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직무에는 귀천이 있어서 한 직장에서 십수 년을 일했음에도 '합리적으로' 승진과는 거리가 먼 이, 퇴직 후 자영업자를 꿈꾸며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주야장천 쉬지 못하는 이, 자식들을 앉혀두고 미래는 베트남에 있다고 말하는 이나 이리저리 휩쓸려 후회하지 않기 위해 '후회하지 않는 법'을 수련하는 이도 모두 동시대인들입니다. 출퇴근하고 야근하고 때론 주말에도 일합니다.
김현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직무에는 귀천이 있다."
이 문장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라고 한다. 이 속담은 누가 무슨 일을 하던지 그 직업을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직업에는 귀한 것도 천한 것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이와 비슷한 경험담이 있다.
공공기관에 직업상담사로 일을 했을 적, 나는 무기계약직 단시간 직업상담원이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목표로 하는 채용건이었기에 10시부터 4시까지 근무라는 점이 확 끌렸다.
60세까지 정년은 보장되는 일이었지만, 가장 큰 단점은 승진의 기회는 없었다.
공채를 통해 필기시험(사회, 고용보험법), 전산시험, 면접을 거쳐서 채용된 케이스였다. 나는 그 과정에 열과 성을 다했고, 그 당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시에 퇴근함과 동시에 집으로 곧장 달려가 새벽까지 공부했었다. 그 결과 필기시험을 무사히 통과했고, 다음 단계는 전산시험이었다.
워드프로세서 2급 시험과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지대로 자료 입력과 표 그리기를 수행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여 시험을 준비했다. 혹시 모를 전산시험 탈락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전산시험은 단 몇 명만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다음은 제일 중요한 면접시험.
입사동기, 입사 후 계획, 사례관리 등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고, 비교적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 당시 제일 어린 지원자였다. 불과 만 25세였으니 말이다.
모든 채용 과정의 절차를 밟은 후 최종합격자 발표까지도 마음을 졸였고, 다행히도 합격이라는 선물이 주어졌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곧바로 현직으로 뛰어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민원 상담, 구인/구직 관련 전화 업무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초과 근무를 하는 날도 허다했다. 초과 수당이라는 명목 하에. 옆에 있던 공무원들과 똑같은 업무를 했음에도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했다.
물론, 공무원들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힘들게 행정공무원으로 발령받는 과정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동일한 업무를 한들 같은 처우를 받는 것도 아니었으니 마음속 불만은 쌓여갔다.
차라리 공무원들과 일의 경중을 따져서 업무를 배치했다면 공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열심히 한들, 승진의 기회는 없어서 소위 말하는 말단 사원으로만 정년 60세까지 일하는 직원이었던 것이다.
직무에는 귀천이 있어서 한 직장에서 십수 년을 일했음에도 '합리적으로' 승진과는 거리가 먼 케이스였다.
그 직장에는 결혼 후 육아에 치중하느라 그 직장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게 되었고, 아직 한 번씩 그 자리에 대한 미련이 몰려올 때가 있다. 요즘은 어떤 기관이든 기간제 근로자들을 많이 뽑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기간제근로자, 임기제 공무원 등 '기간제'라는 꼬리표. 계약한 근로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근로관계가 소멸되게 된다. '그래도 정년이 보장되는 좋은 자리였는데...'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았다면 호봉도 꽤 올라갔을 텐데.....' '합리적으로' 승진과 거리가 멀더라도 정년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이 요즘은 더 귀한 시대가 되었다.
하물며 기간제 근로자도 1~2명 채용에 몇백 명이 몰려드는 시대인지라 고용불안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10년 차 '경력단절여성'인지라 그 고용불안에 직접적으로 관여되는 사람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는 고용불안사태에 마음이 무겁다.
<애수의 소야곡> 이 한 문단이 나의 과거 직장 이야기부터 현재 나의 마음까지 연결해 볼 수 있었다.
앞으로는 직무에도 귀천이 없는 밝은 세상을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