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의 속살을 찾아서

by 소여

몇 해 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으로 뽑힌 작품을 보며 두 번 놀랐다. 첫째는 우리에게 친숙한 크리스마스트리의 조상이 우리나라 제주도 구상나무였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그 나무에 고국에 대한 향수를 입혀서 너무도 잘 형상화한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었다. 미국에 갈 때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사진도 찍고 그 트리가 주는 아름다움이 새해의 기운으로 이어지길 바라던 때가 있어서인지 이 작품은 구세군 냄비의 종소리가 들릴 때면 내 가슴을 울려주곤 했다.


<백악관 초대 손님> 강송화

백악관 성탄전야 블루룸의 귀한 손님

아비에스 코리아나* 이름표가 선명하다

태평양 건너 온 나무 몽근 잎새 푸르고

황토색 살갗 밑엔 아버지의 피가 돈다

해 돋는 엄마 나라 아랫목에 손 녹이고

윌스가家아들이 되어 바장이던 오십 년

영주산 제주백단 줄기 세워 잘 있는지

천 년을 지킨 기상 죽어서도 다시 천 년

칼바람 살을 찢어도 내 핏줄은 뛰고 있다

버려진 외떡잎은 이름 하나 없었던가?

록키산맥 치마폭에 핏물로 쓴 '코리아나'

불 켜진 삼색 방울이 온 누리를 밝힌다


*아비에스 코리아나(Abies koreana Wilson):구상나무의 학명


뉴욕 맨해튼 심장부인 록펠러 센터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의 정체

12월이 되기도 전 11월부터 뉴욕 맨해튼은 건물과 가로수, 상가와 사람들 모두가 크리스마스 바이러스로 열병을 앓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맨해튼 거리를 걷다 보면 눈과 귀 그리고 온몸의 감각이 크리스마스에 최적화된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도 몇 년 전까지는 거리마다 상점에서 울리는 캐럴 송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띄워주었고,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캐럴 송을 따라 부르거나 흥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것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는 생각에 미쳤고 그 이유가 음원 저작료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정당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씁쓸한 기분이 든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곳 맨해튼에서는 수만 개의 불빛이 우리를 환영해주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매년 경연대회를 거쳐서 선발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멋진 자태를 지닌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이다. 2016년 84회 크리스마스트리의 주인공은 뉴욕 주 캐츠킬 산맥 기슭에 위치한 오니온타에 사는 그레이그 아이흘러의 집 뒷마당에서 가져온 높이 28.6m, 무게 13톤에 달하는 전나무. 그 주인공은 옮겨 오는 과정이 미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진행될 정도로 유명한 크리스마스트리로 5만 여개의 LED 전구가 불을 밝히면서 우리 앞에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DSC04810.JPG

1931년부터 시작된 록펠러 크리스마스트리는 매년 11월 30일부터 다음 해 1월 7일까지 오전 5시30분부터 오후 11시30분까지 불을 밝히는데, 25일 크리스마스 당일엔 24시간 불을 켠 채 모든 이의 가슴을 사랑과 평화의 빛으로 채워 준다. 향후 목재로 가공돼 주거문제 국제 구호단체인 해비타트에 기증되는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 거인의 모습이지만 그 느낌은 키다리 아저씨의 따스한 미소를 닮아서인지 그 트리 아래에 있는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표정에서도 은총이 가득한 별들이 반짝이는 듯했다. 물론 그 장소에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인종, 국적,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의 가슴에도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으리라. 그 환한 반짝임이 사랑과 그리움, 향수, 희망 그리고 심지어는 외로움과 소외로 인한 미움과 증오라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다 받아들여지고 용서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는 일회성의 크리스마스 축하용이 아닌 작은 것이라도 모든 이들이 기쁜 마음으로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꿋꿋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평범한 국민이 키워 온 평범한 뒷마당의 나무 한 그루가 들려주는 성탄 메시지를 들으며 잠시나마 나도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개성이 넘치는 Christmas Tree Show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가 위풍당당하면서도 자상한 남자라면 그 건너편 삭스 백화점Saks Fifth Avenue에서 펼쳐지는 라이트 쇼 ‘겨울 왕국’과 크리스마스 쇼윈도 디스플레이는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여자들의 군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백화점 외부 전면을 스크린 삼아서 2,225,000개가 넘는 전구들이 펼치는 겨울왕국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이는 누구나 감탄의 경지를 넘어 무아지경에 빠진 채로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와우” “찰칵” 두 마디와 경탄어린 두 눈빛만이 그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듯했다. 길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라이트 쇼는 불빛 폭포 줄기들이 나뉘어졌다가 다시 합해지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불빛들이 연출하는 장관은 우리에게 이 아름다운 겨울이 주는 사랑과 축복을 함께 나누며 즐기라고 채근하듯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라이트 쇼라기보다는 불빛들이 연기하는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 규모나 구성에서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특별한 쇼, 삭스 백화점Saks Fifth Avenue에서 펼쳐지는 라이트 쇼 ‘겨울 왕국‘. 내년에 펼쳐질 라이트 쇼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면서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들은 곁에 있는 지인들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이들에게도 “Merry Christmas!”로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눈다. 그 따스한 인사에는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 반갑게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이 들어 있으리라. 나도 “Merry Christmas!”를 외치며 마음속으로 무언의 약속을 해본다.

DSC04780.JPG

한 편의 라이트 쇼를 보고 나면 삭스 백화점 쇼윈도 앞에 관람객 줄이 질서정연하게 만들어 진다. 라이트 쇼가 메인요리라면 쇼윈도 디스플레이는 디저트에 해당하는 작은 전시회 같다. 여기에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 속 세상을 크리스마스 버전으로 만든 작품들이 라이트 쇼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쇼윈도 작품들을 마주하며 우리는 어느 새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던 추억의 시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치 시차가 존재하지 않는 그곳으로 아주 천천히 빠져들 듯이.

DSC04771.JPG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동네 집들의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한껏 개성을 뽐내며 날 좀 보아달라며 건네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떤 집은 주인을 보고 싶을 정도로 정성껏 만든 크리스마스 장식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장엄하면서도 화려한 트리부터 단순한 소품 몇 가지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신 풍기는 실속파까지. 밤이 되면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면서 나름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 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보는 것도, 그것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도 12월이 주는 쏠쏠한 재미였다. 그 재미는 돈이나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 세워 놓은 가족 중심의 가치, 그리고 그것을 여건에 맞게 즐기는 여유 그리고 그 자체에 몰입하는 열정 등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집집마다 똑같은 트리 풍경이 거의 없다는 점도 내게는 신선했다. 실제로 상점에서 트리를 사다가 뚝딱 만드는 게 아니라 몇날 며칠 혹은 거의 한 달 동안을 온 가족들이 함께 꾸미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작업을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배우면서 추억을 쌓는 시간을 중요시 여기는 분위기가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여행을 다니다보면 우리보다도 대가족이 함께 캠핑하고 즐기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의아해 했는데 그 이유가 이런 작은 공동 작업이 생활화되었기 때문이리라.

20161219_213355.jpg

그 순간 창고 속에 갇힌 우리 집 트리가 떠올랐다. 아이가 어릴 때는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트리를 만들다가 작은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이내 웃음꽃으로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각자의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잊고 있었던 트리. 여유를 잃어버린 내 자신을 반성하며 내년에는 오랜만에 세 식구가 모여 앉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며 또 하나의 추억 쌓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미국 최남단 마이애미에서의 송구영신送舊迎新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12월 31일 저녁이 되면 모두들 무언가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으로 흥분되기 마련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현상은 전 세계가 아닐까 싶다. 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이하기 위해 떠난 곳은 미국 최남단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우리가 묵는 에어비앤비 호스트 소개로 찾아 간 곳은 마이애미 베이사이드Miami Bayside에서 열리는 <New Year’s Revolution 2017 In Miami>. 그것도 여름에 맞이하는 플로리다 스타일의 송년회인 만큼 호기심 속에 찾아 갔다. 우리가 도착하자 이미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카니발 분위기로 미국식 송구영신을 즐기고 있었고 주변 건물 벽면 전광판에는 1:33:26이라는 숫자와 함께 ‘LOVE’ ‘HOPE’ ‘UNITY’ 'PEACE' 'PROSPERITY' 등의 단어들이 바뀌고 있었다. 2017년까지 남은 시간이 한 시간 삼십삼 분 이십육 초라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을 음미하며 새해에는 여러 단어들이 지닌 의미를 가슴에 품고 살라는 주문과도 같았다.

DSC00140.JPG

앞쪽의 무대에서 가수들과 밴드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중간 중간에 추임새를 넣으며 따라 부르거나 열광하며 춤도 추는 것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미국식 섣달그믐 풍경. 그런 모습이 외국인인 내 눈에는 부럽기도 하고 아는 사람 없어 이때가 기회다 여기며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한 내 모습이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우리나라처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여기저기 ‘Happy New Year 2017’ 헤어밴드나 안경, 모자 등을 파는 길거리 장사꾼들을 보니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 건 왜 일까? 거기에 더욱 반가웠던 건 소주와 오징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걸어 다니는 1인 생맥주 가게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맥주 마니아인 내게는 너무도 반갑고 의미 있는 송구영신 맥주이기에 한 잔 사서 죽 들이키고 나니 가슴이 뻥 뚫려서 새해가 주는 건 뭐든지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DSC00158.JPG

드디어 카운트다운하며 환호성과 불꽃놀이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형형색색의 색종이 눈과 함께 맞이한 2017년. 옆의 사람들에게 “Happy New Year!”라고 들뜬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며 서로 껴안고 팔짝팔짝 뛰면서 벅찬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 때 외국인 젊은이들이 우리 남편을 보고 “와우, 잭키 찬이다!“라고 말해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난 졸지에 새해 선물로 받은 홍콩 스타 남편 덕분에 그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며 마이애미 추억담까지 챙겼다. 여기에서 이 순간을 함께 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맞이한 2017년에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행운과 사랑이 가득하리란 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냥 이루어 질 거라고 믿고 싶다.

20161231_235232 - 복사본.jpg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맞이할 때는 겨울이라 우리나라와의 차이를 거의 못 느꼈다. 그러나 겨울이 아닌 여름에 그것도 콘서트장이 된 바닷가에서 맞이하는 에너지 넘치는 현장감 속에서 맞이하는 마이애미 스타일의 송구영신은 그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많은 인파 속에서 카니발을 즐기듯 맞이한 2017년인지라 그 느낌과 의미가 남달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사람으로 인해 광풍이 한바탕 지나갔던 2017년, 그 끄트머리에서 앞의 시조를 낭송하며 사랑과 포용의 크리스마스, 행복과 믿음이 가득한 2018년이 오리라 확신하며 아듀, 2017년을 외쳐 본 것도 이젠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2021년도 마침표를 찍을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지금. 세월이 나이 속도만큼이나 빨리 간다고 푸념하는 이, 어서 새해가 와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어 하며 새로운 희망에 들뜬 이, 나이의 십 자리 숫자가 바뀔 때마다 감정 방정식이 교차하는 이,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건강한 새 생명을 기원하는 이, 퇴직금으로 마련한 작은 일터가 대박은 아니지만 쪽박은 차지 않기를 바라는 이, 새해에는 첫 월급으로 부모님에게 작은 선물을 사드리는 것이 목표인 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좋아하던 책과 벽을 쌓았던 시간을 뒤로 하고 도서관 출입증을 만들겠다고 자신과 약속한 이. 은발의 나이지만 젊을 때 모델의 꿈을 이루고자 시니어 모델 강좌에 등록한 이, 행복주택 입주로 첫 보금자리가 주는 기쁨을 맛보기 원하는 이, 무기력해진 시간들을 딛고 다시 활기찬 시간을 열망하는 이, 소소한 일상이 주는 작은 행복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 여기 열거하지 못한 많은 이들의 바람들이 작고 소박하더라도 이루어지는 2022년이 되기를 바라며 그 마음을 아래의 시로 대신하고자 한다.


<새해 아침> 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민주주의의 영혼이 살아있는 곳, Gettysbu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