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인 삶
나는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머리 쓰는 것을 싫어한다. 맨날 생각으로 가득 차있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그러니까 고민을 하는 것을 싫어하여서, 스토리 있는 웹툰도 잘 안 본 다. 오늘 든 생각이다. 강박적으로 뭔가를 하고 강박적으로 짜여 있는 삶을 사는 이유는, 틈이 생겨서 빈 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이 뭔가 불안하고 공허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싫어서이다. 다른 고민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먹던 것, 하던 것, 반복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시켜서 뭔가를 해내는 삶이 편해서 좋은 듯하다. 그만큼 수동적이라는 것이지. 내가 그래서 어른이 아닌가 보다. 나는 스스로 뭔가를 고민해서 하는 것이 싫다. 내가 뭐 먹고 살지도 고민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 두렵고 그 순간이 오면 회피하고 싶다. 그래서 사회에서 벗어나서 내가 그냥 하면 되는 스스로 수동적이게 하는 삶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어른들의 말이 싫어!라고 하면서도, 그저 그 어른들의 반발심으로 싫다고 했었지, 정작 내가 뭘 해야 할지는 모르는 것 같다. 오히려 누가 뭔가를 시켜줬으면 내가 뭘 해야 할지 알려줬으면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막상 누군가가 뭐 하라고 하면,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서 책을 본다. 사실 책에서 답을 얻는다? 잘 모르겠다. 평생 책을 꽤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하는데, 책에서 답을 얻기보다는 나에게 그저 회피 수단이다.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지식을 기계적으로 습득하는 시간.이랄까. 나는 감정도 잘 모른다. 배우 준비하고 연기한다는 놈이 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감정도 그냥 학습된 대로 이뤄나가는 것 같다. 사랑? 우정? 잘 모르겠다. 그저 그 시간이 싫어서 떼 우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어딘가에서 본 듯이, 우정이나 이런 감정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내가 좋아서 그랬던 듯하다.
왜 이런 글을 쓰냐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이러면 그러면 이렇게 고치세요.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글쎄 내가 꼭 고쳐야 하나? 어느 웹툰을 보다가 그녀에게 장애를 고쳐준다는 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내가 살아오고 편한 방식을 버리고 꼭 ‘정상’ 아니 ‘다수’의 길을 걸어야 하나. 나는 정상이라는 말이 싫다. 정상은 다수의 다른 말일뿐, 딱히 그것이 꼭 옳은 것도 아닌데, 왜 그것을 따라야 하는지 모르겠다. 남들과 다르게 일등이 되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의 판단대로 다수가 좋은 것이라고 하는 사회가 아이러니하다. 나는 내가 이렇다. 이렇게 깨달아가는 것이지, 조금 불편하더라도 수동적이라도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
왜 이런 글을 쓰냐고.
글쎄 그냥 쓰고 싶어서.
샤워하다가 쓰고 싶어서.
내가 가는 방향이 다수가 아니더라도 나는 나다.
그저 병은 소수라는 이름을 쉽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름일 뿐,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그렇다고.
이제 나는 굳이 외부의 기준으로 안 살래.
아직도 예쁘고 싶고, 내가 원하는 몸매로 살고 싶긴 한데, 노력하기도 귀찮고, 나의 타고난 성향상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내가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쩌라고. 어쩔 수 없다. 그냥 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