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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Jan 04. 2022

지독하게 죽여주는 풍경 속에서  만난 겨울 속 여름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의 속살을 찾아서

요즘 우리나라의 날씨를 보면 살랑대는 봄 처녀도, 바바리코트 자락을 휘날리는 가을 남자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는 기후 온난화로 인해 사계절 중 봄, 가을이 실종되어 여름과 겨울만 남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 여름은 긴 장마로 햇빛이 별로 없었기에 이번 겨울엔 쨍한 여름을 만나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주와 네바다 주에 걸쳐 있는 Death Valley에서 만난 겨울과 여름, 그리고 한여름 열사(熱砂)의 사막에서 썰매를 타겠다는 무모한 결행을 하고 찾아 간 그레이트 샌드 듄 국립공원(Great Sand Dunes National Park)과 뉴멕시코 주의 화이트 샌드 국립기념물(White Sands National Monument)로 겨울 속 여름여행을 떠나보자.


Death Valley의 겨울 맛보기

원래 바다였던 곳으로 해수면 보다 86m나 낮으면서도 북미에서 가장 뜨거운 죽음의 계곡인 Death Valley. 처음 갔을 때는 겨울이라 해가 짧았지만 한낮의 열기는 열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길을 의미하는 Dante’s View에서 바라본 Death Valley는 역설적으로 드넓은 소금밭과 황량한 사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화첩과도 같았다. 사막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Death Valley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이정표에 계속 나오는 Devil과 Bad가 Death Valley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지 무척 궁금했다.

Devil‘s Golf Course, 어느 작명가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그 분위기가 영락없는 악마의 골프장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치명적인 매력이 있기에 악마도 찾아와서 척박한 이곳에서 소금석을 골프공 삼아 골프를 쳤으리라.

걷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저 높은 산 위에 SEA LEVEL이란 표식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저 높은 산 위가 그 옛날엔 바다 표면이었다고 하니 Bad Water는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만들어진 것일까? 여기에서 바라보면 악마가 하얀 물감을 뿌리며 행위 예술을 마친 뒤의 모습처럼 군데군데 눈이 녹은 소금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지평선과 맞닿은 그 끝에 도착하여 아래를 보면 지구가 아닌 새로운 행성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곳이 Bad Water Basin이다.

시간이 만든 또 하나의 역작은 Natural Bridge. 기대감을 갖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조물주가 비와 바람과 함께 협업해서 만든 거대한 황금빛 다리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보는 순간 우리는 두 번을 놀라게 된다. 처음엔 생각보다 높고 큰 규모에, 그 다음엔 기하학 모양의 다리를 만졌을 때 흙이 부슬부슬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데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왔다는 것에.

Natural Bridge를 위주로 사진을 찍으면 사람이 너무 작게 나와 다시금 미약한 인간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어 저절로 자아성찰이 되는 곳이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관광객들이 Natural Bridge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들으며 이제라도 와서 보길 잘 했다는 셀프 격려와 함께 만약 무너졌다 해도 그 또한 자연미일 거라는 셀프 위안을 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돌아서 나온 Artist Drive는 이정표에 나타난 A Palette of Color가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양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풍경은 황량한 사막이 아닌 기기묘묘한 돌산들이 우리 어릴 적 골목처럼 굽이굽이 이어져 있는 게 마치 골목길 순례자가 되어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수많은 돌산이 어느 것 하나도 같은 색이 없어서 무수한 신들이 저마다 준비한 팔레트로 지금 이 순간에도 동양화풍 담채화를 그리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숙소로 가느라 한 쪽 출구에서 다른 쪽 출구까지 여섯 시간을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선가 차들이 주차를 하고 하늘을 올려보거나 아예 누워서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도 내려 하늘을 보는 순간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다름 아닌 Death Valley가 여름 밤마다 연출하는 Milky Way Show로 Death Valley의 위대함에 정점을 찍은 순간이다. 머리 위로 열리는 신천지에 비해 여태까지 본 은하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얼굴로 쏟아지는 별빛 폭포는 하얀색과 분홍빛 그리고 푸른색이 섞여서 마치 하늘에서 분출하는 화산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 화산재는 보석처럼 우리 눈과 가슴에 소복이 내려앉아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주위에 불빛이 없어서인지 하늘을 독점한 별들이 그들만의 군무를 펼치며 축제를 벌이는데 그 현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었다.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러도 오히려 직접 보는 우리 눈과 가슴에만 선명하게 찍히는 Death Valley 은하수.


두 번째 만난 Death Valley의 한여름 민낯

이 년 후 한여름에 찾은 Death Valley는 죽음의 계곡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숨 쉬기가 거북할 정도의 5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폭염에 우리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캐빈에 들어가 한인마트에서 사온 둥지냉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둥지냉면 봉지만 봐도 온몸이 서늘해지는 가상체험까지. 세상에 단 하나의 Death Valley표 냉면을 먹으며 천국에서 먹는 성찬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즐겨먹던 죽여주는 동치미 국수와는 격이 다른 죽음을 목전에 두고 먹는 맛이라 숭고하기까지도 한 냉면을 먹고나서 즐긴 오수는 달콤한 디저트였다.

열사의 기운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Death Valley의 위엄은 살아있었다. 그 위엄에 맞서서 밖으로 나와 소금밭 대신에 모래밭을 거닐며 사막여행의 운치를 즐기는데 일몰이 되었다. 거기서 바라본 일몰은 외롭다기보다는 하루를 불사르고 떠나는 태양의 위풍당당함 그 자체였다. 내일은 더 강한 화력을 짊어지고 오겠다는 각오가 서린 뒷모습으로.

모래밭을 거닐다 보니 모닥불은 없지만 대학교 MT가 떠올라 그 때의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잠깐이나마 청춘의 샛길로 빠져봤다. 그 때 건너편에 반짝이는 물체가 있어서 플래시를 켜고 보니 백과사전에서 보던 작고 날렵한 사막여우였다. 그 사막여우도 친구인 어린 왕자를 찾아 나온 건 아닐까 싶었다. 한참 눈싸움 하다가 숲 뒤편으로 사라진 사막여우에게 조심히 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어디서나 표출되는 모성 본성인 듯.

다음 날 Devil’s Corn Field에 가보니 사막 중간 증간에 옥수수 뭉치를 쌓아 놓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폭염 속에서 자라는 사막 풀들이었다. 악마는 이 많은 옥수수를 키워서 정자를 짓고 낮잠이

라도 자려는 걸까 아니면 겨울을 위한 비상 식량일까 궁금해졌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끝없이 펼쳐

지는 사막에서 우리만의 놀이를 즐기기로 했다. 다름 아닌 장풍 날리기 게임인데 카메라의 도움으로

우리는 드디어 인생 샷 하나를 건지는 쾌거까지. 마치 난 이소영이 아닌 리소룡이 되어 장풍으로 남

편을 날리는 상황이 아주 리얼하게 찍힌 사진이라 언제 봐도 즐거운 추억의 한 컷이다.

출구까지 거리가 거의 서울 부산 간 거리보다 긴 Death Valley를 달리다 보면 다시금 그 규모에 놀란다. 그래서 규모를 가늠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Death Valley, 나아가 그것을 측정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헛되다는 보편적 진리를 사막의 모래바람이 경(經)을 읽듯 알려주는 Death Valley. 그래서 금광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물을 구하지 못해 죽어갔지만 아직도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은 모래경(經)을 겸허히 받아들여 생존법칙을 지키며 오늘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Death Valley를 즐기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 대답은 Death Valley만이 알고 있으리라. 상상 그 이상의 상상이 가능한 현실, Death Valley와의 뜨거운 만남을 다시 갖고 싶은 건 Death Valley만이 뿜어내는 중독성 강한 매력 때문이리라.


눈썰매는 가라~~우린 한여름에 모래썰매 탄다!

먼저 찾아 간 그레이트 샌드 듄 국립공원은 사막이 아닌 산 가운데 만들어진 황금빛 모래언덕이다. 이곳은 로키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이 커다란 회오리가 되어 외부의 바람과 함께 모래를 무려 200m 이상 쌓아 놓아 미국에서도 가장 높은 모래언덕이다. 지속적인 강한 바람이 만들어 내는 기기묘묘한 모래 언덕 산이 겹쳐진 채 끝없이 펼쳐진 모습에 우리도 모르게 “와우”를 연발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크기가 우리나라 여의도의 열 배가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 햇빛의 시선에 따라 황금빛 혹은 갈색, 푸른빛으로 달라지는 모래 언덕의 실루엣과 바람의 몸짓에 이끌려서 만들어지는 볼륨감 있는 곡선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행운까지 얻었다. 마치 모래 여인을 향한 햇빛과 바람이 연출하는 사랑 영화 두 편을 동시 상영하는 듯했다.

거기서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가 ‘모래썰매’라는 동화 한 편을 찍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빌린 모래보드를 들고 맨발로 모래언덕을 오르는데 마치 모래 주머니를 찬 것처럼 힘들었다. 그런데 모래보드에 앉아 뒤로 몸을 젖히고 내려가는 그 순간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의 부드러운 목 넘김과 같았다. 그 부드러운 스릴감에 중독된 우린 환호성을 외치며 타고 또 탔다.

팔과 다리가 햇빛에 익어 바비큐 직전까지 간 것도 모른 채 놀이공원에 온 아이들처럼 미친 듯이 썰매 타는 한국 아줌마와 아저씨를 바라보며 “파이팅!”을 외쳐 주는 미국사람들. 그들에게 다시금 강한 한국인의 모습을 각인시켰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돌아오는데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모래들이 짜증이 아닌 기쁨과 행복이 담긴 흑설탕처럼 달콤하기만 했다.


흥분된 우리가 영화 ‘모래 썰매-2’를 찍기 위해 찾아 간 곳은 마치 설산을 보는 듯한 화이트 샌드

국립기념물. 석고물질이 있는 근처 호수에서 증발되어 날라 온 석고가루가 만든 눈부신 하얀 석고

언덕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 환대가 너무 눈부셔서 우린 선글라스를 벗을 수 없을 정도였다.

트레일을 걷다 보니 방향감각도 석고언덕의 실루엣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인 즉 파란 하늘을 뺀 나머지는 모두 하얗기 때문. 그래서 다른 곳과는 달리 이정표가 중간 중간 세워져 있었다.

더욱 더 특이한 건 온몸이 하얀 도마뱀이었다. 이 녀석들도 환경에 적응하느라 하얀색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보고 마치 어릴 때 ‘동물의 왕국’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 있는 듯한 착시 현상마저 들었다. 아무런 색도 품지 않은 하얀 색만이 갖는 힘이 아닐까 싶다.

그 다음 우린 여기서 대여해 주는 둥근 디스크를 타고 두 번째 썰매 타기에 도전했다. 모양이 둥글어서인지 그 스릴감은 먼저 것보다 몇 배나 컸다. 주변에는 피크닉 온 가족들이 디스크를 타며 터지는 웃음소리가 하얀 메아리처럼 우리에게 돌아왔다.

우리만 둘이지 오히려 대부분 미국인들은 대가족이 함께 휴가를 즐긴다. 할머니가 타고 내려오면 손주들이 사진을 찍어 주고, 부부가 함께 타고 내려오며 재미있는 표정도 지으며, 한참을 디스크를 타고 놀다가 아이스박스에 준비해 온 음료와 과일,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휴가철 모습이 겹쳐졌다. 핵가족끼리 떠나고, 가서도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있고, 어른들은 술을 마시며 즐기는 휴가문화를 떠올리며 과연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보았다. 그런데 ‘맞다’는 확신이 안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우리가 미국 여행하는 동안 부러웠던 점은 휴가 때 온 가족이 함께 즐기고 그 자리에 스마트 폰은 동행하지 않고 몸으로 즐기는 놀이를 통해 추억을 쌓는 것, 그리고 직접 음식들을 준비해 와 테이블 세팅 후 행복한 표정으로 즐겁고 맛있게 먹는 모습이었다.


이렇듯 Death Valley는 우리의 오감이 아닌 생생한 육감으로 느껴야 할 상상 그 자체이자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펼쳐진 화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그 화첩 속의 배경이 되었다가 이내 관람객이 되기도 하는 오묘한 체험을 한 Death Valley, 한 마디로 죽여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부러우면 진다고 우리를 위로하듯이 그레이트 샌드 듄 국립공원과 화이트 샌드 국립기념물 여행이 준 두 가지 선물도 살뜰하게 챙겨 왔다. 하나는 중년인 우리를 타임머신에 태워 어린 시절의 놀이에 흠뻑 빠져서 즐겁게 놀게 해 준 것. 또 하나는 자연이 연출해 내는 위대한 풍광 앞에서 겸손한 마음과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 곁에 두려면 인간이 이기심을 버리고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우리 가슴에 새겨 준 것이다. 언젠가 다시 이 두 곳을 찾아간다면 그 때 모래언덕이나 석고언덕은 지금과는 다른 여인의 이미지로 우리를 맞이하리라. 자연의 변신은 무죄다! 그러기에 그 변신이 그대 뜻대로만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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