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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Nov 13. 2022

남편은 남의 편이 아니고 내 편

결혼한 지 10년

You're my better half.


젊었던 시절에는 나의 젊음이 계속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20대 초반에 선생님이 되고 나서 특히 그랬다. 예상보다 훨씬 관료주의적이고 수직적인 분위기의 학교생활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선생님이란 꿈을 이루었다는 자부심과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보람으로 모든 일에 의욕에 넘쳤다. 에너지가 매일 샘솟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젊음이 계속될 것만 같더니 어느 날 현타가 왔다. 현실 자각 타임! 정확히 그때가 기억이 난다. 내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였다. 벌써 서른이라고? 대학 동기들의 절반 이상이 결혼을 했고 하나 둘 아기를 낳고 있을 때였다. 왠지 젊음이 다 지나가버린 듯했고 삼십이라는 숫자가 너무 많게, 무겁게 느껴졌다. 주변에서는 언제 결혼해? 결혼 안 할 거야? 이제 계란 한 판이야. 등등의 말들을 수시로 내게 건네곤 했다.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더 이상 금값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뭐? 금값? 금값 다음은 은, 동, 그리고 똥값으로 간다는 이야기에 콧방귀가 나왔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고 반발심이 생기기도 했다. 주변에서 소개팅을 많이 시켜주었지만 초단타만 이어졌고 인연은 나타나지 않았다. 혼자 잘 살란다. 아니, 혼자 살 수도 있지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 인생의 반려자를 꼭 만나고 싶은 마음은 늘 함께 했다.


그러던 중, 친했던 한 선배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선배님의 조언은 의외로 무지 간단했다. 배우자를 볼 때 단 하나의 조건만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 보고 그것이 맞는다면 다른 건 모두 양보할 수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완벽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어떤 조건이 내 삶을 같이 보낼 사람에게 가장 중요할까? 가끔 장난도 칠 수 있고 진지한 의견도 나눌 수 있고 소소한 감정도 편안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내게 가장 필요하고 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글로 표현하니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서른이 넘었을 무렵 뭔가 모를 답답함이 계속 나를 따라다닐 때였다. 업무 담당 부장이라는 보직을 겸하게 되면서 보직을 맡지 않을 때 보다 학교일이 두 세배 많아졌다. 또 퇴근 후에는 대학원 박사과정도 겸하면서 시간에 쫓기며 대학원 공부를 했다. 교사로서 공부하고 연구하며 배우는 성취감도 컸지만 늘 마음이 바빴고 논문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괜히 시작했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른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다른 학교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던 동갑 친구였다. 십 년 지기 남사친이었지만, 아주 가끔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반가웠고 동병상련의 마음이 느껴졌다. 우여곡절 끝에 박사 졸업을 했을 때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남사친도 같은 해 졸업을 했고 우리 둘은 다시 만났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를 반려자로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 모두 서른 중반의 나이,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소개팅을 열심히 할 때였다. 서로의 반쪽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우리 둘은 가끔 만날 때마다 말이 정말 잘 통했다. 이십 대 중반에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듯, 서른 중반에 만나도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물 흐르듯 흘렀다. 서로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아도 창피하지 않았고, 대화의 끝에는 웃음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 이 사람이야.

말이 잘 통하려면 각자의 경험과 생각, 느낌을 존중해 주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말을 잘하기에 앞서 잘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 둘은 시나브로 서로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저 친구로 11년을 지냈는데, 어느 날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이후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사친 여사친에서 남친 여친이 된 지 6개월 만에 우리는 부부가 되었고 1년 후 예쁜 아기를 낳았다. 시간은 잘도 흘러 10년 후가 된 지금 똘똘이는 9살이 되었고 우리는 뜻하지 않게? 미국 어느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어떨 땐 말이 너무! 잘 통해서 장난으로 이어지고 알맹이 없이 끝날 때도 있지만 그런 대화도 좋다. 영어를 쓰는 미국에서는 한국말이 더 좋고 가족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만난 지 21년,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다. 우리 둘은 여전히 말이 잘 통한다. 내 편인 사람항상 내 옆에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크나큰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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