과 차림새에 집착하는 형식주의는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을 유발했다. 과거의 전통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당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정신적 기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삶의 양식이 바뀌었다면 그 정신을 담는 그릇이지만 이 또한 유연하게 변해야 마땅하다.


나는 리모컨을 눌러 TV를 껐다.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내 마음을 헤아려 동생들 앞에서 방패가 되어준 그의 투박한 진심이 고마웠다. 정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시하던 시절은 이제 우리 집에서 막을 내렸다.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산 사람의 진을 빼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모여 고인을 추억하는 것, 그것이 박제된 전통을 살아있는 문화로 바꾸는 진정한 추모의 본질이 아닐까.


오래전 "언제까지 젯밥을 얻어먹는지 원"이라 하셨던 어머니의 넋두리는 당신의 고단함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이들의 삶이 제사라는 형식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라는 조상님의 진짜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6년간 보이지 않게 짓눌러왔던 돌멩이를 옆으로 치우고 나는 오랜만에 깊고 단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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