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창문에 입김을 불어 쓴 글씨

죽음에의 영원회귀

by 노을책갈피


그 죽음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으며, 누구의 입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투명한 죽음이었다. 한때 나는 그런 투명한 죽음에 현혹되곤 했다. 왜냐하면 그런 죽음에의 영원회귀만이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가 저주하고 나를 저주하는 이들에게 나를 각인시킬 방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현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나 또한 힘든 시기에 죽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많았다.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분명한 나만의 이유가 있을까?'

이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은 많았지만,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기에 죽음을 시도해보진 못했다.

내가 보았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누구와도 나누어서는 안 되는, 누구와도 나누기 싫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도 나에게 죽음이란 아주 먼 이야기가 아닐뿐더러, 아득하지도 않은 느낌이다.


"죽음에의 영원회귀만이 나를 각인시킬 방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한없이 나약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영원회귀란 니체가 그의 저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내세운 근본 사상으로 영원한 시간은 원형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우주와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사상이라고 한다. 원형을 이루는 영원한 시간 속에 우주와 인생이 영원히 되풀이된다면 어차피 누구나 죽음으로 회귀하는 삶이지 않을까?


그 당시 죽음은 나에게 최선이라 여겨졌고, 죽음이 곧 정답이라고만 느껴졌는데, 그렇게라도 누군가에게 내 존재를 가슴에 새기고 싶었을까.

잠깐이라도 나라는 존재를 강력히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이었을까.

비 오는 늦은 오후. 생각이 많아져서 도무지 생각이 정리가 안 되는 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결론은 이 세 문장이 '과거로의 회귀'를 강력히 심어준 문장이라 골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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