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를 읽고
구부정한 자세로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시는 김장하 선생님의 뒷모습, 그 뒷모습 조차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넷플릭스의 '어른 김장하' 다큐를 본 이후로 그 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줬으면 그만이지'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감동이 되어 울컥한 장면이 꽤 여러번 있다. 평소 관심조차 없었던 '진주'라는 도시가 그분이 계시다는 것 자체만으로 현대사의 한 페이지 이상을 장식할만한 곳이 될 거 같다. 나도 여유를 가지고 김장하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던 '남성당 한약방'을 중심으로 천천히 진주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말이다.
김장하 선생님께서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된 뿌리가 된 생각이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_본문 105쪽
자신이 번 돈이 약한자들, 아픈자들로부터 온 것이니 자신을 위해서 쓰여져서는 안된다는 원칙, 누구에거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문형배 재판관님도 부산고법 부장판사 시절에 김장하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 목이 메었던 영상을 본적 있다.
" 저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갔더니, 자기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이 있다면 그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_본문 131쪽 문형배 재판관님도 김장하 선생님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2008년 경상국립대 개교 60주년을 맞아 마련한 자리에서 김장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여러 번 되뇌이며 생각했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 분이 하신 말씀을 전하기도 했다.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무릎을 치게 만든 그분의 생각의 깊이, 생활신조, 인생관, 철학, 지혜!! 그분의 인생사를 아는 모든 이들은 이 말을 들으면서 "김장하 다운 생각이다."라고 말했을 거 같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김장하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 '선순환이 되면 공동체가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자신도 선생에게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갚겠다고 했다. 이런 선순환이 돌고 돌아 김장하 선생이 꿈꾸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_본문 355쪽
김장하 장학금의 특징
1) 장학금 수여식 또는 전달식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사진도 찍지 않는다
2) 성적보다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우선하여 선발한다.
3) 가급적 1회성이 아니라 졸업할 때까지 전액 지원한다
4) 등록금뿐 아니라 생활비 등 각종 경비까지 지원한다.
5) 살 곳이 마땅찮은 아이는 아예 자신의 집에 들여 함께 살면서 자식처럼 키운다
6) 그런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고 누가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는다
7) 그렇게 지원한 학생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본문_117쪽
1990년대 기준으로 110억원 가량되는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설립한 '명신고'를 사회에 환원한 어른, 김장하의 장학생이 몇 명인지 공식적인 기록조차 남기지 않으신 어른, 김장하가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어른, 진주시내 김장하의 도움을 받지 아니한 곳이 없을 정도로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끼친 어른, 어떤 자리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구석자리를 골라 스스로 앉으시는 어른, 본인을 위해서는 번듯한 집도, 차도 사지 않고 옷 한벌도 허투로 사지 않으시는 어른, 1980년대부터 선행을 이어오신 선생님의 그간 행적이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속속 드러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그분의 고매한 인격!! 이 시대에 어쩌면 이리도 완벽하신 어른이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분이 흩 뿌리신 거름이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 대한민국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그렇게 선순환이 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려면 '나부터' 달라져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