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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사이좋다, 일기, 출국

by 삼오십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 건강해 보이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어떤 질병이라든지 뭐 그런 것처럼 말이다.


"안녕? 좋은 아침."

"어, 왔어? 밥은?"

"대충 먹었지. 넌?"

"뭐라도 좀 먹으려고. 같이 먹을까 했지."


겉으로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나와 그의 사이에는 문제가 있다. 아니 사실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는 걸 서로 알고 있다. 언제부터일까, 우리가 처음 봤을 때부터? 아니면 싸웠을 때? 갑자기 언제부터인지 모를 이 문제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골몰해 보지만 뚜렷하게 생각나는 게 없다. 그런데 남들이 보기에나 우리 스스로 봤을 때 표면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관계에서 느껴지는 살짝 불편한 이 문제는 무엇일까.


"그럼 나도 뭐 좀 먹을까?"

"그래. 내가 살게."

"아니야, 내가 사야지."

"무슨. 골라 내가 사게."


우린 친하지만 이렇게 서로 배려가 넘친다. 이게 바로 문제라는 것이다. 우린 서로 더 격이 없이 친했었다. 처음부터 잘 맞았고 그래서 더욱 빠르게 친밀해졌었다. 소위 ‘사이좋다’라는 말은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 딱 맞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이좋음에서 뭔가 나사 하나가 빠져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커피를 홀짝이며 나는 계속 생각한다. 뭘까. 어디일까. 언제일까. 하지만 그가 내가 생각하는 걸 보며 알아채지 않도록, 계속 그의 말이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중간중간 웃음으로 화답하는 걸 잊지 않는다. 그 역시도 별로 쓸데없는 말을 안 하는 진중한 성격이지만 혹시 내가 불편할까 싶어서 눈썹을 조금 들어 올린 채로 화답하며 밝은 표정을 유지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준비는 잘 돼가?"

"응. 뭐 계속하고는 있는데..."

"놓치는 게 하나둘씩 생기지?"

"그러니까. 이거 마무리하면 저거 안 한 게 생각나고."

"그렇더라고. 자리 비우는 동안 문제 생길까 봐 신경 쓰이고."

"맞아. 그래도 거의 다 된 것 같긴 해. 몇 개 빼고는."


몇 개라는 건 하나일 수도 있고, 백가지 일수도 있다. 백가지의 작은 일일 수도 있고 한 가지의 복잡한 일일 수도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그렇게 불확실한 결과를 남겨둔... 그래, 생각났다. 이 편안한 불편함의 이유.


"어떤 일들은 꼭 내가 해결해 놓고 가지 않아도 저절로 해결되는 일도 있더라."


하지만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있다. 우리 사이처럼 말이다. 완전하지 않은 용서. 내가 그 일을 알게 된 건 내 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인해 내게 불같이 화를 냈고 우리는 관계의 단절까지 갈 뻔했다. 그래도 우리는 어른처럼 화해를 했고 지금은 그 일이 없었다는 듯이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건 아니다. 우리 모습을 보면 말이다.


"그런가. 그럼 좀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 갑자기 해결하려고 하면 원래 알던 방법도 잘 생각 안 나고 처음 하는 일 같고 그래."


그의 일기를 본 건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기를 본 누군가는 그와 가장 친하다고 여겨지는 내게 그 내용을 말했고,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그 내용을 근거로 그에게 말을 꺼내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걸 알게 되었을 때 그가 화를 낼 거란 걸 예상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의 안위가 더 중요했고 나는 기꺼이 그 말을 꺼냈었다. 돌아온 결과는 모두가 예상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차근차근히 해. 다 잘 마무리될 거야."


하지만 이 불편함의 원인에는 그가 갖고 있는 나에 대한 미안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일기를 본 게 내가 아니라는 걸 그는 언젠가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오해했을 때 나에게 했던 말들은 내가 만약 정말 그의 일기를 봤더라면 마땅히 들었어야 할 말들이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럼에도 난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내 딴에는 ‘일기를 본 게 중요한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도 그의 일기를 몰래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그를 걱정했던 마음인데, 그의 반응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단지 그 행위를 혐오하는 것으로만 날 대했던 것에 적잖이 상처를 받았던 게 사실이다. 우리는 그 이후로 표면적인 화해와 관계 회복이 있었지만 서로에 대해 완전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 완전한 용서를 하는 게 누가 먼저여야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래. 출국까지는 아직 좀 더 남았으니까."


그런데 한 가지 더 확실하지 않은 게 있다. 내가 그 얘기를 꺼내야 하는 건가, 그가 해야 하는 건가. 이번이 내가 화를 낼 차례인가, 아니면 그가 화낸 것에 대해 나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표해야 하는 건가. 이 불확실함이 지금의 불편함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는 내 표정이 감춰지지 않았나 보다. 우리가 만들어낸 잠시 동안의 정적 속에서 그와 나는 바로 지금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 같았다. 우리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때 그 일 말이야."

"그때 그 일 말이야."


터널 속 오랜 어둠 같은 불편함이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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