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지만 신규공무원을 민원실에 배치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주로 민원업무는 주민등록과 가족관계신고를 다루는데 공무원의 업무 중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고 만고의 진리처럼 통용되는 이 말에 해당되려면 먼저 인간은 사회구성원으로 등록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누가 태어났는데 그게 누구와 가족인지, 그 가족들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때로는 관계가 해체되었는지 수많은 사연과 경우의 수를 매끄럽게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의 일원으로서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다.
나는 호적(戶籍, 지금은 가족관계)을 담당했다. 주로 출생과 혼인, 사망신고를 받아주거나 제출용 호적등본을 발급해 주는 일이었다. 창구에 앉아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해주면 되었다. 단순했지만 신규 특성상 어리버리할 수밖에 없었다. 내 옆에는 2개월 먼저 수습발령을 받은 친구가 있었다. 군대처럼 하루 먼저 들어왔어도 깍듯한 선배 대접을 하던 시절이다. 나이는 세 살이 어렸지만 얼굴도 예쁘고 눈치도 빨랐다. 항상 굼뜨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나에 비해 그녀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았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바로 나였다. 처음 두어 달은 내가 워낙 적응을 못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근무한 지 삼개월이 넘어가고 있었고 나도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그녀의 말투나 행동에서 나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툭하면 "주사님은 대학이나 나왔으면서 그것도 몰라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오죽 못났으면 9급 공무원이냐는 말을 들을까 봐 대학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었다. 교생실습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나를 삐딱하게 쳐다보던 교감선생님의 눈초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자꾸 신경이 쓰였다. 더구나 같은 고등학교 3년 후배였다. 학교 선후배 사이는 1년 차가 가장 무섭다는데 나는 무려 3년이나 위인데도 그녀 앞에서는 기를 펼 수가 없었다. 부서에는 과장, 계장, 선임을 합쳐 이십여 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중 대학 출신은 단 두 명이었다. 당시 정부에서 대학을 장려하고 있었지만 학비나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촌구석에서 4년제 대학을 간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9급 공무원만 아니라면 학벌로 뒤질 일이 없었는데 이 조직은 높은 학벌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퇴근하면 죄 없는 엄마한테 짜증을 냈다. 엄마 때문에 다니기 싫은 직장에 가야 한다며 매일 울었다. 그만 둘 용기도 없으면서 매일매일 감정 소모가 많았다. 참 바보 같았다. 신경을 쓰지 않거나 정 거슬리면 화장실 뒤로 불러내서 한바탕 울분이라도 터뜨렸어야 했는데 사실 그럴 주제도 못되었다. 심한 자괴감,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차곡차곡 쌓이던 분노는 최정점을 찍고 그만 둬야겠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던 시점에 멈췄다. 그녀가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은 거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삶에서 이런 복병은 늘 함께 했다. 없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녀가 발령장을 받고 다른 부서로 가는 날, 말로는 "정들었는데 어떡해요?"(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다.)라고 했지만 속은 "이제 좀 살만 하겠다."였다. 그 이후로 한 번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지 않았다. <나는 9급 공무원입니다>의 저자 이지영 님 말대로 순환보직 제도하에 '아직 안 본 동료는 있어도 한 번만 본 동료는 없다.' 는데 나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었다.
2년 뒤 8급 승진을 하고 결혼할 사람도 만났다. 결혼 전 친정에 남아있는 짐을 정리하다가 대학 필기노트를 발견했다. 여러 과목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거의 낙서에 가까웠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미술학 개론'이 있었다. 슬라이드로 명화를 보여주면서 그 작품을 그린 배경과 작가의 내면세계를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독특했다. 잊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수업 중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여러분은 전공도 아닌 미술수업에 왜 오셨습니까? 누가 어떤 작품을 몇 년도에 그리고 그림화법이 무엇이었는지 외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작품을 보면서 인간의 고뇌, 삶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키우셔야 합니다. 대학은 그런 걸 가르치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수많은 강의를 들으시겠지만 오늘 이 수업은 일생동안 여러분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겁니다. 반드시 "
무슨 배짱으로 자신의 수업이 일생동안 남을 거라는 거야? 작품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예언자라도 된 것처럼 진지 모드에 돌입한 교수님을 보면서 살짝 비웃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갑자기 떠오른 교수님의 메시지는 그 날이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공대로 진로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름 소중한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었다. 2개월차 후배의 무례한 행동에 힘들어했지만 그것도 내 방식대로 처신을 하면 되었다.
지금은 그녀와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젊었으니 시샘하는 게 당연했었고 이제는 잊힐 만큼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나는 '겸손'을 소중한 자산처럼 여길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학벌이 아니라 그가 가진 태도에서 나온다. 비록 인정을 받는데는 오래걸리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이 있을지라도 '항상 낮은 곳으로', '겸손의 미덕'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전까지 공무원은 대학따위는 필요없고 그저 어린 나이에 일찍 들어오는 게 좋다라고만 단정짓고 있었다. 그 생각에 변화가 온 것이다. 대학이 직업학교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가방만 들고 다녀도 얻는 게 있다. 다만 취업위주 교육이 아니라 철학이나 사상 위주의 수업으로 구성되었을 때 말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다녀야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멋진 성인으로 성장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
요즘 신규 공무원은 학력수준이 매우 높다. 고교졸업 후 취업관문을 넓히기 위해 별도 채용제도로 마련되어 있지만 이들도 임용 후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젊은 날, 대학에 대한 회의감은 나의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이지 대학 자체는 아니었다. 2개월의 경력차이가 1997년 IMF의 여파로 5년까지 벌어졌다. 그녀는 7급 승진 5년차가 되었지만 나는 만년 8급이었다.
그리고 근속승진(한 직급에서 장기간 근무하면 자동으로 한 직급을 올리는 제도, 당시 7년 소요, 지금은 6년)으로 간신히 7급까지 올라왔다.
차이가 엄청 벌어졌었지만 지금은 비슷한 수준이다. 벌어진 시간만큼 만회하기 위해 개인적 노력도 있기는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운도 따랐다. 다만 좋은 운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나에 대한 고민,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낮아지려는 마음'이 있다.
무엇보다 사색과 통찰이 삶에 필요하다는 교수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