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Feb 23. 2022

영어? 뭣이 중헌디!

영어는 영어일 뿐

English is an almost grammarless language.  -Richard Grant White-


중학교 1학년 때 영어를 처음 배웠고 그 이후 계속 나는 영어를 곁에 두고 살았다. 학창 시절에는 영어 수업이 있었고 영어 시험이 있었기에 늘 영어를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다. 교사가 된 이후에도 영어를 놓을 순 없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내게 영어 공부가 무척 중요하다고 권유하는 듯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듯 안 하는 듯 하긴 했지만 항상 영어를 해야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한국에서 영어를 30년 가까이 접하며 살았다.


불혹의 나이에 미국으로 이사를 와서 영어를 쓰며 생활한 지도 어느덧 5년이 넘었다. 미국에 처음 와서 나는 영어로 인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그리 오랫동안 영어를 배웠는데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도 되었고 상대방의 감정도 잘 느낄 수 있었지만 꿀을 먹은 듯 입을 떼기가 너무 어려웠다. 실제 상황에서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은 그동안 했던 영어 공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역이었다.  


계속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없는 미국의 소도시에서만 살고 있기에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미국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비교적 영어를 쓸 기회도 많았다. 덕분 다행히 나의 영어 실력은 아주 조금씩 꾸준하게 향상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 보니 영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참 많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배운 영어와 미국에서 쓰는 영어의 간극은 너무도 컸다.


한국에서 영어는 시험 점수, 등급, 합격 여부를 좌지우지하는 문제였다. 그렇다 보니 문법이 무척 중요하게 여겨졌다. 정확한 영어인지, 문법적으로 맞는 영어인지가 늘 관건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영어보다는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는 영어인지 아닌지 여부가 더 중요했다. 물론 문법이 아예 안 중요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듯, 영어에서도 주어, 동사의 순서라든지, 띄어쓰기, 쉼표 등이 갖는 역할은 매우 크다. 일례로 아래와 같은 말이 있다.


Let's eat grandpa. Let's eat, grandpa.

Correct punctuation can save a person's life. 


그러나 미국에서 느낀 영어는 문법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영어로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전할 때 문법적으로 완벽하게 맞는 영어를 길게 구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영어는 넘사벽이라는 사실. 내게 무엇보다도 간절했던 것은 영어로 상대방과 서로 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문법은 학창 시절에 너무 많이?! 배운 나, 미국에서 미국인과 직접 부딪히며 영어를 써 보니 문법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 네 가지가 있었다.


표정이 중요하다.


영어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표정이었다. 한국에서 선생님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나는 영어를 할 때 문법적 오류 없이 맞는 영어로 기왕이면 길게 내 생각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욕심이었다. 한국어도 길게 말하면 말이 꼬일 때가 있는데 영어는 오죽하랴.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자세하게 말하기보다는 원활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끌어갈 수 있는지였다. 그럴 때마다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표정이었다. 표정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그 의미와 느낌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미소 띤 표정 Thanks a lot. (normal)

활짝 웃으며 Thanks a lot. (very happy)

못마땅한 표정 Thanks a lot. (sarcastic)


화가 난 표정 You did? (angry)

궁금한 표정 You did? (curious)

실망한 표정 You did? (disappointed)

깜짝 놀란 표정 You did? (very surprised)

고개를 끄덕이며 밝은 얼굴로 You did. (in agreement)


화를 내며 No! (angry)

놀란 표정 No? (surprised)

망설이며 No… (hesitant)

못마땅한 표정 No. (sarcastic)


억양이 중요하다.


영어는 억양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 또는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영어를 못 알아 들었을 때 만능처럼 쓰이는 말은 '쏘리'였다. 억양을 올리면서 "Sorry?" 하면 사과의 의미라기보다는 이해를 못 했으니 다시 한번 더 이야기해 달라('I didn’t understand, please repeat yourself.)는 의미가 된다. 물론 억양을 내리며 "Sorry." 하게 되면 우리가 흔히 아는 미안하다(It is an apology.)는 의미로 통한다. 같은 문장이라도 어느 부분의 억양을 올리고 내리느냐에 따라 의미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My wife is pregnant.

임신 부분 강조  My wife is pregnant. (Statement) That's why she is unable to have wine.

끝 부분 강조  My wife is pregnant. (Uncertainty) Did I hear you correctly, doctor?

앞부분 강조  My wife is pregnant. (Disinterest) So what? This will be our twelfth.

앞부분, 임신 부분 강조  My wife is pregnant. (Enthusiasm) This is our first child.  

앞부분, 끝 부분 강조  My wife is pregnant. (Disbelief) But she's 49 years old!  


발음이 중요하다.


내게 영어 발음은 가장 따라 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표정이나 억양은 흉내내기가 비교적 수월하지만 사십 년 간 한국어로 훈련된 나의 혀는 영어의 발음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다. 맨 처음 줌바 교실에 갔을 때 미국 사람들 몇 명과 스몰토크를 하게 되었고, 줌바를 언제 시작했냐, 얼마나 오랫동안 했냐 등의 질문을 했는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 당황했었다. 'J움바'가 아니라 'Z움바'로 발음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화가 통할 수 있었다. 특히, 영어 스펠링 중에서 L, R은 가장 어려운 발음이다. 특히, L과 R이 같이 들어 있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는 것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girl  소녀, 여 아이

world  세계, 세상

rural  시골의, 지방의

squirrel  다람쥐. 이 발음이 어렵게 느껴질 땐 chipmunk를 쓰기도 함. (북미산) 얼룩 다람쥐라는 뜻.


literally  정말로, 완전히, 문자 그대로

apparently  듣자 하니, 보아하니

probably  아마도. 끝에 ly로 끝나는 단어는 대체로 어렵다.


crowd/cloud  군중, 구름. 한국어 발음은 서로 비슷하나, 영어 발음은 전혀 다름.

Walter 미국 친구 아들의 이름. 한국어 발음인 월터와는 다소 다름. 월~ 할 때 혀 끝이 앞니 뒤로 붙어야 함.


상황이 중요하다.


영어를 해할 땐 상황이 참 중요하다. 앞 뒤 맥락에 따라, 대화 주제나 분위기에 따라 같은 문장이라도 의미가 아예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funny가 있다. 누군가 He's a funny guy.라고 한다면 어떤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을 칭찬하는 분위기라면 '그 사람 참 재미있는 사람이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인상을 찌푸리거나 안 좋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라면 '그 사람 좀 이상한 사람이야. 별로야.'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만일 I feel a little funny today. 또는 My stomach feels funny. 등과 같이 기분이나 특정 신체 부위와 함께 쓰인다면 funny는 '조금 아프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funny

1. humorous

2. strange, weird

3. feeling a little sick


누군가 "칠리"라고 외친다면 무슨 의미가 될까? 몇 년 전, 아들 똘똘이가 유치원에 다녀와서 했던 질문 "엄마, 칠리가 무슨 뜻이에요? 오늘 바깥에 나갈 때 누가 '칠리'라고 해서 뭐 먹을 게 있나 했는데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 질문이 너무 귀여워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똘똘이는 칠리를 먹어본 경험만 있었기에 추울 때 '칠리' 하는 것이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발음은 똑같지만 뜻은 완전히 다른 두 칠리. 어떤 음식을 가리키며 "칠리!" 한다면 음식명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추울 때 "칠리!" 한다면 "추워!"라는 의미가 된다.


칠리 [ˈtʃɪli]

1. chili  다진 소고기에 홍고추(red chile)와 향신료를 넣고 끓인 매콤한 스튜

2. chilly  쌀쌀한, 추운, 냉랭한


하나 더 예를 들자면 "터키"를 들고 싶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행 계획을 말하면서 "I'm going to go to Turkey"라고 했다면 그때의 터키는 나라 이름을 뜻한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터키가 나왔다면 그건 백발백중 칠면조 고기를 말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혹시 콜드 터키(cold turkey)를 듣는다면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물론 상황에 따라 차가운 칠면조 고기를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뭔가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는 상황이라면 이디엄(idiom)을 떠올려야 한다. "I'm going to go cold turkey"의 의미는 '중독성 있는 것(술, 담배, 마약, 게임 등)을 단번에 끊어 버릴 거야.'라는 의미를 지닌다.


터키

1. Turkey  나라 이름, 터키 (흑해와 지중해에 면한 공화국, 수도 Ankara)

2. turkey  칠면조 고기,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11월 넷째 주 목)에 먹는 대표적 음식

3. [idiom] go cold turkey 관용구(숙어)로써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는 것. 특히 나쁜 습관이나 행동.


표정, 억양, 발음, 상황에 따라 영어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생각해 보니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는 무겁고! 슬픈? 결말에 도달을 하는 듯한 이 불편한 느낌은 뭐지? 사실 이것저것 따지고 고민하다 보면 결국 영어를 쓸 시간은 지나가 버리고 영어 소통의 기회는 물 건너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대방이 내게 호감을 보인다면 또는 밝은 얼굴 표정으로 다가온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Hi! How are you?" 인사를 건네고, 조금 더 시간이 허락될 것 같으면 한 두 마디 더 시도해 보자.


날씨가 좋으면 "Beautiful day, isn't it!", 동네 사람인 것 같으면 "Are you from around here?, 공원에서 만났다면 "Pretty nice place, huh?" 등등. 일단 한번 입 밖으로 영어를 내뱉어보는 것, 중간에 할 말이 막히면, You know~ 하면서 약간의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말이 꼬였을 땐, I mean~ 하면서 다시 이야기를 해 보는 것. 이렇게 하나하나의 경험이 쌓여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결국 영어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을 통해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진심 어린 감정 주고받는 모습들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 영어를 잘할 수밖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