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원망하기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키가 크고 싶었다. 꼭 180이 넘고 싶었다. 작은 체구여서 그것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뭐 어찌 저지해서 지금은 여자치고는 작지 않은 169.1이다(0.1은 자존심이다) 아무튼 앞서 나오는 의식의 흐름은 뒤로하고, 내가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목표를 세워서 크고 싶었던 것은 아빠 때문이었다. 우리 아빠는 아빠 세대 사람 치고 키가 크다. 180. 난 어릴 때부터 아빠를 이기고 싶었다. 아빠는 나에게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렇다고 사이가 좋지 않았냐 묻는다면 아니,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우리 가족은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좋은 가정이었다. 금실 좋은 부부, 그들의 딸들. 하지만, 늘 나와 동생은 생각했다. 그저 보이기만 그렇게 보이고 속사정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늘 나와 동생은 그들의 말에 숨이 막히고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죽을 둥 살 둥 기를 써서 서울로 대학을 왔다. 동생은 4년제 대학을 뒤로하고, 반수까지 하여, 서울로 상경하고, 나는 수도권으로 대학을 가기 위해 30개 넘는 (전문대까지 합쳐서) 원서를 썼다. 그토록 집이 지긋지긋하고 그들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늘 생각했다. 어떻게 그들에게 복수를 할지. 어떻게 하면 그들을 괴롭힐지. 늘 생각했다. 그 시나리오의 끝에는 늘 성공한 내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26살의 나는 그저 졸업한 백수이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렇게 그냥 이렇게 지나갈 줄 알았다. 아직도 아빠 엄마에 대한 원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저 아 사실 그랬었지. 우리. 이렇게 지나갈 줄 알았다. 늘 동생과 이야기하며, 우리는 독립을 하면 집에 찾아가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지. 이 시나리오는 없었다.
아빠가 췌장암이란다.
처음에는 장난하는 줄 알았다. 아니. 사실은 믿지 않았다. 그저 원래 있던 지병인 당뇨가 심해져서 올라온 줄 알았던 서울은 사실은 췌장암이 맞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올라온 것이었다.
그게 오늘 결과가 나왔다.
아빠가 암이란다.
그것도 예후가 좋지 않은 암. 췌장암.
난 건강염려증이 심한 편이라, 언젠가 내가 많이 말랐을 때, 췌장암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어 알고 있었다. 그 병은 살 수가 없다.
그게 내 아빠라니 내 인생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일이다.
내가 복수할라 그랬지. 이렇게 빨리
내 나이 20대 중반에 아빠가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건 없는 일이었다.
내가 복수할라 그랬는데,
이렇게 떠나가나?
그럼 나는 어쩌고.
분명 아무렇지 않지는 않겠지만, 엄청나게 우울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스스로 나는 내가 아빠의 빈자리를 그저 다른 물질 적인 것만 생각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는 아빠가 필요했다. 그놈의 물질도 아빠의 더러운 성질머리도
나랑 너무나 똑같아서 싫은 그 다혈질도
아빠가 무심하게 말하는 것도
가끔 몰래 주는 용돈도
아빠랑 하는 섹스 이야기도
나는 그것들이 너무나 그리워질 것 같다.
근데 나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게 내 약점이 될 것이니까.
그리고 장녀인 내가 강해져야 하니까.
약한 사람은 공격당한다,
그래서 늘 웃고 강한 척했다.
근데 나도 한계가 온다.
서서히
아빠를 맘 편히 미워하고 싶었는데
나는 미워할 수도 없다.
아빠가 너무나 밉다.
근데 너무나 사랑한다.
이런 것이 나에게 오니까 모든 것이 두렵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한다.
나는 뭘 할 수 있지?
나는 아빠가 없으면 살 수는 있지만,
굳이 아빠가 없이 살고 싶지는 않다.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는 일이야.
원망스럽고 슬프고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도 이런 감정이 드는 내가 너무나 싫다.
그저 슬프기만 하고 싶은데,
돈도 생각나고 그냥.
내 삶은 어쩌지 생각하는 나도 싫다.
그리고 마음껏 미워하지 못하게 하는 아빠도 밉다.
끝까지 아프기만 하고 가면. 나는 어떡해.
혼란스럽다.
나는 피해자일까.
아니면 가해자 일까.
그리고 나의 삶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하여 이렇게 글을 써본다. 나는 글밖에 쓸 줄 모르니.
sns도 이제 무의미 해졌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피해자는 늘 가련하고 슬퍼야 하는데 그래야 피해자로 인정받는데
나는 이 순간에도 나밖에 모른다,
그게 나를 위로받지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