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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Jan 04. 2022

세상에 이런 일이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의 속살을 찾아서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와 함께 한 시간이었다. 지나가는 불청객인 줄 알았는데 우리 곁에 오래 머문 동거인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2022년에는 “코로나가 종식되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기 바라는 마음에서 선정한 네 곳이 바로 천섬(Thousand Islands), 글라스 비치(Glass Beach), 이리 커널(Erie Canal), 포 코너스(Four Corners)이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만큼 인간의 기발한 발상이 현실화된 인공물에서도 충분히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네 곳. 이 놀라운 곳들을 여행하면서 올해는 좋은 의미에서의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본다.


천섬은 몰라도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온타리오 호의 북쪽 끝에서 그 하류의 세인트 로렌스 강에 걸쳐 있는 호수에 1,864개의 섬이 모여 있는 천섬. 그 사이에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선이 있으며 캐나다 측의 섬은 온타리오 주, 미국 측의 섬은 뉴욕 주에 속한다. 작은 섬부터 학교와 소방서까지 갖추고 있는 큰 섬까지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부자들의 별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세 시간 동안 복부인이 되어 별장유람에 나섰다. 그 섬에 게양된 국기를 보면 주인의 국적을 알 수 있다는데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국기까지는 봤는데 태극기를 보지 못해 조금은 아쉬웠다. 성들의 건축 양식도 개성에 넘쳤고 그 규모도 아담 사이즈에서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고성까지 그 다양함에도 놀랐다.

우리가 상상하는 ‘캐슬’의 모습이 줄줄이 사탕처럼 눈 앞에 펼쳐지니까 내가 마치 여왕인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1년 내내 물 위에 떠있고, 크기가 1평방 피트 이상이며, 살아있는 나무가 한 그루 이상이라는 재밌는 조건에 맞으면 섬으로 인정. 저만의 개성을 뽐내는 성들을 보는 사이에 수상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이 줄기차게 지나간다. 수상스키나 제트스키의 물살을 맞으며 태양을 피하는 사람들과 요트를 타고 낚시를 즐기는 가족들, 50m 물길 위로 솟구치는 사람들까지. 너무도 다양한 수상레저가 펼쳐져 마치 수상레저 전시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처음보는 수상레저도 많아서 천섬의 ‘천(千)’이라는 숫자는 일반적인 숫자가 아닌 다양함 혹은 많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많은 섬들에 개성 만점의 독특한 성들이 다양하게 자리잡고 섬 생활의 무료함을 여러 가지 수상레저로 달래는 모습에서 천섬에 내재된 삶에 대한 강렬한 에너지를 보았다.

이 천섬의 하이라이트는 하트 섬(Heart Island)의 볼트 성(Bolt Castle). 그 옛날 경양식집에서 돈가스와 함께 나오던 양배추 샐러드에 뿌려진 분홍빛 드레싱 이름이 왜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일까 의문을 가져본 적 없었는데 드디어 이곳에 와서 그 이름에 담긴 아름답지만 슬픈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볼트 성의 주인인 조지 볼트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줄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이 성을 짓기 시작했다. 독일 출신인 그가 라인 강변의 아름다운 고성과 아내를 떠올리며 지은 사랑의 성이 바로 볼트 성이다. 또한 아픈 아내의 입맛을 걱정한 그가 요리사에게 맛있는 소스를 개발하게 했는데 그 드레싱이 바로 천섬에서 따온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이다. 그런데 완공을 앞두고 아내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볼트 성을 버리고 천섬을 떠난다. 70여 년간 방치되어 있던 볼트 성이 이제는 입장료를 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어엿한 사랑의 성으로 만인의 인정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고성이 관광지가 된 것은 아마도 모두의 가슴에는 슬픈 사랑이든 기쁜 사랑이든 사랑에 관한 추억 하나씩은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도 유람선에서 내려 조금 올라가니 “이 정도는 돼야 캐슬이라 부르지.”라고 말하며 내 눈앞에 마술처럼 나타난 볼트 성. 그 규모도 규모지만 정원의 나무와 꽃들이 만든 아늑한 오솔길과 내부의 섬세한 인테리어, 세월의 멋이 그대로 밴 가구에서 볼트 경의 아내 사랑이 물씬 느껴졌다. 

그 성을 돌아보고 나오며 든 생각이 우리나라는 망부석처럼 아내의 희생과 사랑 이야기가 많다면 미국은 극진한 아내 사랑 이야기가 많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가져 본 부러움. 그 순간 우리 둘이 만들어 온 사랑을 곱씹으며 지금 이 순간 애절한 사랑의 현장에 함께 할 수 있음에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듯 여행은 즐거운 추억으로 우리를 철 들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는 듯. 그래서 우리의 여행은 쭉 이어지리라, 호호백발 할미와 할배가 될 때까지.


숨은 보석을 찾아라!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쓰레기 처리장이 되어 버린 바닷가. 애물덩어리로 전락한 이곳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주정부와 주민들은 폐차부터 각종 쓰레기 더미들을 치웠지만 깨진 음료수 조각들은 치우지 못한 채로 무기한 폐쇄에 들어갔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40여 년 만에 드러난 그 모습은 다양한 빛깔의 화려한 보석 전시장. 그 당시 줍지 못했던 음료수 조각들은 연금술사인 파도에 의해 갈고 다듬어져 너무도 화려하고 멋진 보석들로 재탄생한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California Fort Bragg의 Glass Beach 인생사이다. 우린 이 보석전시장을 본다는 기대감에 한 치의 주저도 없이 100Km를 달려서 갔다. 내륙을 지나야 해서 구절양장 같은 산길을 오래 가다 보니 안 하던 멀미까지 하며 달리고 달려서 도착했다. 가서 보니 바다도 하늘도 온통 푸른 캘리포니아표 바다였다.

그런데 바닷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줍고 있는 게 마치 서해안을 지날 때 조개를 캐는 모습 같아 궁금해졌다. “여기 조개가 나나 보네. 조개 잡아서 미국산 조개구이를 해먹을까?” 라고 깔깔 대며 내려가 보니 아뿔싸! 사람들이 줍는 건 조개도 게도 아닌 유리 조각들.

어떤 가족은 아예 돗자리 깔고 앉아서 종교의식을 치르듯이 경건하게 줍고 있었다. 우리도 아래를 보니 사진에서 보던 오색찬란한 보석들은 거의 없고 글라스 비치라는 흔적처럼 유리 조각들이 간간히 보였다.

보석전시장을 상상하며 달려온 우리에겐 실망감보다는 당혹스러움이 앞섰다. 그 이유인 즉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그 보석들을 모두 주워 가서 이젠 글라스 비치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비치로 또 한 번의 인생역전이 이루어지는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인적이 끊긴 40년이 만든 작품을 다시 사람들이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아쉽고 안타까웠다. 

혹여 글라스 비치로 돌아가기 위해 바닷가에 무수한 병조각을 풀어 놓고 다시금 감옥살이를 하게 하는 건 아닐까 라는 기우에도 잠시 빠져 보았다. 나도 몇 개를 주워 가져가려고 하니 “당신도 공범이야.”라는 말에 인간 탐욕의 전파력은 동서양도 인종도 관계없다는 생각에 유리 조각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인간들의 탐욕이 빚은 재앙을 자연은 그 품안에서 지혜롭게 해결해 주었는데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나나 사람들. 그래도 바다는 우릴 미워하지 않고 하얀 포말 속 웅장한 파도 소리를 들려주며 다시 오라고 말하는 듯했다. 비록 찬란한 보석은 많이 보지 못했지만 자연이 들려준 이야기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아쉬움과 그래도 두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꼈음에 행복함이 뒤섞였던 글라스 비치.


배가 산도 아니고 계단으로 올라간다고?

“계단을 오르는 신기한 배를 태워 줄게.”라는 남편의 말을 내 눈으로 확인한 뒤 그 신기함의 잔상이 오래 남은 곳, 이리 커널 웨이. 이는 19세기 초 이리 호에서 허드슨 강 상류까지 연결해 동부와 중서부의 운송을 간편하게 해준 교통 수단으로 당시 마차 보다 운송비용을 95% 절감하는 획기적인 운송 시스템이었다. 지금의 뉴욕이 금융의 중심이 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가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이리 커널 웨이로 지금은 교통수단이 아닌 관광수단으로만 이용된다. 푸른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피어 있고 폭이 그리 넓지 않은 강과 오래된 듯한 수문들이 보이는 풍경을 유람선에서 바라보니 마치 19세기로 소환된 느낌이었다.

동력 없이 계단을 막은 후 물을 채워서 배를 올린 뒤 양옆에서 말(馬)이 끌고 가던 추억의 바지선(Barge)이 떠오르는 그 시대로. 지금은 말도 없는데 정말로 배가 계단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이리 커널 웨이의 신기한 원리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뒤에 일정 거리를 두고 오는 유람선을 기준 삼기로. 배가 가면서 수문이 열리면 거기서 물이 계속 공급되기에 배 뒷부분 양옆에는 물갈퀴 같은 동력체가 부지런히 물살을 헤치며 오고 있었다. 드디어 같은 높이였던 두 배의 위치가 달라지기 시작해서 우리 배가 한 계단씩 올라서 마지막 종착점에 도착했다. 뒤를 보니 따라오던 배는 한 계단만큼 아래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도 계단 올라오는 순서를 기억하려고 손가락으로 1,2,3,4를 표시하며 찍는 센스까지 발휘. “와우, 진짜 신기하네. 우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미국에선 물이 많으면 배가 계단을 오르네.”라고 말하자 “이리 운하가 워낙 유명해서인지 노래도 있더라, Bruce Springsteen이 부르는 Erie Canal 들어봐.”라며 노래를 들려주자 뒤에 앉은 미국인 노부부가 신기해하며 자기도 잘 아는 노래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다가 오는 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코닝 회사를 관광하는데 그것보다는 신기한 이리 커널이 나을 거 같아서 여행 코스에 넣었지.”라는 남편 말에는 자신감이 뿜뿜, 이를 바라보는 내 눈에선 하트가 뿅뿅~


네 개의 주 경계선이 만나는 사합점을 찾아서~

포 코너스(Four Corners)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네 개의 주인 유타 주의 남동쪽, 콜로라도 주의 남서쪽, 뉴멕시코 주의 북서쪽, 애리조나 주의 북동쪽이 직각으로 만나는 지점이다. 대개 미국의 주 경계는 높은 산맥이나 큰 강, 혹은 특별한 경계선이 될 만한 곳으로 정하는 게 원칙인데 특징도 없고 특별히 볼 것도 없는 땅에 두 개 주도 아닌 네 개 주의 경계선이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조건이라 관광지가 된 듯.

이곳은 자치구인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어서 기념품도 인디언풍이 배어 있는 장신구나 의류, 생활용기 등이 많아서 아이쇼핑하기에는 좋았다. 풍경도 없고 단지 바닥에 표지석뿐이라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때, “앗! 저거다!”란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오른손은 콜로라도 주에, 왼손은 유타 주에, 오른발은 애리조나 주에, 왼발은 뉴멕시코 주에 놓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리 포즈가 되고 만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지만 모양새가 영 아닌 듯해서 우리는 패스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한 컷 찰칵.

주의 이름과 주를 상징하는 깃발과 마크밖에 없어서 다른 관광지에 비해서 볼거리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이 작은 몸 하나로 동시에 네 개 주를 접할 수 있다는 기쁨은 어떤 곳에서도 가질 수 없는 기쁨이지 싶었다. 그것도 땅덩이 하나만은 무지하게 큰 미국이었기에 그 기쁨은 배가 된 듯.


그동안 우리에게는 “세상에 그런 일이” 뒤에 긍정적인 일보다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네 곳을 떠올리다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정말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는 기쁨이나 행복은 그 경지를 넘어서 더 큰 시너지 효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묘한 마력이 있기에. 올해는 기적을 꿈꾸며 그 기적을 향해 손을 내밀어 보자. 볼트 경의 사랑이, 글라스 비치의 영롱한 보석 조각이, 이리 커널의 신기한 마법이, 포 코너스의 뿌듯한 기쁨 중 하나가 당신 곁으로 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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