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팀원

아프지 말고 잘 지내기

by 오행시

그는 가는 날까지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있었다. 업무를 담당했던 기간이 그리 많지 않아 전해줄 것도 없었다. 그도 나처럼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함께 왔지만 그가 먼저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원래 법에서 정한 공무원의 업무담당 기간은 2년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승진, 전직, 전출 등 자리를 옮겨야만 하는 특별한 사유가 생기면 가능해진다. 그는 상급기관으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참 살뜰하고 영민한 친구였다. 다른 팀원도 열심히 근무하지만 그처럼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추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한 달 전 그가 상의할 게 있다면서 대화를 요구했다. 단순한 업무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구내매점으로 내려갔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한참 뜸을 들이던 그가 상급기관 전출 얘기를 꺼냈다. 이제 겨우 삼 개월이 지났다. 새로 맡은 업무에 가속도가 붙어 이것저것 구상해 놓은 것도 많았다. 함께 추진할 프로젝트팀까지 만들어 놓고 어떻게 진행할 건지 아이디어 회의를 세 번 정도 진행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출이라니. 이 사람도 별수 없구나.


9급 지방공무원은 대부분 지역 출신자들이 많다. 광역자치단체 범위 내 가족관계 등록지 또는 주민등록이 되어 있으면 시험이 가능했다. 매년 초 발표되는 채용공고를 보고 합격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정해놓고 원서를 낸다. 실력이 뛰어나게 좋은 사람은 어느 곳이든 상관없지만 시험에 부담을 느끼는 공시생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지역을 선택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 덕에 연고지가 아닌 지역에서 근무하게 된다. 의무 복무기간이 있지만 몇 명은 어떤 재주를 부려서라도 원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보통 같은 시군구내의 업무변동이 아니라 임용권자가 다른 지역으로의 전출 제한은 3년이다. 지방공무원임용령에서 그 지역에 필요한 인력으로 채용한 것이라 제한을 두었다. 그러나 발령 후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8급 승진을 하고 그 사이 옮길 곳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면서 부지런히 인사 상담을 통해 전출을 준비하기에 3년은 아주 적정했다.


전출희망자들은 3년이 지나면 슬슬 인사담당자를 조르기 시작한다. 연고지나 가족부양은 법에서 정한 정식 사유였다. 일종의 공무원 내부 민원이다. 개인의 근무의욕을 살펴야 하는 것도 조직의 역할인 만큼 자치단체에서는 붙잡을 명분이 부족했다. 사실 인력수급만 제때에 된다면 왜 발을 묶어두겠는가? 다음 인력 충원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을 버텨야 하니 간신히 어르고 달래서 어느 정도 충원 대책을 세워두고 보낼 수밖에.


대도시권과 지방의 학력 차이는 공공연하게 인식되고 있다. 공무원 시험성적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도시권 공시생들이 비교적 수월한 지방 소도시 시험을 치른 후 전출의 묘미를 살려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한다. 간혹 소속된 지자체와 힘겨운 줄다리기를 해오다 전출에 성공한 사람이 '불가능한 일을 어렵게 해 낸' 것으로 포장하여 전출 문의자에게 무슨 팁처럼 무용담을 전수하기도 한다. 기초자치단체에서 손발을 꽁꽁 묶는데도 탈출에 성공했으니 자랑할 만은 하다.

오죽해야 농촌지역 자치단체를 '신규공무원 양성소'라고 할까? 채용된 사람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잘 가꾸고 다듬어 이제 슬슬 비중 있는 업무를 맡기려는 찰나 홀딱 가버리니 말이다. 이에 반해 대도시권은 훈련받은 경력직을 가만히 앉아서 넙죽 받아먹는 셈이니 열악한 기초자치단체는 악순환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수년 동안 제도 개선을 건의하자 2015년 지방공무원임용령을 개정하면서 전보제한 기간을 바꿔놓았다. 이것도 임용권자가 필요하다면 3년에서 5년까지의 범위에서 그 기간을 따로 정하도록 했다. 결국 은근슬쩍 지방자치단체에 모든 책임을 떠 넘겼다.


5년이라는 시간은 8급 선임으로 곧 7급 승진을 앞두고, 지역에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거나 친구를 여럿 사귀어 그럭저럭 지역생활에 익숙해지는 시기다. 실제 5년이 지나면 전출을 포기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그도 그런 줄 알았다. 워낙 성격도 좋은 데다 일도 잘하니 주변에서 칭찬도 많았다. 5년이나 잘 넘긴 그가 갑자기 전출을 희망하다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잠깐 정신이 나갔다. 혹시 내가 너무 서운하게 했는지를 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신규 발령을 받고 지금까지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어디 출신이냐?’는 거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어디서 사는지, 취미는 뭔지 너무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해 오는 질문도 있었지만 그 정도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다양한 질문 중에 한결같은 내용이 있었으니 그것은 ‘어디 출신이야?’ 그리고 대답에 이어진 말들, ‘그럼 곧 가겠네.’ 갈 마음도 없었는데 왜 그럴까? 스치듯 훅 훑고 가는 멘트 ‘공무원은 자기 지역에 있어야 클 수 있어.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고 했다. 그저 열심히 경력만 쌓으면 승진도 하고 정착도 하면서 평생 살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궁금해지더란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한 해 두 해 이제 조직 적응력도 생기고 아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당연히 인사발령이 나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지역 찬스는 하위직에서는 별로 효과가 없지만 상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빛을 발했다. 선출직 시장, 군수는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원칙을 세운다. 그 인재의 범주에는 당연히 그 지역 사람이 차지했다. 간혹 아닌 경우도 있지만 극히 드물더라고.


그는 느끼고 있었다. 이런 조직에서 자신은 어디까지 허용받을 수 있는 것인가? 많은 시간 고민과 생각을 거듭하고 내린 결론이 지역색이 드러나지 않는 상급기관으로의 전출이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을 피하고 싶었다고.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렇게 느꼈다면 가야할 것 같았다. 이미 머리속에는 다른 누군가를 팀원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회로가 바뀌어 있었다. 아주 어릴때부터 이 곳 사람인 나는 동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인사부서와 상의하라고 했다.


평소 다른 지역 전출자 명단을 보면서 얍삽한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했다. 특히 대도시권으로 가는 경우에는 더 그랬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의 인사흐름과 앞으로 전개될 예상 시나리오를 생각해봤다. 그의 생각이 어느 정도 부합되고 되었다. 얍삽한 기회주의자는 나처럼 지역이라는 뒷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는 사람들로 부터 나온 거였다. 이미 지역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을 천부적 권리처럼 누리면서 이 곳이 아닌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역차별을 느끼게 하는 말들을 뿜어대고 있었다. 실력있고 열정적인 젊은이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 내몰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의 발령이 결정됐다.


인수인계를 마친 그가 가겠노라고 했다. 전날 조촐하게 송별식을 치렀고 개인 물건도 옮겨놓은 상태였다. 손에 외투만 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책 속에는 짧은 편지와 가는 도중 식사라도 하라고 약간의 돈을 함께 넣어두었다. 편지는 전날 집에서 썼다. 나의 옹졸함을 담아 그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

신설된 팀이라 두서없는 업무 매뉴얼에도 서로가 웃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전입 이야기를 꺼냈을 때 흔쾌하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그럼에도 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에 내가 그런 말을 들을 만했는가 라고 반문했습니다.

결정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을지 짐작도 못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이 되어 열심히 노력하고 성과도 있지만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어디 출신이냐, 어느 학교냐의 대한 물음은 이 지역에 대한 애정을 심어

놓기에 너무나도 불필요한 질문들입니다.

다행히 가는 곳이 지척이고 안부 정도는 얼굴을 보며 전할 수 있음에 위안을 삼습니다.

작은 이야기에도 해맑게 웃어주고 경험 없는 팀장의 말에도 신뢰를 듬뿍 얹어주시는

성정을 잊지 않겠습니다.

바쁘시더라도 밥은 꼭 챙겨 드시고 항상 즐거운 생각, 행복한 시간으로 언제, 어디에서라도 빛을 발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며칠 후 그에게 카톡으로 답장이 왔다.

“팀장님 편지를 미루고 미루다 읽었습니다. 힘들 때 읽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고

팀장님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는 나에게 또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