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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영혼이 살아있는 곳, Gettysburg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의 속살을 찾아서

by 소여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꽃놀이를 즐기지는 못하지만 마음에는 매화가 피고 이어서 진달래, 목련이 꽃을 피우며 셀프 꽃놀이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때마침 선거 벽보에 붙은 사람 꽃을 보면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로 꽃놀이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내 머릿속에는 게티즈버그가 자주 떠올랐다. 분리될 수 있었던 미국을 하나의 국가로 만든 계기가 바로 게티즈버그 전투라고 볼 때 미국인들에게 이곳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전장의 의미를 넘어서 민주주의의 성지이자 그 성지에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영혼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게티즈버그 국립 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과 하퍼스 페리 국립 역사공원(Harpers Ferry National Historical Park), 두 공원에서 우리는 무명용사들이 들려주는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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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이니아주 애덤스 카운티에 위치한 게티즈버그 국립 군사공원은 뉴욕의 유명한 조경건축가인 윌리엄 샌더슨의 설계로 1869년에 완공된 미국 최초의 국립묘지이다. 우리는 총 24마일(38Km)에 달하는 너른 곳을 돌아보려니 막막했는데 가이드북 정보에 나온 대로 별표 모양의 16개 Tour Stops표지를 따라서 가다보니 지루하지 않게 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을 관람하는 방법 또한 흥미로웠다. 우리처럼 차를 타고가다 내려서 사진을 찍으며 여유롭게 구경하는 사람들, 일렬로 말을 타고 병사들인 양 구경하는 사람들, 걷거나 말을 타는 것이 부담스러워 옛날 마차에 올라타서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이렇듯 여러 가지 수단으로 관람을 유도하는 것도 찾아온 이들에 대한 민주적인 배려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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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남북전쟁을 생각하면 언제나 함께 등장하는 링컨 대통령과 그가 명연설을 했던 곳이 세트처럼 묶여져 떠오르는 곳, 바로 게티즈버그. 그래서인지 그곳을 찾아가는 우리의 가슴은 더욱 설렜다. 별모양 이정표를 따라가며 만나는 1,400 여개의 동상과 기념비 그리고 당시 사용되었던 대포와 같은 무기들과 전망대 탑들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들에게 당시 치열한 전투 상황을 실감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전쟁이 남긴 상처는 길다는 것을 말해주듯이. 그러나 전장에서의 전우애를 표현한 조각상과 거기에 새겨진 ‘전우애는 쪼개지지 않는다’라는 글귀, 그리고 미국의 각 주에서 파병되어 전사한 병사들을 위한 추모비에서는 참혹한 전쟁터에서도 우정이 피어날 수 있다는 애틋한 노래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한여름이었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촉촉한 슬픔이 가을비처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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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7월 이곳에서 연방군과 남부 연합군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사흘 동안의 전투에서 전체 병력의 삼분의 일인 51,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부상자, 포로, 실종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한때는 천하무적이었던 남부 연합군도 결국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남북전쟁은 그 후에도 2년 여 가까이 이어졌지만 게티즈버그 전투가 전환점이 되었다. 즉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스펜스 버그를 잇는 교통 요지였던 게티즈버그가 미국의 재분열이냐 재통합이냐를 두고 오늘의 ‘미합중국’으로의 면모를 지닐 수 있도록 선순환의 역사를 이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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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들의 시신을 땅에 묻는데만 5개월이 걸렸고, 6,000 여명의 군사 중 절반이 이름 없는 병사였던 전투인 만큼 ‘UNKNOWN, RECT 157’과 같이 이름은 없고 번호만 남아 있는 비석들도 무수히 많았다. 그 비석들 위에 드문드문 놓인 꽃송이를 바라보며 가슴 한 쪽이 아리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오히려 아린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저 고맙다는 짧은 인사처럼. 동시에 우리나라도 전쟁을 치른 나라인 만큼 아직도 가족들 품에 안기지 못한 무명용사들이 많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들에게 현충일에 조기 게양이나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정도의 형식적인 추모에 그쳤던 나 자신을 반성모드에 들게 하였다. 아울러 이곳에서는 가족 단위의 관람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전쟁의 참상과 희생을 곱씹으며 진지하게 걷는 어른들과 그 앞으로 뛰어가는 어린이들에게는 전쟁이 남긴 정신적 유산이 햇빛처럼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전쟁과 평화’라는 어느 소설 제목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빛나는 평화가 튼튼한 동아줄이 되어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호해주리라는 믿음이 샘솟았다. 그 믿음의 샘물이 미국만이 아닌 전쟁을 겪은 모든 나라에 솟아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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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게티즈버그 전투가 끝난 지 4개월 뒤 숨진 병사들을 위한 국립묘지 봉헌식이 열렸다. 당시 국립묘지 추모탑 근처 연단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했다. 민주주의의 개념을 재정립해 준 그의 명연설은 272개 단어에 2분 정도로 짧지만 명쾌했다. 그 연설의 원문은 링컨 얼굴 청동상의 양옆에 적혀 있었다.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이처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염원이 충분히 함축되어 있기에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이자 민주주의의 교과서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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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둘러보면서 떠오른 시가 있었는데, 링컨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하며 쓴 휘트먼의 시 <라일락꽃이 뜰에 가득 피었을 때> 중에서도 바로 이 부분이다.

“매년 돌아오는 봄은 늘 나에게 세 가지를 가져다준다.

해마다 그리움 가득 안고 피어나는 라일락꽃과

서쪽 하늘로 떨어지는 애틋한 별과

그리고 어릴 적 내가 몹시도 사랑했던 아름다운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라일락꽃 향기처럼 찾아 올 링컨을 기다리는 마음과 함께 링컨의 정신은 언제 어디서나 부활할 수 있다는 확신을 노래하고 있는 시 <라일락꽃이 뜰에 가득 피었을 때> 중에서 내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구절이었기에 그 날 게티즈버그 연설 기념비에서 그 시를 찾아 읽어보면서 링컨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대신했다. 캡틴의 불멸을 확신하는 휘트먼의 시는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도 링컨의 정신적 향기를 음미해보라고 권하는 것만 같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 메릴랜드 세 개의 주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하퍼스 페리 국립 역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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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의 시발점이 된 존 브라운(John Brown)의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 무기고 습격으로 치열한 포토맥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 세워진 국립 역사공원으로 그곳은 참혹한 전투지였지만 쉐난도우강(Shenandoah River)과 포토맥강(Potomac River)이 만나 마치 우리나라의 두물머리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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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마을 뒷산에 위치한 토마스 제퍼슨 바위라 우리는 성 피터스 성당을 지나 부지런히 올라가 보니 부석처럼 떠있는 바위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바위가 바로 토마스 제퍼슨 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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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바라보니 그 당시 무기를 만드는 공장과 소방서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서 역사의 현장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다. 오른쪽은 포토맥강이. 왼쪽에는 쉐난도우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남북전쟁의 이념을 표현하듯 양쪽 강물의 색깔은 완전히 달랐다. 한쪽은 흙탕물이고 다른 한쪽은 맑은 물로. 이제는 치열한 전장이 아닌 사람들이 한가롭게 수영을 하거나 래프팅을 즐기는 휴식의 강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쟁이 남긴 평등과 평화의 현장 사진처럼 보였다. 여유롭게 흐르는 그 강을 바라보는데 “존 덴버의 명곡 중 하나인 <Country Road>에 나오는 쉐난도어 리버가 바로 여기야.”라는 남편 말을 듣자마자 오는 차 안에서 그 노래를 들려 준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더위도 피할 겸 우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Almost heaven west Virginia Blue Ridge Mountains Shenandoah river Life is old there older than the trees Younger than the mountains growin' like a breeze♬“ 그 노래를 다시 불렀다. 타임머신을 타고 젊음의 행진에 가있는 느낌에 몸도 마음도 청춘으로 물이 드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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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내려오는 순간 우리는 남북전쟁 당시로 순간이동 되었다. 이유인 즉 그 당시의 마을사람들의 복장과 건물 양식을 남북전쟁 당시로 재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하는 것은 물론 다른 포즈로 찍자는 제안까지 하며 너무나 친절한 모습에 우린 감동이란 선물까지 받았다. 사진을 찍다 보니 우리가 마치 시간여행을 온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전쟁 중에 부상병을 치료하는 야전병원엔 당시 의사와 간호사가 그 때의 긴박한 상황을 재현하고 있었고, 그 때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을 만드는 주방에서는 전쟁 음식들이 풍성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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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양옆에는 생활필수품을 파는 가게, 옷감을 파는 가게, 책방과 우체국, 박물관, 앤티크 숍 등이 그 당시 살아가는 삶을 영사기로 돌리듯이 보여주고 있었다. 중간 중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그들도 호기심 가득한 웃음으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남북전쟁 당시 사람들과 만나는 느낌이 들어서 우리는 “너무 신기하다”를 연발하며 돌아다니다보니 전쟁놀이를 처음 해보는 아이들의 흥분된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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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로 배웠던 게티즈버그에 실제 와보니 그 느낌은 상당히 복잡했다. 단순히 남북전쟁의 현장을 본다는 것이 외국인의 입장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며 돌아보다 보니 자꾸만 우리나라의 현충원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으로 현충원에 갔을 때 공원이라는 느낌 보다는 비석들이 사열하듯이 서있어서 묘지에 온 느낌이 강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여기는 시원하게 펼쳐진 공원 위로 다양한 역사의 자료들이 펼쳐져 있어서 드라이브를 즐기며 역사의 현장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었던 점이 우리 현충원과는 사뭇 달랐다. 거기에 묘지라기보다는 공원을 산책하듯이 숲길까지 만들어 놓은 조경감각, 박물관과 기념품 가게까지 있어서 가족과 함께 와서 민주주의를 체득할 수 있는 교육 체험장이라는 점도 우리 현충원과 많이 달랐다. 우리는 자주 반만년 역사를 운운한다.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며 느낄 수 있는 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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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역사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고, 찾아 낸 가치를 국민들과 공유하려는 노력이 돋보인 게티즈버그 국립 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과 하퍼스 페리 국립 역사공원(Harpers Ferry National Historical Park).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희생의 소중함을 책이 아닌 그 현장에서 보고 들으며 느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참 교육은 없을 것이라는 가르침을 되새김질해 본 시간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무성한 말들이 난무하는 우리의 정치판에 보내는 링컨의 경고를 들려주고 싶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딱 10문장으로 된 2분짜리 연설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회가 192시간이 넘는 필리버스터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그 시간에 의원들이 쏟아낸 격정적인 연설 중 기억에 남는 연설이 있었는지. 그리고 무수히 많은 공약들을 쏟아낸 입후보자들의 연설 중 진정성 있는 연설이 있었는지도 묻고 싶다. 훗날 역사가, 그리고 후손들이 이 질문에 대답을 하리라. 진실을 담아서 아주 간단명료하게.

게티즈버그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곳곳에서도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 수많은 죽음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인권과 자유, 평화라는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외치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또한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는 현실이다. 그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그저 마음속으로 기도할 뿐이다. 참된 자유와 평화 안으로 그들이 들어오기만을 바라는. 그 모든 영혼들에게 다음의 시에 곡을 붙인 ‘진달래꽃’을 바친다. 붉은 진달래꽃처럼 뜨거운 감사와 위로를 담아서.

<진달래꽃> 이영도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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