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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Jan 04. 2022

올여름 피서는 비치Beach들의  
경연장에서 언택!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의 속살을 찾아서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줘요, 연인들에 해변으로 가요♬”라는 노래가 여기저기서 들리면 우리 마음은 벌써 바다에 가 있다. 누구는 캠프파이어 앞에서 통기타를 치며 목청껏 여름 메들리 노래를 부르던 모습, 누군가는 모래사장에 “사랑해♥”를 쓰는 모습, 누군가는 모든 것들이 나를 떠난다는 기분으로 찾아갔던 석양에 물든 바다를 우두커니 바라보던 모습, 열 시간을 쉬다 가다를 하면서 떠난 첫 휴가 때 수영복을 입고 어색한 포즈로 가족사진을 찍던 모습 등등 우리에게 비치(Beach)는 경쾌한 유희의 장이자 사색의 푸른 공간, 모래성을 쌓듯이 멋진 순간들을 쌓아올린 추억의 성으로 다가온다. 이제 미국의 비치 경연장을 순례하면서 당신이 기억하는 혹은 가보고 싶은 비치의 모습을 찾아보며 언택트 여름 피서를 떠나 보자.    


비치의 대명사, 캘리포니아 비치들이 모였다

영화 <중경삼림>의 OST인 California Dream(캘리포니아 드림)을 들을 때마다 떠올랐던 이미지를 가슴에 담고 떠난 캘리포니아는 역시 비치의 대명사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서 만난 일곱 개의 비치들은 같은 바다임에도 물색, 물 향기, 바위와 나무들이 조금씩 달라서 그 자체만으로도 개성이 두드러진 비치들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일곱 개 비치들과 다른 주의 네 개 비치를 함께 모아 추억을 되살려 본다.


(1) 토리 파인즈 스테이트 비치(Torrey Pines State Beach)

캘리포니아 비치 여행의 시작점인 토리 파인즈 스테이트 비치는 고속도로 옆에 있어서인지 지나가는 차들이 창을 열고 바다에게 환호성 인사를 건네는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붉은 노을빛이 한 겹 한 겹 내려앉으면서 긴 허리의 바다를 어루만져 주고 있는 일몰의 순간이었다. 역동성이 느껴지는 낮의 모습도 좋지만 하루의 엔딩 크레디트처럼 천천히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일몰과의 만남도 비치만이 주는 매력 중 하나.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를 보면서 누군가는 한가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우리 같은 여행객들은 하루치 여독을 씻어내고 내일의 여행 에너지를 충전하리라. 낮 동안 몸살을 앓았을 텐데 이제는 오히려 우리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준 토리 파인즈 비치의 배려에는 감사를, 내일 만날 캘리포니아 비치에게는 상상의 즐거움을 보낸다.


(2) 발보아 섬 & 뉴포트 비치(Balboa Island & Newport Beach)

다나 포인트, 라구나 비치와 함께 오렌지카운티에서 가장 소문난 부촌 중 하나이다. Auto Ferry를 타고 들어간 발보아 섬엔 타이거 우즈와 니콜라스 케이지, 존 웨인, 박상아 등처럼 영화배우와 유명 작가는 물론, 스포츠 스타들의 별장이 모여 있다. 푸른 바다 위 Pier에 정박한 고급 요트들이 발보아 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고급스러운 섬인데 기념품이나 빈티지 물건을 파는 상점은 독특한 디자인에 비해 가격이 착해서 기분 좋게 기념품을 산 뒤 찾아간 곳이 뉴포트 비치.

 역시 캘리포니아 바다는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색으로 우리를 제압하고 그다음엔 근육질의 훈남들이 펼치는 서핑 묘기로 우리를 꼼짝 못 하게 붙들어 놓는다. 그리고 양념처럼 나타나는 펠리컨을 비롯한 이름 모를 바다 새들을 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였던 발보아 섬과 뉴포트 비치.

광활한 바다의 느낌보다는 피어와 요트 그리고 예쁜 집들과 상점들이 마치 섬과 바다 그리고 도시가 주는 매력을 퍼즐 맞추듯이 펼쳐져 있기에 찾는 이들에게는 퍼즐 맞추는 재미까지 주는 발보아 섬과 뉴포트 비치야말로 개성적 매력이 만점.


(3) 다나 포인트(Dana Point)

한쪽으로는 캘리포니아의 푸른 바다가, 다른 한쪽에는 예쁜 저택들이 있는 절벽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Bluff Top Trail을 찾아 나섰다. City of Dana Point에서 출발하여 걷다 보니 관광객은 우리뿐인 듯. 처음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지어진 저택들과 그 저택 앞에 빽빽하게 정박해 있는 하얀 요트들을 보면서 캘리포니아 부자들의 필수품은 요트라는 걸 다시 확인해 준 다나 포인트.

나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다 보면 저택의 내부가 보이기도 하고 반대편 바다에는 요트를 타고 바다낚시를 즐기거나 세계인의 공통인 비치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모습에서 그리고 마주치는 사람들이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기에 다나 포인트의 라이프 스타일을 엿보기에 충분했다.

굳이 운동을 하지 않아도 날씬한데 조깅을 하는 아가씨, 화려한 색으로 염색한 반려견을 세 마리나 데리고 아침 산책을 하는 젊은 부부, 산책로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노부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농구공을 들고 오는 소년들의 활기찬 모습에서. 더욱이 인상적인 것은 지나는 이들에게 미소를 짓거나 “Hi!”라고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이들을 보면서 다나 포인트 사람들의 포인트는 건강과 운동 그리고 마음의 여유라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도 돌아가면 이 세 가지를 열심히 해보자고 하니 남편이 농담처럼 “우린 마음이 부자니까 안 해도 되지 않아?”하고 말하는 그 포인트에서 크게 웃었다.


(4) 라구나 비치(Laguna Beach)

들어서는 순간 바다가 보이는 여느 비치와 달리 청명한 가을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키 큰 야자수들 사이를 지나가야만 그 모습을 보여주는 라구나 비치.

여기에 보너스로 Bird Rock까지. 웅장한 느낌의 비치는 아니지만 열대 식물들과 함께 바닷가를 끼고 걸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산책로와 부채꼴 모양의 모래사장이 잘 어우러져 있기에 미국에서 아름다운 해변 랭킹에 오르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모래사장에서 다나 포인트에서 배운 조깅도 하고, 모래사장에 나뭇가지로 한글 쓰기 놀이를 하다가 Bird Rock을 보니 그 큰 바위를 가득 메운 여러 종류의 바다 새들이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것만 같아 웃음이 나왔다.

파도에 밀려온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이는 해초더미를 들어 보이자 남편이 “미역국 먹고 싶다.”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밀려오는 허기. 배꼽시계가 런치 타임에 와 있다는 신호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반숙 계란이 올라간 선라이즈 피자를 먹으러 식당으로 출발. 바다 새와 비치를 두 눈에 가득 담고 오는 길에 만난 붉은 알로에 꽃만큼이나 진한 인상으로 남은 라구나 비치.


(5) 코로나 델마 비치(Corona Del Mar Beach)

초록빛 바다 옆에 넓은 잔디밭이 원 플러스 원처럼 붙어 있어서 초록 초록한 곳, 코로나 델마 비치. 절벽 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은 검은 바위들이 솟아 있는 것이 마치 제주도 섭지코지와 비슷했다.

캘리포니아 비치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 근육질의 서퍼들과 피크닉 나오듯이 가족끼리 나와서 일광욕이나 수영을 즐기는 것인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비치패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다가 특별한 곳이라면 이곳 사람들에게 바다는 우리가 한강에 가듯 가볍게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쉼터이자 취미 생활을 즐기는 문화센터인 듯하다. 뜨거운 태양과 푸른 바다가 곁에 있어서 언제든지 바다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코로나 델마 비치만이 아닌 캘리포니아 비치들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부럽다, 여기서 한 달 살기 해보고 싶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요원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우리의 바람.


(6) 러퓨지오 스테이트 비치(Refugio State Beach)

산타바바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러퓨지오 스테이트 비치의 첫인상은 어릴 때 보던 전형적인 미국 비치가 나오는 엽서와도 같았다.

모래사장과 바다 사이에 심어진 야자수를 경계로 바다에서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 위로는 수많은 캠핑카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만찬 준비에 들뜬 분위기였다. 핼러윈 축제용 호박이 주렁주렁 달린 집, 마른 꽃과 나뭇잎으로 입구를 장식한 집. 아빠는 요리사라며 칠면조 구이를 준비하는 젊은 아빠, 집사가 서핑 갔는지 혼자 집을 지키는 고양이, 캔디를 앞에 싣고 다른 캠핑카로 놀러 가는 소녀, 반려견과 모래사장을 달리는 노익장의 할아버지와 그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할머니가 등장인물이 되어 러퓨지오 캠핑장이란 시트콤을 찍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다를 보니 아빠가 아이들에게 서핑을 가르치고 있는데 가르치는 아빠나 배우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듯. 캠핑장을 봐도 바다를 봐도 멋진 경치만큼이나 멋진 사람들이 함께 하는 비치, 러퓨지오 비치.

여기저기서 맛있는 음식 냄새와 까르르 웃음소리, 쫑알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음엔 우리도 여기서 캠핑해볼까?”라는 말이 위로로 다가왔다. 호텔이 주는 편안함을 거부하고 조금은 불편해도 자급자족하면서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트는 상부상조의 마음을 키울 수 있는 캠핑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기에 또 가고 싶은 러퓨지오 스테이트 비치.


(7) 페블 비치(Pebble Beach)

세계 4대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인 Monterey 17Mile Drive는 일 인당 10달러를 내야 하는 유료 드라이브 코스로 북태평양과 골퍼들의 로망인 페블 비치 골프 링크스를 품고 있는 곳.

델 몬테 숲을 지나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푸른 바다에서 독특한 음색의 합창소리가 들리는데 바로 바다사자들의 떼창 소리다. 바로 옆 새들의 섬에서는 바다사자의 떼창에 화답하듯이 새들의 노래가 한창이다.

그 소리가 지루할 때쯤 나타난 절벽에 우뚝 솟아 있는 나무, 이곳 골프 링크스의 상징물로 250살이나 된 일명 ‘외로운 사이프러스 나무’ 가 고고하게 우리를 반기고 좀 더 가다 보면 ‘유령 나무’와 ‘마녀 나무’가 우리를 기다린다. 골프를 치지 않더라도 볼거리가 많은 페블 비치는 바다의 푸른 내음과 잘 다듬어진 골프장의 풀 향기 그리고 바다사자들의 합창이 공감각적 이미지로 다가온다. 캘리포니아 비치 여행의 종점인 페블 비치에게 나는 “굿바이!”, 남편은 “See You Again!”을 외치며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8) 바다의 신을 만날 수 있는 버지니아 비치(Virginia Beach)

버지니아 주 유일한 비치이자 길이가 길어서 시원하게 펼쳐진 모습을 보며 미끈한 비치란 별명이 어울리는 버지니아 비치. 또 하나의 특징은 여느 비치와는 달리 동상이나 조각물들이 많다는 점이다. “당신도 서퍼가 될 수 있어요~”라고 유혹하는 형형색색의 서핑 보드들이 우리를 반기더니 그 뒤를 이어서 어린 서퍼들 동상, 비치볼과 축구공 조형물, 해군과 해군 무기 동상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를 잡고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이곳이 해군기지였던 역사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버지니아 비치는 전쟁의 상흔을 파도에 잠재운 채 우리에게는 가슴이 탁 트이는 평온한 바다를 보여주려는 것만 같아서 우리도 이에 동의하듯이 VIRGINIA BEACH BOARDWALK TOUR 팻말을 따라 걸었다.

하이킹 도로에서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인용 자전거나 사인용 자전거,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 모래사장에서는 일광욕이나 선탠을 하는 사람들, 바다에서는 서핑이나 파도타기, 수영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거창한 것이 아닌 소박한 방법으로 버지니아 비치를 즐기는 그들이야말로 멋진 비치족이라 불러주고 싶었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이 서핑인지라 서퍼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며 한껏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데 갑자기 거대한 동상이 우리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포세이돈, 로마 신화에서는 넵튠으로 불리는 거대한 동상의 모습은 금방 바다에서 나와 신의 위엄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도 삼지창을 든 모습이 너무도 크고 사실적이라 보는 순간 고해성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문득 어제 저녁때 남편에게 짜증을 냈던 기억, 그저께 마켓에서 실랑이를 하던 일 등이 알사탕처럼 꼬리를 물고 생각났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여행 중 짜증 낸 거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넵튠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은 나만 볼 수 있는 비밀 용서이리라.

 

(9) 반영 샷이 멋진 캐넌 비치(Cannon Beach)

오리건 주 포틀랜드 왼쪽에 위치한 캐넌 비치. 캘리포니아 해변에는 절벽이 많다면 오리건 주 해변은 캐넌 비치처럼 커다란 바위들이 섬처럼 펼쳐져 있고 썰물 때 얕고 넓게 퍼져 있는 바닷물 때문에 해변이 거대한 거울처럼 비친다는 점이 특이하다. 영화 <구니스> 배경 속 주인공이자 캐넌 비치를 유명하게 만든 바위가 바로 추수를 마치고 쌓아놓은 볏단을 의미하는 헤이스택 락(Haystack Rock)인데 이는 시스텍(Sea Stack)인 촛대바위 중에서도 썰물 때는 걸어서 들어갈 수 있기에 더욱 유명한 바위다.

우리도 맨발로 들어가 한적한 그곳에서 점프 샷도 찍고 장난기 가득한 모습도 취해 보면서 캐넌 비치와 함께 놀았다. 헤이스택 락은 그 크기가 너무 커서 바위가 아닌 섬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근처에 있는 ‘더 니들즈(The Needles)’라 부르는 몇 개의 작은 암석과 조화를 이룬 모습은 마치 동생들을 거느린 맏형처럼 든든하게 다가온다. 또한 근처에 있는 수많은 조수 웅덩이에는 불가사리, 바다 아네모네, 게, 바다 민달팽이 등이 살고 있어서 Marine Garden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을 정도로 공생을 실천하는 캐넌 비치. 그래서 반려견을 데리고 한가롭게 산책하는 노인의 실루엣이 오래 기억에 남았으리라. 그곳의 명장면은 헤이스택 락이 얕은 물에 비친 반영 샷인데 자연이 만든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보고 있으면 마치 SF 영화 속 등장인물이 된 느낌이었다. 이 반영 샷을 캐넌 비치의 프로필 사진으로 강추!


(10) 보석 같은 생각을 담아 온 루비 비치(Ruby Beach)

시애틀 서쪽 올림픽 반도(Olympic Peninsula)에 위치한 올림픽 국립공원(Olympic N.P)에는 여러 개의 비치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비치가 바로 루비 비치(Ruby Beach). 혹시 그곳에 루비가 널려져 있어서 이름이 루비 비치가 아닐까 했는데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고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은 석양이 질 때 바닷가가 루비빛으로 변하기 때문. 욕심 앞에서 다소 실망했지만 루비빛 바다를 떠올리니 정말로 멋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비 비치를 가는 동안에는 루비에 코디할만한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줄지어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색깔도 빨강, 노랑, 주황, 하얀색으로 다양한데 꽃잎과 잎사귀가 목욕한 듯이 싱그럽게 반짝인다. 싱싱함 그 자체를 발산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운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런데 도착한 비치에는 모래가 아닌 쓰러진 통나무들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지 않은가. 이 나무들은 가문비나무 종류인데 뿌리가 깊지 않아서 60~90m 정도 크면 무게 때문에 강풍이 불 때 쉽게 쓰러진다. 봄이 되어 비가 오고 빙하가 녹아 강에 홍수가 나면 이 나무들이 바다로 쓸려가고 떠다니던 나무들이 파도에 밀려 해변에 쌓이는 기이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밀려온 통나무들 뒤로 촛대처럼 서있는 큰 바위들인 시스텍(Sea Stack)은 루비 비치를 지키는 호위무사처럼 보인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통나무들에 오르기도 하고 뛰어 건너기도 하며 놀다 보니 작은 웅덩이들이 많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해수 웅덩이에서 작은 물고기 가족들이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이 우리 인간들의 자기 소유 땅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물고기들이 몸짓으로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노을이 바다를 어루만져주면 바다는 파도를 타고 밀려와 지친 통나무들에게 편히 쉬라며 보듬어주고 그 뒤를 묵묵히 지켜주는 바위들이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며 다독여 주는 것만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석양을 상상하면서 떠난 루비 비치. 보석 같은 생각은 마음에, 신기한 풍경은 눈에 가득 담고 온 루비 비치, 이름만큼 아름다운 것을 많이 건져 온 곳이기에 우리에게 루비 비치는 보물섬과도 같았다.


(11) 추억담이 쌓이는 나우셋 라이트 비치(Nauset Light Beach)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 코드 해양 국립공원 안에 있는 비치로 가파른 계단이 만들어진 모래언덕과 아주 고운 모래사장으로 규모가 크거나 유명한 비치는 아니지만 케이프 코드에 왔다면 한 번은 들릴 만한 비치다.

나우셋 비치로 가다 보면 Nauset Light House가 있는데 그 등대 모습이 유명한 미국 감자 칩인 ‘cape cod chips’의 봉지에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비치보다 등대가 유명한 비치라 해도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비치로서 손색이 없었다.

모래 구덩이에 아이를 묻고 나서 모두들 즐거운 표정으로 인증 샷을 찍는 가족, 햇빛 가리개까지 갖춘 이동식 의자를 메고 와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노부부, 그 옆에는 인간 포클레인이 되어 모래를 열심히 파는 아이, 바다에서 밀려온 해초로 소꿉놀이하는 아이들, 파도에 몸을 맡기며 파도타기를 즐기는 아이들, 원반던지기 게임을 즐기는 자매들까지. 여름을 온몸으로 즐기는 모습은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여유를 가지고 공동체가 함께 어울려 즐긴다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 준 노부부와 가족 단위 놀이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 나우셋 라이트 비치는 우리에게 나이스 한 비치였다.


미국에서 우리 둘만의 여행으로 늘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캠핑과 자연과 어우러져 노는 공동체 문화였다. 그래서 가족 단위로 와서 낮에는 비치와 어울려 놀다가 저녁에는 캠핑장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는데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었다. 낮에 놀 때도 가족 모두가 함께 참여하니까 아이들이 혼자 스마트폰을 볼 겨를이 없다는 것과 저녁에 바비큐도 가족 모두가 분담해서 준비하고 먹을 때도 그날 여행에서 있었던 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함께 텐트를 치며 하이파이브 하는 부자 모습이나 식사 준비도 어른과 아이 구별 없이 평등하게 노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배려하는 모습이 진정한 가족여행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 비치 여행. 우리나라의 여행은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호텔을 많이 이용하다 보니 가족 간의 연대감이 빚어내는 경험과 추억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어른 따로, 아이들 따로인 놀이 문화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다면 가족의 해체나 위기 등의 말은 사라지리라. 서핑의 천국, 캠핑의 천국에서 둘 다 맛보지 못했지만 소중한 한 가지를 마음에 담고 왔다. 놀이는 피곤한 게 아니라 즐거운 노동이라는 신념. 그래서 돌아가면 가까운 사람들과 진정한 놀이족이 되어 즐거운 놀이를 맘껏 즐기리라. 10인 10색의 비치였기에 우리에게 건네준 낭만과 추억도 10인 10색이었던 비치 여행. 이제 뿌듯한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으며 올여름에는 동해로 갈까, 남해로 갈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본다. 정호승의 '바닷가에 대하여'를 읊조리면서.


                     바닷가에 대하여                     정호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에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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